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 이야기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들은 모두가 아름답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색깔이 있기 때문이다. 봄에 돋아나는 새싹들의 연한 연두색이, 녹음이 우거질 때 면 진한 초록으로, 서늘한 바람과 함께 오색 단풍으로 변한다. 공작 날개의 현란한 색깔, 하등동물인 말미잘에서부터 사자의 황금빛 털에 이르기까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떤가? 자연으로부터 아름다운 색상을 얻지 못했다. 그 대신 아름다운 색소 를 사용 할 수 있는 지혜를 부여받은 것이다. 인간이 언제부터 색소를 사용하였는가? 염색의 역사에 대한 기록은 명확치 않다. 단지 이집트의 피라미드 내의 미이라가 인디고로 착색된 옷을 입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염색의기원은 기원전 인류가 옷을 입기 시작했을 때부터라 생각된다. 인간은 자연계의 변화에 따라 추위와 주위의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옷을 입게 되었고, 옷을 입기 시작할 때부터 미적 추구에 의하여 염색을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의 염료들은 물론 동, 식물 및 광물로부터 얻었으며 이것이 천연염료이다. 19세기초 유기화학의 발달과 더불어 천연염료, 특히 인디고 와 알리자린의 조성 및 화학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이들의 합성이 시도되었고, 한편으로는 석탄의 건류 시 생성되는 콜타르의 성분 분리 및 이의 이용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였다. 특히 1834년 Runge에 의하여 콜타르로부터 분리한 아닐린이 Unverdorben이 인디고를 분해하여 얻은 물질과 꼭 같다는 것이 확인되어 콜타르 성분으로부터 천연염료를 합성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 무렵 Hofmann, Mansfield등은 콜타르의 성분 분리에 열중하였으며 Hofmann은 그의 실험 조수인 Perkin으로 하여금 그의 연구실에서 분리한 아닐린으로 부터 말라리아의 특효약인 키니네를 합성하게 하였다. Perkin은 여러 번 실험을 되풀이하였으나 매번 키니네 대신 자색의 물질을 얻었을 뿐이었다. 이것이 최초의 합성염료인 Mauve의 발명이었다. 이는 Perkin이 사용한 아닐린이 분리가 정확치 못하여 다량의 아니시딘을 함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위대한 업적을 낳게 된 것이다. 이때 Perkin의 나이가 18세(1856년)였다. 1860년 Peter Griess에 의하여 방향족 아민으로부터 디아조늄염이 생성된다는 것이 밝혀져 아조염료합성의 기초가 되었으며, 1865년 Kekule에 의하여 벤젠의 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유기화학의 발달은 물론 콜타르 성분들의 명확한 구조가 밝혀지게 되고, 1868년 알리자린이 Grabe및 Liebermann에 의하여 합성되어 그 다음해에는 공업화되기에 이르렀다. 1876년 Witt에 의하여 제창된 발색단설은 합성염료의 연구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으며, 1893년 Vidahl의 황화염료의 합성, 1897년의 Heumann의 인디고의 합성, 1901년 Bohn의 인단스렌형 배트염료의 합성 등,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염료를 섬유에 반응시켜 섬유의 일부가 되게 함으로써 견고한 염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Cross와 Bevan을 비롯하여 Peacock, Granacher 등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며, 드디어 1956년 ICI사가 Perkin의 합성염료 발명의 백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셀룰로오스 섬유용 반응성염료인 Procion염료를 최초로 시판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CIBA사의 Cibacron염료, Hochst사의 Remazol염료 등 셀룰로오스 및 단백질 섬유용 반응성염료들이 시판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할 정도로 온 세계에 그들의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식민지를 위해선 전쟁을 해야 하고 전쟁을 하려면 총 과 대포가 필요했다. 따라서 철강업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제철 산업의 부산물로 콜타르가 발생하였다. 그때만 해도 콜타르는 쓸모 없는 부산물로 처리가 곤란했다. 따라서 이의 이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합성염료를 발명하게 된 것이다. 그때 인도는 면섬유의 주산지로 영국의 섬유산업의 원료 기지로 매우 중요하였다. 그러나 말라리아가 유행하여 많은 노동력이 죽어 감에 따라 이의 치료약인 키니네가 다량 필요하게 된 것이 합성염료 발명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염료들은 화약이나 폭약과 같이 질소 화합물이 많다. 따라서 평화시의 염료 공장이 전쟁 중에는 화약 공장으로, 전쟁이 끝나면 다시 염료 공장으로 변한다. 전쟁을 많이 한 나라들이 염료가 발달하고 오늘날 염색 공업의 선진국이 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영국이 그렇고 독일, 스위스, 이태리, 프랑스, 일본이 그렇다. 우리 민족을 백의 민족이라 한다. 원래 깨끗하고 평화를 좋아함으로 흰색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삼 사십년 전 만하여도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흰 치마, 흰 두루마기를 입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운동선수의 유니폼까지도 오색찬란하지 않은가! 합성염료가 출현한지 지금부터 꼭 145년 전의 일인 것과 우리 나라 중화학 공업의 시작이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된 삼 사십년 전 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흰색을 좋아해서 흰옷을 입었는지, 염료가 없어서 흰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는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아마 둘 다가 아닌가 생각된다. 합성염료는 천연염료에 비하여 종류도 많을 뿐 아니라 컬러 일드가 높고, 내광성, 내세탁성 등이 우수하므로 오늘날 일부의 공예 염색을 제외하고는 전부 합성염료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천연염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 인디고 이다. 물론 대부분은 합성 인디고에 의존하지만, 옛날 북미 대륙에서 목화밭의 농부나 노동자들은 인디고로 염색한 두꺼운 면으로 된 노동복을 입었다. 인디고는 마찰견뢰도가 매우 낮은 염료로 마찰하면 염착된 염료가 쉽게 떨어져 나간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일을 할 때 무릎이나 엉덩이 부분, 특히 마찰이 많은 봉재선이 있는 부위의 염료가 탈색되어 부옇게 된다. 이것은 염색물 로써는 매우 불량한 것이지만 금세기에 들어와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패션으로 인기 있는 블루진으로 누구나 한두 벌씩 가지고 있다. 노동자를 blue color라 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무실에서 white shirt를 입고 일하는 white color에 대응되는 말이다. 한 때 white color의 대명사였던 은행원들이 오늘날 노동자로 자처하고, 신성한 천직으로 추앙 받던 교사들까지도 노동조합을 만드는 세상이 되었으니 color로 구분하던 사회 구조는 옛 이야기로 영영 묻혀져 버리는 것 일가. 임 용 진 경북대학교 염색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