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간의 서유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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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4월 10일 출발하여 5월 9일 돌아왔다.

두 달 이상 아내와 친구가 여행 도시를 물색하고 둘러 볼 곳을 조사하고, 일정을 조정하여 갔는데, 거의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총 6000 km 를 달렸고, 큰 무리 없는 일정이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니 불편함이 없을 수는 없지만, 해외로 나가는 장기간의 자동차 여행에는 동반자가 거의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면, 그런 불편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 내외만으로 해외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 할 것 같다.

당장 문제는 가다가 차에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사람이 없다.

이번에 같이 간 선영이 아버지는 차에 대해서도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문제 해결을 잘 해 내는 사람이다.

자동차 여행의 동반자로서는 최고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거의 준비한 것이 없다.

방문하는 나라의 간단한 역사와 기타 사항을 조금 조사한 것이 전부이다.

아,

돈을 대었지.

 

4월 10일  출발

김해에서 인천으로 바로 가서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12시간 가량 걸렸는데 영화 3편 보고 식사하고   잠 좀 자고 하니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중에  공항에 있는 허츠 렌터카 회사를 찾아 우리가 탈 자동차를 인계 받았다.

SKODA, 수동기어 닷지형 이었다.

폭스바겐 그룹의 체코 자동차 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자동차 회사중 하나이다.

 

자동차 출발 이후 첫 4~5일간은 악몽의 연속이었고, 한달 겪을 모든 고생을 그 때 다 한 것 같다.

 

처음 가는 해외의 자동차 여행의 문제는 공항에서 바로 터졌다.

당장은 공항을 빠져 나가야 하는데 네비게이터가 한국과 달리 느려서 길을 바로 바로 찾아 주지 않고 항상 뒷북을 치는 것이었다.

우왕 좌왕하다가 갈림길을 만났는데 네비게이터는 말이 없고 ,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며 멈칫하는 순간  시동이 꺼져 버렸다.

수동기어인 탓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생긴 일이었다.

주 사장이 당황하면서  시동을 다시 켜 보지만 아무리 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하필이면 차가 선 곳이 공항 도로 중에서 갈림길에 멈춰 버린 탓에 우리 차가 두 차선을 가로막아 버렸고, 뒷차들은 빵빵 거리면서 난리가 났다.

비는 부슬 부슬 내리고 주변은 이미 어두워 졌는데, 아무리 해도 차 시동은 걸리지 않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수동기어를 늘 몰고 다니던 주사장이건만 대책이 없었다.

내가  내려서 차를 밀어 보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베레모를 쓴 군인 서너 명이 뭐라 뭐라 소리 치면서 소총을 들고 나타났다.  정말 차 서고 불과 5분도 안되는 시간 이었는데.

허걱!

이거 뭔 문제가 터졌구나.

까딱 하다간 테러범으로 오해 받아 맞아 죽는 거는 아닌가!

 

어두운 밤에, 총을 든  검은 군인들이 뭐라 뭐라 소리를 질러 대는데 말귀는 못 알아 듣겠고, 차는 여전히 시동이 안 걸리고, 뒤에는 버스를 비롯한 차들이 빵빵 거리고 있고 비는 내리고,나는 그 비를 맞으면서 차를 밀어 보고 있는데..….

 

허둥대는 사이에 갑자기 시동이 걸려서 겨우 그 곳을 빠져 나와 다시 주차장으로 원위치 하고는, 나가는 길을 다시 짐작해 보고 아까 간 길과는 다른 길을 택해 시도 한 결과 무사히 공항을 빠져 나갔다.

 

돌아 오는 길에 그 자리를 지나면서 모두 크게 웃었다.

 

당황스럽고 식겁한 경험이었지만 그게 또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4~5일간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어쨌든 그 날은 그렇게 해서 바로 예약된 호텔로 들어가 잠을 잘 수 있었다.

 

4월 11일

오늘은 갈길이 멀어서 8시에 호텔에서 출발하여 베르사이유로 향했다.

