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통가에서는 ‘패션 3주’라는 말이 유행이다.

청주, 원주, 진주가 바로 패션3주의 주인공. 서울 명동, 대구 동성로, 광주 충장로 등 전통적인 패션거 리들조차 불황의 직격탄에 허덕거리는 와중에, 이들 거리만은 불황에서 약간 비껴나 있다.

세 도시에 위치한 가두매장 중 전국 가두매장 1위를 차지하는 곳 이 즐비하다.

권리금도 상당하다.

소비 기반은 탄탄하지만, 아직 백화점은 없 어 거리 상가들이 여전히 잘 나간다는 분석이다.

유통가 관심이 집중돼있는 세 도시. 3주간에 걸쳐 청주, 원주, 진주 패션거리 르포를 연재한다.

10월 17일 월요일 정오. 거리가 벌써 붐비기 시작한다.

보통 월요일은 거리가 한가하게 마련이다.

쇼핑거리는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 주말에 쇼핑을 마친 사 람들이 월요일에는 잘 나오지 않기 때문. 청주 성안길은 달랐다.

워낙 사람이 많아 모르는 사람들과 팔꿈치를 부딪혀가며 걸어야 하는 일요일의 번잡함을 피 해 쇼핑 나온 사람들로 월요일답지 않게 복작댄다.

고도(古都) 청주의 북문과 남문를 잇는 대로. 일명 ‘성안길’. 그 성안길이 요즘 화제다.

청주 성안길이 전국 최고 패션거리로 올라섰다는 소식이 널리 알 려지면서다.

LG패션 서영주 과장은 “신규 브랜드 런칭 때 일단 서울 명동과 청주 성안길에 안테나숍 개설을 검토한다”고 전했다.

명동은 워낙 전통적인 의미의 패션 중 심지이기에, 성안길은 가장 역동적인 패션거리로 고객 반응을 바로바로 알아보 기에 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뿐인가. 김재구 제일모직 대전지점 남성복영업팀 과장은 “148만명이 모여사 는 대전보다 63만명이 사는 청주 매장들 실적이 1.5배 이상 뛰어나다”고 했다 . 2층짜리 LG패션 청주남문점은 지난해 매출액이 68억원에 달했다.

올해 매출 액 증가율은 20% 선으로 올해는 80억원도 넘을 듯 싶다.

청주 지역은 물론 LG 패션 전국 가두매장 중 최고 실적이다.

20여개 유명브랜드 신발을 한 곳에 모 아놓고 파는 ABC마트는 최근 청주직영점을 개설했다.

“개점 전 시장조사를 따 로 하지 않았다”는 게 윤경원 청주점장 얘기였다.

“청주는 열기만 하면 무조 건 되는 곳이란 확신이 있었다”는 것.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내용들이 다.

■성안길, 남문로·북문로로 구성 중앙거리 1.5km가 최고 요지■ ‘정말 그럴까?’하는 물음표 하나 가슴에 품고 찾아간 성안길은 놀라웠다.

‘예전 이 곳에 북문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돌비석에서 시작하는 ‘북문로’. 청주우체국을 기준으로 더 아래쪽은 ‘남문로’다.

남문로 끝에는 별다른 표식 이 없다.

그저 사거리 한 코너에 ‘뱅뱅’이 있다는 이유로 ‘뱅뱅사거리’라 불린다.

북문로 초입부터 뱅뱅사거리까지 길이는 고작 1.5km 남짓. 그 안에 웬 만한 브랜드 매장은 다 들어있는 듯 싶다.

흔히 ‘본정통, 줄여서 본통’이라 불린다는 중앙로가 아닌, 뒷골목 쪽까지 따져보면 소위 패션 매장이 500개도 넘어 보인다.

예전엔 남문로가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단연 북문로가 뜬다.

일단 북문로가 좀 더 널찍하다.

극장은 물론 젊은이 거리를 표방하고 나선 ‘로데오거리’도 북 문로에 있다.

