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그리드 사업은 한국전력의 장기 비전을 실현하는 핵심 전략 중 하나다. 한국전력은 2020년 ‘글로벌 톱 5’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목표 아래 지능형 전력망 구축과 이를 활용한 융합 서비스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한전의 스마트그리드 전략은 곧 대한민국의 스마트그리드 전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전이 국가 전력망을 책임지고 정부 정책과 긴밀히 연동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전은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위한 대단위 투자 계획도 공개했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매년 4000억원씩, 총 8조2160억원을 투자한다는 마스터 플랜이다.

조선미디어 그룹의 경제투자매체 조선비즈(www.chosunbiz.com)는 한전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배성환 실장, 홍성의 팀장, 김광의 팀장 등 주요 관계자들을 모시고 공개 포럼을 진행했다. 다음은 한전과 조선비즈 투자포럼 위원들과의 질의응답.

◆ 한국의 스마트그리드 “늦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선두 그룹”

- 전 세계 국가와 비교해볼 때 한국의 스마트그리드 수준은 어떠한가. 늦은 것이 아닌가.
“각 분야별 한국을 앞선 나라들은 있다. 다만, 지능형 전력망부터 지능형 소비자, 지능형 운송, 지능형 신재생, 지능형 전력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없다고 봐도 된다. 정부와 민간 사업자가 총 2395억원을 들여 2009년부터 5년간 추진하는 제주도 실증단지 사업은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종합판이다. 한국이 스마트그리드 분야에서 크게 앞서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선두 그룹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현재 정부는 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위해 제주도에 실증 단지를 만들었다. 제주도 실증 단지에서 한전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전 컨소시엄은 ▲지능형 전력망 ▲지능형 소비자 ▲지능형 운송 ▲지능형 신재생 ▲지능형 전력서비스 등 스마트그리드 5대 핵심 분야에 모두 참가하고 있다. 제주도 실증단지 총 사업비 중 42%에 달하는 1015억원을 한전 컨소시엄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전 컨소시엄에 참여한 업체수도 77개에 이른다.”

- 한전은 애초부터 해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 스마트 그리드 본 사업에 진출한 사례가 있나.
“최근 호주에서 진행된 2억 달러 규모의 스마트그리드 프로젝트에서 IBM 컨소시엄과 한전 컨소시엄이 최종 라운드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IBM 컨소시엄에 밀려 한전 컨소시엄이 고배를 마셨지만, 중요한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한다.

IBM이 미국에 뿌리를 둔 다국적 기업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한전 컨소시엄에도 약점이 있었다. 1~2년 이상 스마트그리드를 운용한 실적 자료가 아직 없다. 국내에서 스마트그리드 실증 사업으로 유일한 제주도 스마트그리드 실증 단지의 경우, 2009년부터 지난 5월까지는 인프라 구축 사업이었다.

이달부터 2013년 5월까지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2차 사업인 운영 사업에 들어가면, 스마트그리드 운영 실적을 확보하게 돼 해외 곳곳에서 진행 중인 스마트그리드 수출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스마트그리드의 산업 연관 효과는 무엇인가.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전기배터리나 스마트 미터업체들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하반기부터는 전력을 똑똑하게 쓰는 스마트 가전이 출시된다. 풍력발전기처럼 전력 생산이 고르지 않은 발전기에는 전력품질 보상장치라는 것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한전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기와 스마트 그리드 기기들을 패키지화해 라오스 등 동남아에 수출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내 중소 IT업체와 한전이 공동으로 해외에 나간다.”

- 정부 정책이 바뀌면 한전의 스마트그리드 사업도 추진력을 잃을 것이 아닌가. 스마트그리드는 정책 의존도가 큰 사업이다.
“정부 정책이 바뀌면, 일부 영향이 있겠지만,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한전의 계획이다. 전력망을 지능형 전력망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은 세계적인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

◆ 한전의 대용량저장장치(ESS)는 ‘리튬 이온’ 방식

- 스마트 그리드 구현을 위한 핵심 제품이 대용량 에너지 저장시스템(ESS)일 것이다. 전기 요금이 싼 심야 시간대에 전기를 받아 ESS에 저장해두고, 피크 타임(Peak Time) 때 저장해둔 전기를 쓰면 전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한전은 ESS에 대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한전은 지난해부터 삼성SDI(006400) (156,500원 ▼ 3,500 -2.19%), LG화학(051910) (491,500원 ▼ 2,500 -0.51%)등과 함께 ESS를 정부 과제로 공동 개발 중이다. 올 하반기에 제주도 스마트 그리드 실증 단지에 ESS를 설치해 내년 초에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실증사업에 들어가는 ESS의 기술방식은.
“구체적으로 공개하기에는 이르다. 리튬 이온 방식이며 장주기용으로 2시간 이상 대응 가능한 제품을 기본 스펙으로 한다. 소디움을 이용한 ESS의 경우 세라믹 기술이 필요한데, 일본 업체들이 이쪽 분야의 다양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우리는 리튬 이온 배터리쪽을 검토 중이다. ”

- 리튬 이온 배터리는 여전히 비싸다.
“현재 대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는 양산 단계가 아니다. 시제품이기 때문에 가격을 예측하기 어려우며 매우 유동적이다. 보통 현재 kWh당 배터리 가격이 900달러라고 보는데, 정부 보조금을 주더라도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야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할 것이다. 정부 보조금 없이 ESS가 팔리려면, 현재 가격의 5분의 1까지 떨어져야 한다.”