베르사이유는 파리 서쪽으로 가까운 곳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은 워낙 유명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당시에는 큰 감흥이 없었다. 게다가 전날 혼이 반쯤 빠져 나간 뒤여서 인지 정신이 좀 없었다.

입구에 넓은 광장이 있고 문에는 금칠을 한 조각상이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어마어마한 넓이의 정원이 있고 궁전 앞으로 길게 난 운하가 있었다.

까마득하게 긴 정원이고 운하였다.

 

궁전내부는 화려한 장식과 벽화 천정화가 그려져 있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도 있었다.

 

이 궁전은 루이 15세가 지었고 루이 16세가 애용하였다 한다.

그 유명한 거울 방은 소문 만큼이나 화려하였다.

내부 관람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정원을 일주하는 미니 열차가 있었다.

잡아타고 돌아 보는데, 그 규모에서 일단 사람을 압도 한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트와네트가 살았다는  곳이 특히 예뻤는데, 루이 16세가 앙트와네트와 결혼 하면서 그녀에게 준 ‘부케’란다.

 

오스티리아에서 시집온 앙트와네트는 소박한걸 좋아해서 소박하게 보이도록 꾸몄다 하는데, 한껏 소박하게 보이도록 노력은 했지만 소박하게 꾸미기 위해 엄청난 돈이 들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있었다.

호수를 파고 그 주변에 예쁜 집들이 호수에 비치도록 되어 있었고, 작은 포도밭도 만들어져 있었다.

사진이 기가 막히게 예쁘게 나오는 곳이었다.

집들은 수백년이 지난 탓에 낡았고 계단은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무로 된 집이어서 낡은 것이고 그건  곧 소박하긴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으리으리한 대리석 궁전을 생각하면.

 

배도 고프고  정원 내의 식당도 그럴싸 헤서 거기서 점심을 해결 하였다.

스테이크와 샐러드 등으로 주문 했는데 감자칩이 같이 나왔다. 맥주도 겸해서 주문하고.

프렌치 프라이가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 그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때 나온 감자 칩을 그 후 30일간 지겹도록 먹게 될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음식을 시킬 때 반드시 음료를 같이 시켜야 하는데  이유는 음식에 물기라곤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물이든 콜라든 맥주든 와인이든 뭔가를 시켜야 하는데, 이거나 저거나 값은 거의 비슷하다. 물값이 장난 아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맥주나 와인을 시키게 되지만, 사실은 돌아서면 다시 물을 먹어야 할 판이다.

그렇지만 음식이 아무래도 느끼하다 보니 와인이나 맥주, 하다 못해 콜라를 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30일 동안 마신 맥주와 와인 값이 수월찮다.

 

베르사이유는 큰 도시가 아니다. 궁전이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가 정문을 찾느라 도시를 빙빙 도는 사이에 그 궁전의 담벼락을 따라 돌게 되었는데, 도데체 얼마나 큰 지를 한참 돌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오전관광을 마치고 다시 근처의  쥐베르니로 갔다.

여길 가는 이유는 모두가 같다.

모네의 정원을 보기 위한 것이다.

모네의 수련 그림은 워낙 유명하고, 모네는 이 마을에서 43년간이나 살았다. 그의 그림의 상당 부분이 이 곳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고 그 정원을 그대로 그린 작품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파리에 있는 오랑줴리 미술관은 모네의 수련그림이 주 전시품이다.

정원은 듣던데로 예뻤다.

아직 4월이라 꽃이 다 자라지 않고 피지도 않아 아쉽긴 했지만, 작은 호수와 늘어진 수양버들,드문 드문 띄워진 수련들  그리고 그 옆을 흐르는 작은 개울과 둘러싼 대나무 숲들,앙증맞은 작은 다리들, 아직 피지 않은 꽃나무들을 심어 둔 꽃밭….

아내의 말에 의하면 모네는 일본에 상당히 매료되었다고 하는데, 정원도 언뜻 일본 냄새가 난다.

