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과 기업교육을 10년 가까이 하고 있다. 당연히 수없이 많은 고객을 만나는데 나도 모르게 그들을 평가하고 일이 잘 될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느낌이 너무 정확해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한 고객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전화 목소리만으로 좋은 인연이 될 것이란 느낌을 갖게 되었다. 무슨 이유인지 설명하기는 곤란하지만 목소리에서 신뢰감이 느껴졌고 예상대로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처음에 그 분이 나를 찾아온 이유도 재미있다. 라디오에서 내가 방송하는 것을 들었는데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옛 상사와 목소리와 느낌이 비슷해 만나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회사엘 가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 강의는 컨설팅으로 연결이 되었다. 나중에는 그 분의 아버님까지 알게 되었고 지금도 여러 면에서 좋은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첫 느낌이 맞은 것이다.

이런 경험도 있다. 같이 일을 하는 파트너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어떤 회사 사장에 대해 자랑을 했다. 그 사람이 우리를 너무 신뢰한다, 우리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데 이미 회사 내에는 모든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를 만나 도장만 찍으면 된다, 그런데 만나는 순간 뭔지 모르지만 이 분과는 일을 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은 비단이었다. 한 마디로 내 도움이 필요하니 꼭 도와달라는 그런 요지였다. 그것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계약을 미루더니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역시 첫 느낌이 맞은 경우다.

그런 저런 이유로 얼마 전부터 직관이란 단어는 내 관심을 끌고 있었다. 영화 첫 장면을 보는 순간 전체 스토리를 추론하게 되는 것, 회사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 회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 고객을 보는 순간 그 고객이 같이 일을 할만한 고객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문제, 왠지 모르게 이 사업을 하면 잘 될 것이라는 판단, 이런 직관의 정체는 무엇이고, 이것이 과학적인 것인지, 어떻게 하면 기를 수 있는지, 위험 요소는 없는 것인지 그러던 차에 <블링크, 첫 2초의 힘>이란 책에 대한 소개를 읽었고 바로 서점에 가서 구입을 했고 그 날 저녁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렇게 내게 필이 꽂힌 적도 별로 없었고, 그렇게 순식간에 읽은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역시 이 책은 내 기대를 만족시켰다. 직관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주었다. 몇 가지 살펴보자.

막강한 첫 2초의 힘
바둑에서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 둔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연구를 하고 고민을 했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란 의미이다. 오히려 오래 생각하면 잘못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다. 쇼핑을 할 때도 그렇다. 처음에 필이 온 물건을 사면 실수의 확률이 줄어든다. 백화점을 다 뒤지고 다닌 후 구입했다고 더 나은 것은 아니다. 4지선다형 시험문제를 맞출 때도 해당한다. 처음에 맞는 답을 괜히 고쳐 실패한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이 책에 대표적 사례가 등장한다.

한 미술상이 쿠로스 상이라고 추정되는 오래된 석상을 가지고 폴게티박물관을 찾아온다. 박물관 측은 14개월간의 조사 끝에 석상이 진품이라고 결론내리고 엄청난 비용을 쓰고 그 물건을 구입한다. 그런데 박물관을 방문한 한 미술사학자는 석상을 보자마자 가짜라고 말한다. 결국 그의 주장대로 이 석상은 가짜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인가? 미술사학자는 오랫동안 옛날 석상을 수없이 취급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것에 대한 안목, 통찰력을 갖게 된 것이고 처음 보는 순간 아니다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판단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특정 교수가 강의를 얼마나 잘 하는지 판단하는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가? 듣는 순간 바로 견적이 나온다. 이 영화가 어떨 것인지 아는데도 몇 초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처음에는 시원찮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괜찮은 영화였던 것이 몇 편이나 있는가? 음악도 그렇다. 노래를 듣는 순간 필이 오던지 안 오던지 하지, 여러 번 듣고, 끝까지 들었더니 느낌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다.

첫 2초의 힘은 그렇게 대단하다. 그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가치 없는 느낌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너무 이성적인 판단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를 무시한다. 또 그랬으면 하는 강한 열망도 블링크를 무시하게 만든다. 폴게티박물관의 실수가 그렇다. 신생 박물관이었던 폴게티박물관은 이 석상이 진품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것을 소장하면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으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부정적인 요소에 눈을 감았던 것이다.