어디든 젊은이들이 많은 곳이 더 활기차 보이는 법. 이 법칙은 성안길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대형 복합영화관과 쇼핑몰이 함께 들어있는 ‘쥬네스’가 옛 청주 경찰서 터에 선을 보이면서 중심축이 북문로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쥬네 스 앞은 그 날도 어김없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쥬네스 맞은 편엔 서울에서도 최고 번화가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는 인테리어숍 ‘코즈니’ 와 신발전문매장 ‘ABC마트’가 있다.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로데오 거리’가 나온다.

역시 중앙로에서 왼쪽 으로 난 골목이다.

A6, NOTON, 캘빈클라인진, 닉스 등 10대 후반~20대 초반을 겨냥한 브랜드들로 가득 찬 로데오 거리 중앙선에는 벤치와 각종 조각품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벤치마다 담소를 즐기는 학생들로 가득 찼다.

대성여자상업 고등학교 2학년이라 자신을 밝힌 이영미양은 “내일 소풍을 가기 때문에 옷을 사러 나왔다”고 전했다.

친구들과 만날 땐 무조건 로데오 거리에서라고 했다.

벤치가 있어서 편하기 때문이란다.

유례없는 불황기라는, 그래서 심지어 명동에 위치한 매장도 어렵다는 요즘, 성 안길은 어떻게 이렇게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을까. ■청주·흥업백화점 있어도 백화점보다 가두점 더 선호■ 우선 백화점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백화점’ 이름을 단 곳이 전혀 없지는 않다.

20년 전만 해도 청주시민들 최고의 약속장소였다는 ‘청주백화점’과 외 관만 봐서는 백화점인지, 쇼규모 쇼핑몰인지 구분하기 힘든 ‘흥업백화점’이 있다.

둘 다 성안길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이름만 백화점이지, 내부는 백화점 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특히 6층짜리 흥업백화점엔 알만한 브랜드보다 난 생 처음 보는 브랜드들이 더 즐비하다.

자연히 유명 브랜드 옷을 사려면 백화 점이 아닌 가두매장에 가야 한다.

아무리 백화점이 없어 반사이익을 받고 있다 해도 소비해줄 사람들이 없으면 그렇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이에 대해 민창식 로가디스 청주프라자 대표는 “63만명 청주시민만이 아닌 근 처 지역 100만여명이 모두 고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민 대표가 분석한 자사 매장 고객과 매출 비중을 보면 청주시민이 55%, 타지역민이 45%에 달한다.

민 대표는 또 “충주 인구가 청주의 3분의 1이다.

인구 비율대로라면 청주 매장 매출이 충주의 3배 정도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10배도 넘는다.

그만 큼 근처 지역에서 청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청주 외곽 경계인 청원군과 자동차 10여분 거리인 증평, 괴산 뿐 아니라 충남 연기, 조치원 등지 에서도 청주로 쇼핑하러 온다”라고 덧붙였다.

소비층이 탄탄한 것도 강점이다.

청주 서부 지역에는 LG전자, LG화학, LS산전, 하이닉스, 네슬레, 한국도자기 등 대기업 계열의 공장이 여럿 있다.

여기서 근무하는 상근인력만 2만명이 넘 는다.

전통적인 교육도시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청주에는 충북대, 청주대, 서 원대, 청주교육대 등 4개 대학이 포진하고 있다.

동시생활권인 조치원에는 고 려대와 홍익대 등 분교가 서너개 있다.

이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성안길의 주요 고객 중 한 계층이라는 분석이다.

ABC마트에서 신발을 고르던 서원대 3학년생 박주미씨도 그런 경우다.

수원이 고향이라는 박씨 얘길 들어봤다.

“청주에 온지 3년 됐지만, 학교와 하숙집만 왔다갔다하니 성안길 외엔 다른 곳을 잘 모른다.

그래서 쇼핑을 할 땐 무조건 성안길로 나온다.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다 그렇다.

” 성안길 주변에 각종 관공서가 포진해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북문로 본통에서 바로 청주시청이 보인다.

