이미 은퇴한 우리들의 영웅들에 대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호기심 때문입니다.
  어제 우연히 청솔투자클럽에서 피터 린치의 <월가의 영웅> 이후의 소식에 대한 질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조금 아는 내용이 있어 답글을 적었지만, 정작 답글을 적고나니 저도 사실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다른 투자가들도 마찬가지로, 당히 감명깊게 읽었던 <월가 천재소년의 100가지 투자법칙>의 저자 멧 세토 역시 저는 그 이후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몰라도 다른 분들은 그 이후 소식들에 대해서도 알고 계실 것 같아서 은퇴한 대가들의 투자도서 이후의 최신 보를 모아보고자 합니다.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모르는 정보나 제 정보의 잘못된 점을 알고계신 분은 답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보 공유 부탁드립니다.
  다만 버핏 할아버지는 현역이시니 제외하겠습니다. ^^;;


- 피터 린치 -


  역사상 가장 뛰어난 펀드매니저로 꼽히는 피터 린치는 1989년 최정상의 자리에서 가족을 위해 은퇴했습니다.
  그러나 린치의 은퇴 이후 피델리티는 펀드매니저들과 마이클 밀켄과의 유착, 저조한 수익률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피델리티는 다시 전설의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를 필요로 하였고, 피터 린치는 1992년 말 주2회 일하는 조건으로 2년만에 피델리티에 복직했습니다.
  복직한 린치의 주 업무는 젊은 펀드매니저의 지도와 피델리티의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언론 인터뷰였습니다.
  린치는 계열사 중 하나인 [피델리티 매니지먼트 & 리서치 컴퍼니]의 부회장으로 취임했지만 과거 그가 펀드매니저 시절 해왔던 것처럼 실무만 담당하고 경영업무에는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린치 자신도 펀드매니저 업무를 아주 좋아하기에 경영업무는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펀드매니저 이후 몇몇 주요기업의 이사로 일한 피터 린치였지만 기업이사로서의 린치의 활동은 사람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린치는 은퇴 직전인 1988년 유명한 엔지니어링 건설회사 [모리슨 너센 코퍼레이션]의 이사회 멤버가 되었습니다.  1989년에는 유명한 화학회사 [W.R.그레이스 & 컴퍼니]의 이사회 멤버가 되었고, 두 기업의 주가는 린치의 이사 참가 소식이 알려지자 급등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기업은 단지 회사 제트기를 유지하기 위해 본사를 바닷가로 옮기는 등 경영진의 방만하기 그지없는 운영과 경영진의 내부분열로, 결국 경영진에 대한 소송이 제기된 1995년까지 주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짐 로저스는 이 사건에 대해 "애널리스트나 이사가 그레이스나 모리슨 너센의 이런 문제들을 놓쳤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는 간접적인 비난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스캔들에서 린치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으나, 그의 명성을 두 회사가 악용하여 주가를 끌어올린 것과 회사의 감시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피터 린치의 전설적인 마젤란 펀드의 경우에는 린치의 은퇴 이후 수익률이 저조해 가입자의 이탈이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린치의 후임으로 마젤란 펀드를 맡았던 제프리 N. 비니크가 1996년 말 사임했습니다.  비니크는 채권에 펀드 자산 40%를 투자하여 기업의 성장에 투자하지 않고 금리에 베팅을 해 상승장을 놓쳤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비니크의 사임으로 자금 유출이 지속되었고 이후 펀드매니저 역시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여 마젤란 펀드의 전설은 막을 내렸습니다.


- 짐 로저스 -


  짐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인 퀀텀 펀드를 만든 창업자입니다.  소로스가 펀드매니저를 맡고 로저스는 애널리스트를 맡았습니다.  두 사람은 황금 콤비였고 퀀텀 펀드는 성공을 거듭했습니다.  나인티-피프티의 공매도와 리츠의 공매도 및 매수로 퀀텀펀드는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퀀텀 펀드가 대형화되면서 소로스와 회사 조직 운영에 대한 대립으로 로저스는 퀀텀 펀드를 나와 헤지펀드 업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소로스가 펀드 인력확충으로 퀀텀펀드의 외형성장을 추구한 반면에, 로저스는 신규 인력편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은퇴한 로저스는 육로로 세계 일주를 하며 <월가의 영웅, 세계를 가다> <어드벤쳐 캐피탈리스트> 같은 주옥같은 투자기행문을 저술하였습니다.  이때 세계 일주를 하며 얻은 경험을 토대로 1990년대 말부터 상품시장의 강세장을 주장하였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상품관련지수와 펀드를 만들어 상품투자사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 존 템플턴 -


  존 템플턴은 글로벌 투자의 선구자이며 가장 현명한 펀드매니저로 꼽힙니다.
  펀드매니저 현역 시절부터 종교, 자선 활동에 힘써 1972년 종교인에게 주는 가장 큰 상인 템플턴 상을 만들었고 1987년 존 템플턴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러한 사회 기여 활동이 인정되어 영국여왕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1992년 “세계의 영적 성장을 돕는 데 삶을 바치기 위해 투자관리를 포함한 모든 사업을 중단한다”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투자회사를 현재 프랭클린템플턴에 매각하고 그 후 사회공헌활동에 매진하고 계십니다.



- 보도 섀퍼 -


  보도 섀퍼의 재테크 도서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은 독일에서 2차대전 이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혔고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저서인 <스트레스 없는 성공>, <열두살에 부자가 된 키라> 역시 전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섀퍼는 경제교육자로 성공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투자사업쪽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하었는 듯 섀퍼의 저서 <스트레스 없는 성공>에서 나왔던 [섀퍼 재정설계 유한회사]는 170만 마르크(약 10.2억원)의 빚을 지고 2000년 6월 지급불능 상태에 빠져 파산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고 싶지만 현재 자료가 부족합니다.

- 존 네프 -  (자료 구하는 중)
- 멧 세토 -  (자료 구하는 중)

  보시다시피 2000년대 최신 정보가 별로 없습니다.  최신 정보를 아시는 분들은 많은 답글 부탁드립니다.
  1차 수정했습니다. (내용추가, 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