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자의 기질(Introvert or Extrovert)

 저는 평소에 인간의 심리에 대해 관심이 좀 많은 편입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무슨 행동을 할 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를 생각하며 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보는 게 재미있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다른 사람이 아닌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요즘같이 저 자신이 인간적으로 얼마나 부족한지를 실감하게 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는 식의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이성적인 존재임을 자부하는 인간의 내면이 알고보면 얼마나 불합리한 것으로 가득차 있는지 저 스스로를 바라보면서도 많이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난 이유가 '인간 이성의 불완전함'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이 이성에 의해 완벽하게 움직인다면 심리학의 연구 분야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 이성의 불완전함'을 투자와 연결시켜 증권시장에서의 투자자의 행태를 연구하는 '행태 재무학(Behavioral finance)'이라는 분야가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이 뒤죽박죽으로 마구 섞여있는 존재이며, 또한 사람마다 그 배합 비율과 분포가 다릅니다.  

 저의 경우에는 주식 투자를 공부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때가 투자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식의 습득 못지 않게 투자자의 기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을 때였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것 같아서입니다.

 "지식 못지 않게 기질이 중요하다"

 이 명제는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식은 후천적으로 습득 가능한 것이지만, 기질은 선천적인 것으로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질의 중요성은 아래에서와 같이 벤저민 그래엄과 워렌 버펫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의 가장 큰 적은 시장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그래엄은 말했다. 아무리 수학적/재무적/회계적 재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투자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가장 유명한 그래엄의 제자 버펫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엄식 접근 기법에는 중요한 원칙이 세 가지 있습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세번째 원칙은 진정한 투자자의 기질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를 갖춘다면 벌써 99%는 이뤄놓은 셈입니다. 그러지 못한 사람과 비교할 때 엄청난 이점이라 할 수 있지요"

p.195 [워렌 버펫 포트폴리오(The Warren Buffett Portfolio)]

 자, 투자에 있어 기질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질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벤저민 그래엄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현대 포토폴리오 이론가의 속삭임에 독자들이 평정을 잃는 경우가 생기면, 벤자민 그래엄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조언을 가슴에 새겨 두길 바란다.

"군중이 너와 의견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는 너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너의 데이터가 옳고 추론이 옳기 때문에 너는 옳은 것이다."

p.58 [워렌 버펫 포트폴리오(The Warren Buffett Portfolio)]

독립적인 판단력.

 저는 벤저민 그래험이 말하는 투자에서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질을 (주위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인 판단력"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벤저민 그래험의 저 유명한 Mr.Market에 대한 이야기도 결국 Mr.Market의 기분이 어떻게 변하든 그것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으로 투자자의 "독립적인 판단력"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식 투자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에 대한 피터 린치의 다음과 같은 언급도 "독립적인 판단력"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나는 주식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은 셋중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자질로서는 자제하며 견디는 참을성,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 정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상식, 고통을 감내하는 아량, 편견없는 마음, 쉽게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 끈기있게 버티는 지속성, 자신에 대한 겸손, 상황에 따른 유연성, 독자적 조사분석을 하려는 자발성, 실수를 기꺼이 시인하는 자세, 그리고 일상적인 혼란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 등이다.

p.98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One up on Wall Street)]

"독립적인 판단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솔직히 여기까지는 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가 누군가를 가리켜 "저 사람은 '독립적인 판단력'을 가진 투자자야"라고 말할 때 '독립적인 판단력'이라는 말이 조금 애매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을 했었고, 더구나 그것을 '기질'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으려면, 그 말을 뭔가 심리학적 측면에서 설명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평소에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지라 "그냥 언제 해 봤으면 좋겠다"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쓴 "사람 VS 사람"이라는 책을 읽다가 그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발견한 것 같습니다. 좀 길긴 하지만 그대로 인용을 해 보겠습니다.

우린 보통 수줍거나 말이 없으면 내향적이고, 사교적이거나 적극적이고 활발하면 외향적이라고 얘기하지만 본래의 정신분석적 의미는 좀 더 정교하다. 내향성/외향성의 분류는 정신분석가 융의 이론에 의한 것이다. 융은 심리학적 유형의 하나로 인간을 '외향형'과 '내향형'으로 구별하였는데, 그들은 주체(subject)와 객체(object)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어떤 사람의 행동과 판단을 결정하는 기준이 주로 객체에 의한 것일때 그의 태도는 외향적이며, 반대로 객체보다도 주체에 의해 결정되면 내향적이라고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미술 전람회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신문의 호평이나 화가의 지명도에 근거해 특정한 그림을 좋다고 평가를 내린다면 그의 태도는 외향적이다. 객관적 규준(規準)에 따라서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평이 좋고 그 화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도 자신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의 태도는 내향적이다. 그의 판단기준은 주관적 측면이 객관적인 사실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p.139-140 "심은하 VS 김민기" [사람 VS 사람]

요컨대, 이 글대로라면 자신의 판단을 중요시하고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투자자를 '내향적'인 투자자로, 그 반대의 성향을 보이는 투자자를 '외향적'인 투자자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이미 읽으면서 짐작하셨겠지만), 우리는 "내향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투자자가 투자에서 유리하다"는 일종의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투자에 있어서 기질이 그렇게 중요하다면(그것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일텐데) 자신에게 한 번 물음을 던져보는 일도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어떤 기질이십니까? 내향적입니까? 아니면 외향적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