다소 의아하게 보이지만, 청원군청도 북문로에 있다.

관공서에 일이 있어 나온 사람의 상당수가 자연스레 성안길 쇼핑객으로 변신한 다.

청주 토박이라는 주부 유윤효씨 역시 “평상시에는 주차공간이 잘 마련돼 있는 할인점이나 외곽 패션몰 등으로 쇼핑을 가지만, 시청 등에 볼 일이 있을 때는 성안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2007년 현대백화점 입점 성안길 상인들 고객 단속 나서■ 이처럼 성안길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성안길에서 장사 한번 해보려는 예 비 창업자들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성안길에서만 10년 가까이 장사를 해왔다는 온미옥 닥스골프 청주점 대표는 “최근 2∼3년 간 외지에서 온 사람 들 비중이 부쩍 높아져 지금은 절반 가까이 되는 것 같다”고 사정을 전했다.

이들을 노리는 부동산 경쟁도 치열하다.

공원부동산 김윤정 컨설턴트는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귀 띔했다.

보통은 성안길 한켠에 그냥 앉아있다.

시장조사를 하는 것 같은 사람 이 있으면 바로 상담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김씨는 “현재 성안길에 물건이 딱 세 개 있다”고 했다.

그 중 남문로 본통에 위치한 15평짜리가 최고 금싸라기 매장이란다.

보증금 1억5000만원에 권리금 1억5000만원, 월세는 무려 500만원 이다.

1억5000만원 권리금도 한참 싸게 부른 것이라 했다.

하긴 “본통에 위치 한 B급지 상가의 경우 권리금이 평당 1200만~1300만원대”라는 말을 듣긴 했었 다.

이처럼 겉에서는 아주 화려해 보이는 성안길에도 물론 고민은 있다.

패션 거리 로서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패션과 거리가 먼 업종들은 계속 빠져나가는 중이다.

박종웅 LG남문점 대표는 “패션 아이템 말고는 다 별 볼 일 없다는 얘기가 돈 지 오래됐다.

예전엔 건물마다 지하와 1층은 패션 매장, 2층은 주점과 음식점 등이 즐비했는데 언제부턴가 2층의 주점과 음식점들이 하나둘 빠져나가 대학가 로 옮겨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밤에 본 성안길은 낮과는 좀 달라보였 다.

불빛이 전혀 흘러나오지 않는 2층 매장이 여럿 있었다.

2007년 하반기 예정이라는 ‘현대백화점’ 입점 소식은 더 치명적이다.

시내 중심부인 성안길과는 좀 떨어진 외곽지역이지만, 시내 끝에서 끝까지 1시간도 채 안 걸린다는 청주에서는 외곽지역에 위치해있다는 게 큰 단점이 아니다.

실 제로 성안길에서 만난 상인들 대부분이 “롯데백화점이 들어간 이후 가두매장 들이 팍 죽어버렸다는 전주처럼 되는 것은 아니냐”는 걱정을 내보였다.

지난해 말 성안길번영회 차원에서 ‘무료 주차권 배부’를 시작한 것도 미리미 리 고객 단속에 나서자며 시작한 내용 중 하나다.

성안길은 주차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게 최대 단점이다.

몇 년 전 쥬네스주차장이 대형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사정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주 편하다고는 할 수 없다.

성안길번영회는 성안 길 근처 곳곳에 위치한 20여개 유료주차장과 연계해 무료주차권을 배부한다.

고객들이 주차에의 부담 없이 성안길을 찾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현재 전국 최고 패션거리라는 청주 성안길. 현대백화점이 들어선 뒤에도 지금 의 위상이 계속될 수 있을지 세인들 관심의 눈이 쏠려 있다.

【청주시는】 ▶면적 : 153.4 ㎢ (전국 0.2%, 충북 2.1%) ▶인구 : 63만2028명 ▶산업단지 현황 : 227개 업체, 2만3096명 근무 ▶유래 : 백제 상당현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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