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경제학자와 유쾌한 에세이>
 유쾌하게 감상, 우울하게 감상

우 봉 래

이 책은 저명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의 경제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소위 보수주의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허구의 경제학을 특유의 독설로 비판하고 있다.  그의 독설의 근거는 특별하고 복잡한 수식적 경제학이 아니라, 단순한 덧셈, 뺄셈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경제학 지식이다.  그런데도 엉터리 경제학자들의 경제학은 그의 논리 앞에 그야말로 박살이 나는 통쾌한 책이다.  올해 상반기 대실패에도 모자라서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최근에도 열심히 국채 발행해서 환율방어에 힘쓰시는 재경부와 한국은행 관리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비록 이 책이 크루그먼의 여러 에세이를 모아놓은 것이라 다소 산만한 점이 있지만, 크루그먼이 강조하는 정부(중앙은행)의 역할은 바로 통화량 조절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경제정책의 방법이 통화량 조절에서 금리를 미세하게 조절하는 방법으로 옮겨간지가 언제인데 낡아빠진 통화량 조절 정책을 주장하느냐고 반박하는 의견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중앙은행들의 금리 조절 정책이 시작된 것은 앨런 그린스펀이 연방준비은행의장직을 맡은 1987년 이후이다.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 경제 회복의 발판을 쌓았으나, 그에 따른 긴축 정책으로 정치적 신임을 잃어 연준의장직에서 해임당한 전 의장이었던 폴 볼커와는 달리, 시장 개입의 방법으로 통화량 조절 대신에 금리를 미세 조정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게 된다.  이는 통화량 산정이라는 것이 매우 애매해서 기대한 것 만큼 성과가 나오질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미국의 달러화가 세계의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미국의 경상수지적자가 지속되는 한 달러화의 유동성과 통화량은 증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뿌리를 잘라내지 않는한 통화량에 의한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7년 이후 연방준비은행의 금리통제정책에 따라 세워진 미국식 경제학만으로 크루그먼이 프랑스나 일본에 대해 주장하는 통화량 확대 정책이 구식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경직된 사고의 결과로 밖에 판단할 수 없다.  물론 크루그먼이 책에서 통쾌하게 비판하고 있는 대상들도 이러한 경직된 사고를 가진 경제전문가들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바보같은 환율 방어정책도 좀 비판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쉽게도 크루그먼의 주장중에서는 일부 동의하기 힘든 것들도 많다.  일단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지속된 재정적자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에는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과 중국의 무역관계는 변동환율제가 아니라 고정환율제이기 때문에, 실제로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실제 가치보다 계속 낮게 고정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싸게 물건을 소비할 수 있어 좋지만, 한계까지 도달한 풍선은 언젠가 터지는 법으로 위안화 절상이 갑자기 이루어질 경우 미국 내수 시장과 중국 수출 시장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중국에서 비생산적인 일을 해 주기 때문에 미국이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아쉽게도 현실에서 미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현재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인 GM과 포드의 재무제표는 일본의 도요타와 우리나라의 현대차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성적이다.  미국은 반도체 시장에서도 1위회사인 인텔이 삼성전자의 맹추격을 받고 있으며, 핸드셋 시장에서는 모토롤라가 노키아와 삼성전자에게 밀려 중저가 제품 시장으로 밀려 떨어졌다.  차세대 산업인 위성 DMB에서도 별 볼일이 없으며, 디지털 TV 셋톱박스 시장은 아예 중국 등 저가 시장으로 넘어갔고, 2차전지는 일본이 휩쓸었으며, 최근 IT 경기 회복의 시작을 알린 디지털 디스플레이 시장인 LCD, PDP 시장은 한국, 일본, 대만이 주도하고 있어 아예 시장에 뛰어들 엄두도 못내고 있다.  LED, OLED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서비스, 금융, 우주항공산업, 제약 산업의 강국이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의 첨단산업이 갈 수록 초라해지며 세계의 기축통화를 유로화로 대신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등 경상수지적자가 지속 되는한, 미국은 가난해지고 있다.

미국의 첨단기술 특허 및 원천기술들을 주목하는 경제학자들도 많지만, 최고의 기업은 기술 특허나 원천기술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들인 월마트, 마이크로소프트, 코카콜라, 맥도날드, 휴렛팩커드, 프록터 앤 갬블, 존슨 앤 존슨 등은 특허보다 브랜드, 독특한 품질, 마케팅 능력으로 승부한다.  우리나라 언론 및 학계에서 항상 원천기술에 대해 강조할 때 나오는 기업인 그 퀄컴조차도, 한국의 핸드셋 기업들이 퀄컴의 CDMA 기술을 상용화 해 줄때까지 미국증시에서 찬밥 도토리 신세였다.

이 책을 유쾌하게 감상을 끝냈지만,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정부의 외환 개입을 보니 또 한숨이 나온다.  가격으로 승부하는 중소기업에게는 비정한 말이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수출 주력 품목은 품질로 승부하는 제품으로 넘어갔다.  이는 작년부터 서서히 시작된 달러 약세에 오히려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의 수출량이 급상승 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핸드셋, PDP, LCD 제품은 미국기업이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아니며, 현대차의 경우에는 오히려 경쟁기업보다 가격을 올리고 10년 AS를 약속하며 저가 자동차의 이미지를 중고가 자동차로 끌어올리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러한 기업들의 성공으로 현재 우리나라 수출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수츨까지 둔화되고 있다고 언론에서 말을 하고 있지만, 35%증가율이 20%증가율이 된 것이 문제라면 더 이상 할말이 없다.  대기업의 매출액이 연마다 20%씩 느는 것이 쉽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그냥 바보거나, 경험이 전무한 똑똑한 바보다.  수출증가율이 마이너스 10%가 된 것도 아닌데... 만약 미국 수출기업들이 우리나라 언론기사들을 보면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 원화 가치의 상승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 실적에 비해 당연하며, 우리나라의 가치가 늘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불가능한 환율 방어를 위해 쓸데없는 국채 발행으로 내수 불황을 심화시키지 말고, 가격경쟁력에서 떨어지는 수출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폴 크루그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는 이상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밀고나갈 것 같다.  나도 크루그먼처럼 참으로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