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에서 환자가 전원되어 왔다.

환자는 30대 초반의 바탕이 대단히 아름다운 여자환자였는데. 첫 인상이 좀 묘했다.

그녀의 눈은 토안(兎眼)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 고행석 만화의 주인공 "불청객 구영탄"의 눈을 상상하시면 된다 - 구영탄 만화를 모르시는 비 문화적인 분은 눈꺼풀이 척 쳐진 허리멍덩한 표정을 연상하시면 될 듯하다 ), 양팔도 축 늘어진 채, 온몸의 관절이라는 관절은 전부 아랫쪽으로 쳐져있었고, 심지어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자태는 그 아름다움이 하늘을 찔러서, 얼굴을 마주보는 내 가슴이 두근 거릴 정도 였다.

그녀의 병은 중증 근무력증이었다.

이것은 비교적 드문편에 속하는 병이고, 여러 면역질환중의 하나다

이병은 인체의 면역기관에서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수용체에 대한 항체를 생산하는 병이다. 이말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이병의 기전을 간단히 설명하기로 한다

"사람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은 전기신호로 전달되는 전기자극에 의해서 움직인다, 사람 근육은 고무줄처럼 수축하고 이완하면서 관절을 가동하고 사지나 기타 장이나 심장을 움직이는데. 이때 근육을 수축시키는데는 전기자극이 필요하다 ( 우리가 전기를 만지면 찌릿~하면서 팔이 움찔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 .다만 이때 근육을 움직이는 전기신호는 생체전기이기 때문에 110 볼트가 아닌 아주 아주 작은 극미량의 전류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전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근육이나 기타조직에 있는 신경전달물질 체계에 의해서 만들어 지는데. 그중의 하나가 아세틸콜린 이라는 물질이다, 이 아세틸콜린이라는 물질이 신경세포에서 분비가 되면. 분비가 된 아세틸콜린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필요한데. 이 수용체는 신경세포에서 아세틸콜린이 분비되면 그것을 받아들여서 "찌리릿~~ "하면서 전기를 만들어내면서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자판을 치려면, 생각을 하는 그자체로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 호르몬이 신경세포에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하도록 명령을 내린다음, 이 명령으로 신경세포에서 아세틸 콜린이 분비되고, 이때 근육의 수용체가 " 우와~~ 아세틸콜린이다~~" 하고 소리치면서 그것을 받아 삼키면, 찌리릿~~ 하고 전기가 일면서 근육들이 꿈틀하면서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이런 과정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지면서 움직이는 것이며, 인체란 이렇게 오묘한 것이라, 요새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조물주의 설계론"을 주장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뇌가 다쳐서 움직이려해도 호르몬이 분비가 안되거나, 신경이 짤리거나 다쳐서 신경으로 아세틸 콜린이 전달이 안되거나, 혹은 아세틸콜린이 분비가 되어도 수용체가 인식을 못하면 사람은 근육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데. 대개 이런 병들이 호킹박사나, 뒤프레처럼 "근 무력증" 이라 불리는 병들의 원인이된다.

중증 근무력증도 그렇다.

어느날 사람이 힘이 없고, 왠지 팔다리가 늘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눈꺼풀마져 쳐지면서 마치 유인원처럼 양팔을 축 늘어 뜨린채 걷기도 한다, 그러다가 점점 사지에서 몸통근육으로 진행되면 숨을 쉬는 호흡근마져 무력화되고, 극단적으로는 심장을 뛰게하는 근육마져 기능을 잃으면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이 병의 원인은 여러가지인데, 그중의 하나가 자가면역질환이다.

면역이란 외부의 물질에 대해 내 스스로 방어벽을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그것을 물리치는 내쪽의 군사가 바로 항체다, 그런데 사람 스스로 어딘가에 오류가 생겨서 외부의 적이 아닌, 내 자신의 호르몬이나 내 자신의 화학물질을 적으로 인식하고 항체를 만들어 내기도하는데, 그런것이 자가면역질환,, 예를들면 류마티스 같은 것등이다.