◆ 한전 “전기자동차 충전소 사업에도 진출할 것”

- 전기자동차 충전소 사업에 진출할 계획은.
“전기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 충전소 사업에 진출할 것이다. 한전은 전기차 시장 개막에 대비해 충전소 관련 기술을 개발했으며 요금제도 준비해 놓았다. 다만, 정부 보조금 지급 여부에 따라 전기자동차 개화 시점이 달라지므로 시장 진출 시점은 정부 정책에 달려 있다. ”

- 한전이 고려중인 충전소 방식은.
“완속과 급속 충전방식 등 다양한 충전방식을 검토, 시뮬레이션 중이다. 전기차에 접촉해(코드를 꽂아) 충전하는 방식이 가격이 저렴하고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 서남표 KAIST 총장이 주도하는 온라인 전기자동차 방식(비접촉식 충전방식)을 검토해봤나.
“현재 검토 사항으로는 비접촉 방식은 시설 투자비가 과도할 것으로 우려된다. 현행 법규상 안전 문제도 걸린다. 현행 도로법에 도로 전기시설은 지하 1m 아래에 매설이 가능하다. 온라인 전기자동차는 10~20cm에 전기시설을 매설해야 충전이 가능하니 도로법과도 맞지 않는다. ”

- 환경부는 2020년까지 전기자동차 100만대 보급이 목표다. 전기차가 보편화하면 한전의 전력 공급에 부하가 걸리지 않을까.
“100만대가 보급되면 630만MW 규모의 추가 전력이 필요하다. 전체 전력의 1% 정도 비중인데, 잉여 생산 능력을 활용해 새벽에 발전한 양을 공급하면 문제가 없다.”

- 스마트그리드 관점에서 전기차는 어떤 의미가 있나.
“휴대폰을 밤에 충전하기 위해 콘셉트에 꽂아두지 않나. 소비자들은 심야에 싼 전기로 전기차를 충전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기차는 전력 소비 시간대를 분산시킨다.”

◆ “전력 재판매에는 반대”

- 일각에서는 스마트그리드가 활성화하려면 누구든지 전력을 재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전력 공급이 경쟁 체제가 될 때 더 똑똑한 전력망을 쓰려는 수요가 발생한다는 논리다.
“상당히 민감한 부분이다. 한전 입장은 공식적으로 전력 재판매를 반대한다. 구역별로 별도 발전사업자가 전력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구역전기사업’이 사실상 실패했다. 관련업체가 부실화되면 한전이 떠안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 전기요금은 경쟁으로 더 낮출 수 없을 만큼 매우 낮다. 다른 업체가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받아서 이를 다시 공급하려면 마진을 붙여야 하는 데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어난다. 그런 제도가 바람직한가. 한전은 공기업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대신 정부는 전력 수요를 줄이면 이를 보상해주는 수요 관리 상설 시장을 준비 중이다. 스마트 가전이나 전기 배터리 등을 활용해 피크 타임의 전력 소비를 줄이면, 정부가 돈으로 보상해주는 것이다. 수요 관리 시장을 상설화하면 수요 관리 전문 기업도 등장하고, 전력 소비 감축도 경쟁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 스마트그리드 확산을 위해서는 양방향 통신 기능을 갖춘 스마트 미터 보급이 필수적이다.
“한전은 스마트 미터를 매년 100만 가구에 보급해 나갈 계획이다. 무료 보급이 원칙이다. 스마트 미터 설치 비용을 고객에게 부담시킨 미국과 유럽의 경우, 스마트 미터 설치 비용이 스마트 미터 설치로 줄인 전기 요금보다 많다는 민원이 제기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소비자의 오해도 있었고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이슈도 있었다.

한전은 소비자에게 스마트 미터 설치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고 수명이 다한 기계식 미터기를 스마트 미터기로 교체해나가는 방법으로 스마트 미터 보급을 늘릴 계획이다. 검침 인건비 감소 등의 이익을 고려하면 무료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

◆ “일본 원자력 사태 이후 스마트 그리드는 반드시 가야 할 길”

- 일본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가 각광받고 있다.
“스마트그리드는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다. 중국, 인도 등에서 에너지 소비가 늘어 유가도 오름세다. 신재생 에너지를 전략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쓰고 전기차를 보급하려면 스마트그리드라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스마트 그리드는 국가 총 에너지 소비량을 줄인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면, 발전소를 더 지을 필요도 없고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줄어든다. ”

- 김쌍수 한전 사장의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대한 관심은.
“한전의 미래 먹거리 5대 사업 중 하나로 강조하며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는다. 제주실증단지도 여러차례 방문했으며 다양한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예를 들면 심야시간 때 값싼 전기로 냉각 기능을 확보해뒀다가 피크 시간대에는 전기를 안 쓰는 냉장고를 개발하자는 의견을 가전업체에 준 적도 있다.”

◆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3대 성공요인은

- 스마트그리드 사업에 참여중인 통신업체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지 못해 불만이다.
“전력 사업은 길게 봐야 한다. 통신업체들은 단기간에 수익을 뽑아야 하는가 보다. 발전 사업은 호흡이 긴 사업이다. 보통 발전소를 건설하면, 15년 후에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통신과 전력은 DNA가 다른 사업이다. 이런 전력 사업의 특성을 이해한 사업자가 성공할 수 있다. ”

-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성공요건 3가지만 든다면.
“우선, 기술 자체에 경제성이 있어야 한다. 정부 정책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둘째, 전력 소비자의 참여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내야 한다. 보조금 등 각종 유인책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셋째, 해외 기업과 경쟁해도 이길 수 있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