 

그가 살던 집은 소박하고 그가 쓰던 물건들과 그림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일본 여인들의 그림도 다수 있고.

 

모네는 90세 넘게 살았고 오래 산 만큼 그린 그림도 많다.

그리고 다른 미술가들과는 달리 생전에 그림이 잘 팔려서 돈을 좀 벌었다.

그래서 이런 집도 짓고 정원도 만들만한 재력이 있었던 것이다.

오래 살아야 노벨상도 받듯이, 예술가도 오래 살아야 작품을 인정받을 기회도 생기고 돈도 벌 수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궁핍한 삶을 살았다고 알려진 이면에는 단명했던 것이 그 이유일지도 모르는 것…

 

아내는 수련이 그려진 접시를 기념으로 샀다.

딸은 그곳에서 수련 그림을 기념으로 사 오더니만.

 

여자들은 이런 곳을 좋아하나봐.

 

모네란 이름을 들으면 아네모네란 꽃이 생각 나는데, 인상파의 효시가 마네란 화가이고 모네는  꽃을 피운 사람 중에 하나인데  아네 모네   마네 모네….

 

자 이제 멀고 먼 길을 가야 한다.

다음 목적지는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서부 해안의 몽 생 미셀의 수도원이다.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인데 지금부터 장장 500km 정도를 가야 한다.

 

서쪽으로 달리고 달려서 밤 10시 경이 되니, 저 멀리 몽 생 미셀의 수도원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도 없고 깜깜한 평원에  오로지 수도원의 불빛만이 떠 있다.

어느 정도 가까이 가니 호텔들이 몇 개 있었지만 야경을 가까이서 보려면 가까운 호텔에 묵어야 하니  다 지나치고 계속 불빛쪽으로 달렸다.

 

수도원 근처 마을 가까이 도착 했는데

아이구야.

길이 막혀 있고 더 이상 접근이 안되는게 아닌가.

다시 길을 돌려 다른 곳으로 접근하여  코 앞에 호텔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차단막이 내려져 있고 들어갈 방법이 없다.

지금 다시 아까 그 호텔들로 돌아 갈수도 없고.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일단 내려서 걸어서 호텔로 가서 여차 저차 알아보니, 호텔에 숙박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차단막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좀 비싸긴 하지만 어쩔 수없이 숙박하기로 했다.

들어가니 엘리베이터가 없고 짐을 계단으로 들고 올라가야 했다.

회랑에는 몽생 미쉘 수도원의 사진이 다양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다.

 

야경을 보기 위해 짐을 풀 사이도 없이 옷만 더 두껍게 입고 바로 나갔다.

이 수도원은 밤에 보고 다시 낮에 보고 두번을 봐야 제 맛이라고 해서..

 

수도원까지는 꽤 멀어서 무료 버스가 자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원래 이 수도원은 돌 섬에 지어진 것으로 육지와는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가 나서 연결되어 있고, 현재 훨씬 큰 도로를 건설 중이었다.

과거에 올려 놓은 사진을 보면  연결도로가 없어서 바다위의 불빛이 매우 인상적인데 , 도로 때문에 오히려  너저분해 보인다.

편리함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이 수도원은 보면 참 감탄이 절로 나온다.

돌섬을 깎아 길을 내고 집을 짓고 거대한 성당을 지었는데, 그 규모가 매우 크고 미로 처럼 길을 낸 것이  과연 인간의 집념이 어디까지인가, 경외심이 든다. 당시에 무슨 기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 남은 29일간 우린 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보게 된다.

대부분이 중세에 지은 것들이고 일부는 이슬람 사원을 성당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서양의 중세는 아마 종교에 모든 열정을 쏟은 시대였던 것 같다.

미술도 조각도 성당도 문학 작품도 모두 신과 관련한 것이다.

 

지금은 그 열정이 과학으로 이전되었고.

 

다음 천 년은 인간들의 열정이 어디로 향할까.

 

내일 다시 여기를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