중증 근무력증도 아세틸콜린이라는 물질을 적으로 인식해서, 아세틸 콜린 수용체를 항체가 둘러싸서 막아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신경에서 아세틸 콜린을 분비해도 근육이 찌리릿 ~~ 반응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때 가끔 가슴에 있는 흉선 이라는 조직을 제거하기도 하는데, 흉선이 바로 이 면역 세포를 만들어내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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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자는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무력증으로 내과를 찾아서 중증 근무력증 진단을 받고 , 흉선제거를 위해 우리과로 전과되었는데, 환자를 보는 첫눈에 나는 이미 환자가 범상치 아니함을 느꼈다,

그녀는 대단히 아름답고, 우아하며, 심지어는 말이나 태도하나까지 보통을 넘어서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뭐랄까,, 럭셔리 하다기보다는 챠밍하고 엘레강스하다고 할까,, 뭐 하여간 그런거 였지만, 아니 그래도 그녀에게는 그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나는 환자를 첫 대면하고 다음날 회진을 위해 특실에 입원한 환자의 병실을 방문하다가 그야말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주윤발이 등장하는 홍콩 느와르나, 알파치노가 등장하는 마피아 이야기에서나 봄직한 그야말로 어머어마한 검은 양복의 동생들이 병실복도에 도열해있었고, 내가 그앞을 지나 ( 솔직히 떨려서 뭘 했는지도 모르겠다) 병실에 당도 했을 때는, 검은색 줄무늬 휴고보스 스타일 양복을 입고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형님이 기다리다가 내가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나도 그때에는 전공의 트레이닝을 마치고 병원에서는 제법 한가닥하는 위치에 올라서, 내가 회진을 가면 그래도 레지던트,인턴에 학생까지 한 열명쯤 거느리고 다니는 형님 위치에 있었지만, 이 형님의 아그들에 비해 우리 아그들은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족탈불급이었다

형님은 아그들을 일개 대대는 거느리고 있었는데다, 그 덩치가 우리 아그들과는 상대도 되지 않아서 나로서는 심히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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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럴때마다 내가 느낀 점은 형님은 좀 다르더라는 것이다.

뭐랄까, 동생들은 그야말로 사시미부터 들이밀지만, 형님은 최소한 그것을 장미꽃으로 포장을 할 줄  안다는 점에서 다르다, 형님은 절대로 욕을 하거나, 품위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그것은 잘 계산된 행동이다,

원래 이 사람들은 "모든 영광은 위로, 모든 잘못은 아래로"라는 공식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이미 복도에 도열한 동생들의 모습만으로도 바로 앞에 사시미를 들이미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나도 사람인데 얼마나 긴장이 되겠는가?

그녀를 수술하다가 (가슴을 열고 흉선을 제거하는것이 그리 만만한 수술은 아니다 ) 만의 하나 잘못되면 , 그야말로 " 고마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 " 신세가 안된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형님은 내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의 은혜에 꼭 보답을 하겠다"는 말을 던지며, 부드러운 미소만 짓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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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을 거쳐 하여간 수술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형님의 여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품과 교양을 보여주었고, 근무력증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도 없음에도 회진을 갈 때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예의를 표했다, 속으로 "저 사람이 형님을 만나기 전에 대체 무엇을 했을까?"  궁금해 질 정도였다,

그녀는 마치 "신사임당의 재래,," 그자체였다

하여간 수술이 시작되고, 흉골을 절개하고 흉선이 제거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지만, 수술하는 나는 내내 긴장으로 땀이 뚝뚝 떨어졌다 ( 내가 그리 겁이 많은 편은 아닌데. 그정도 였으니, 혹시 이글을 보시는 형님들이 계시면, 제발 병원에 동생들을 데리고 오시지 않기를 빈다, 의사가 마음이 편치 않으면 수술결과는 더 좋지 않은 법이다 ).

다행히 수술 결과는 좋았지만 작은 문제가 생겼다,

이환자를 중환자실에 옮기고 ( 근무력증 환자는 숨을 제대로 못쉬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인공호흡기를 달아야하고, 아울러 스스로 분비물을 뱉어내는 기관지 섬모운동이 부족해서 기관지에서 생기는 엄청난 양의 분비불을 한시간마다 석션으로 제거해야한다 ), 몰핀을 투여해서 환자를 재우면서, 인공호흡기를 유지하다가, 5일후에 겨우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는데. 이 환자도 인공호흡기가 제거된 이후 약 일주일간 발작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번 사할린 할아버지처럼 그녀 역시 밤이면 울부짖으면서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그 때마다 황급히 몰핀을 투여하면서 그녀를 진정 시켜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한번 시작하면 사할린 할아버지와 달리 우리가 간호사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우아하던 그녀가 " 야기 씨* 놈들아 !! 니*미 *발. 아. 진짜 꼴** " (하여간 이 기호의 의미를 다 이해하시는분도 알만한 분이지만,..) 이렇게 방금 내가 표시한 이 문자의 백배쯤 심한 욕설과, 패설을 해대는 바람에 우리는 진짜 서로가 낮뜨거워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우리는 그녀가 한번 시작하면 황급하게 몰핀을 주고, 최대한 빨리 재우느라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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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기를 사흘,,

형님이 저녘에 면회를 왔다.

중환자실 복도에는 예의 그 동생들이 도열하고, 우리는 마치 대통령 순시나 나온듯한 그 분위기에 주눅이들어 감히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면회시간에 형님이 그녀 곁에 다가가서 막 고개를 숙이면서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에 갑자기 그녀의 오른팔이 번쩍 들리더니 형님의 따귀를 강하게 올려붙이고는, 난데없이 그 멋진 형님의 올백 머리를 쥐어듣으며 " 야이 씨 **아 ..! 너 때문에 이고생이잖아 이 ****"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속으로 " 이제 다 죽었다.."하고 벌벌 떨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형님은 그녀의 팔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떼어 놓더니,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 상황을 수습했다, 그리고 형님은 사시미는 커녕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 아 선생님 이사람이 정말 수술후에 힘이 돌아왔군요, 예전에는 팔을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아주 힘이 쎄졌어요,, 허허허~~"

그러고보니 그랬다, 그녀는 놀랍게도 수술 후 5일만에 근육의 힘이 되살아나고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경과를 보여주었다.

그 소란속에 형님은 면회를 마치고 돌아갔지만, 그녀의 소란은 계속되었다, 이제는 몰핀으로도 쉽게 조절이 되지않아, 내가 몰핀 증량을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의 팔다리를 침상에 묶던 간호사가 외마디 "세상에.!!" 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그녀가 너무 몸부림을 심하게 쳐서 환자복 하의를 묶은 끈이 느슨해져서 그녀의 서혜부 (사타구니 안쪽)가 살짝 드러났는데, 그 순간 그기서 무언가를 발견한 간호사가 다시 이게 뭔가하고 자세히 보고는 경악을 한 것이다..

그녀의 서혜부에는 검은 먹물로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 19** 년 **월 ** 일  첫 * "

여기서 앞의 두개의 **는 날짜를 나타내는 수자일것이고, 세번째 *는 놀랍게도 로마자로는 "X" 를 , ,영어로는 "ten" , 한자로는 "十"을 표현하는 우리말이었는데 그것도 쌍씨읏으로 "첫 *" 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그 우아한 여인과, 그리고 그 젊잖고 참을성 있는 형님이 어떻게 그런 육두문자를 서로의 몸에 새길 수 있단 말인가?  형님은 사랑마져도 그렇게 새겨두어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사랑이 그렇게 해서야만이 지켜지는 것이라면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또 그것을 자신의 몸에 새기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랑과,집착,,

주먹으로 얻는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밖에 얻지 못하는 것 일까? 그렇다면 굳이 주먹은 아니더라도, 돌아서면 거짓말이 될 검은 머리 파뿌리라는 달콤한 밀약으로 서로를 속이고 배반하는 우리들의 사랑은 좀 고차원적인 것일까?

나는 그순간 철학자가 되어야 했다..

먹물로 흔적을 새기는 형님의 방식이나.. 벗꽃처럼 져버리는 지키지 못할 사랑의 맹세를 남발하는 우리들의 방식...

어쨌거나 우리들에게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

...

그로부터 5일 후 그녀는 일반 병실로 옮겨지고 다시 내과로 전과가 되어 그녀의 치료는 이제 내 손을 떠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퇴근길에 모처럼 맞이하는 가을 석양이 고와서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주차장으로 가려는데, 멀리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만큼이나 그림이 좋은 한쌍의 남녀를 발견했다. 그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이었고,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형님은 뒤에서 밀면서 석양을 마주보며 산책을 하면서 도란도란 담소를 하고 있었다. 

사랑이 깊은 여느부부나 연인같은 그들의 한가로운 한 때는 그야말로 그녀의 몸에 새겨진 글씨와, 그 글씨를 새긴 남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또 형님의 여자와 형님이라는 관계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냈다.

가을의 낙엽,,

그리고 석양,,

휠체어를 미는 연인...

이 멋진 그림에도 세상이치가 그렇듯이 옥의 티가 하나 있었는데.그것은 바로 약 3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마치 기러기의 귀환처럼, 혹은 피리부는 사나이를 따르는 아이들처럼 줄을지어 형님의 휠체어를 따르는 동생들의 그림자였다..

아마 그들의 삶도 그랫을까?

한 남자의 사랑과 집착, 저 처연하고 우아한 여인의 무의식에 담긴 서슬퍼런 욕설과 저주, 여인의 몸을 탐한 후 날카로운 송곳에 검은 먹물을 찍어 여인의 고운 살갗에  "anniversary"의 기록을 남기던 남자의 미소, 그리고 휠체어,,

인생은,, 아니 사랑은 이렇게 우리에게 어려운 숙제를 던진다..

2005/03/28  시골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