한 조각 지식으로 천리를 내다보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얘기가 있다. 척 보면 삼천리라는 말도 비슷하다. 우리가 무엇을 판단하는 데는 모든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 다 뒤지고 다닐 필요도 없다. 한 조각 지식으로 천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사소한 정보를 찾아내 여기에 집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케네디 대통령 아버지 조셉 케네디는 구두닦이가 주식을 샀다는 얘기를 듣고 보유 주식 모두를 팔아치운 결과 대공황에서 살아남았다. 조각난 지식으로 전체를 본 것이다. 예전에 이병철 회장도 공장에 들어설 때 공장 앞 나무는 싱싱한지, 화장실을 깨끗한지 등을 보고 전체를 파악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무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조각난 지식으로 전체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워싱턴대의 심리학과 고트만 교수는 부부의 대화내용을 찍은 15분짜리 비디오만 보고 그 부부가 15년 뒤에 여전히 부부로 살고 있을지를 95%의 확률로 정확히 맞추었다. 무언가를 재빨리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얇게 조각내야 한다. 그리고 작은 정보에서 큰 사건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이별의 신호로 찾아낸 것은 경멸의 신호였다. 경멸은 이별의 신호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다. "경멸은 가장 중요한 이별의 신호이다. 냉소보다 나쁜 것이 경멸이다. 경멸은 냉소와 질적으로 다르다. 경멸은 파괴적이다. 경멸은 자신이 높다고 생각할 때 만들어져 나오는 냉소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상대를 나보다 낮은 위치에 두려는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욕으로 느껴진다. 이런 모욕을 견디며 결혼생활을 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부부 사이에 경멸의 징조를 잡아낼 수 있다면 특정 커플의 관계를 시시콜콜 알 필요는 사라진다. 이미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경멸의 사소한 신호로 미래의 이혼 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고소당할 의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비슷한 경우이다. 고소당할 가능성은 의사의 스킬 혹은 과실 여부와 거의 관계가 없다. 기술은 뛰어난데 소송에 시달리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실수를 많이 하지만 전혀 소송을 당하지 않는 의사도 있다. 그렇다면 소송 여부는 무엇에 의해 좌우되는가? 의사가 환자에게 주는 정보의 양과 질에서는 차이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정보를 어떻게 주고받느냐에 달려있다.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소송 여부가 결정된다. 환자를 인격체로 대하는 의사는 절대 고소당하지 않는다. 자신을 좋아하는 의사를 고소하는 환자는 없다. 의료사고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문제처럼 들린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존중심이다. 존중심은 목소리와 음조를 통해 알 수 있다. 최악은 우월감이 밴 목소리와 태도이다. 환자는 척 보는 순간,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의사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모든 것은 2초안에 결정된다.

순간적인 판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의사결정시 근거를 밝히고 조목조목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생각보다 훨씬 더 외부의 영향에 민감하다. ‘브레이든’이라는 사람은 테니스 선수가 서브를 넣는 순간 더블폴트일지의 여부를 잘 예견한다. 심지어 더블폴트 17개 중 16개를 정확히 예견했다. 하지만 무슨 근거로 어떻게 알아내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단체로 하는 미팅에서도 우리는 맘에 드는 상대를 찾아내는데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순간적인 정보를 모아 결정을 한다. 스피드데이트라는 순간적인 사랑의 짝짓기는 구태의연한 과정을 순간적인 판단으로 증류한 만남이다. 이들은 지극히 단순한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는다. "내가 이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을까?" 같은 것이다. 왜 맘에 들었는지 물어보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저 맘에 드는 것이다.

특히 여자들은 이런 방면에 선수이다. 여자들은 눈치가 정말 빠르다. 단박에 알아차린다. 이 남자가 맘에 드는지, 이 사람을 부모에게 선보일 수 있는지, 세상물정을 알고는 있는지

하지만 외모로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1999년 미국 브롱크스 슬럼가, 집 앞에서 밤공기를 쐬고 있던 디알로는 그를 범죄자로 오인한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 무려 41발의 총알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진 것이다. 아무 죄가 없던 그를 어떻게 그렇게 처참하게 죽일 수가 있을까? 만약 장소가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면, 그가 흑인이 아니고 백인이라면, 그래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외모로 판단한 최악의 실수를 경찰은 저지른 것이다.

클래식계에 여성 혁명이 일어난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예전에는 심사원들이 사람을 보면서 오디션을 했다. 당연히 여성이 불리했다. 하지만 청탁 등을 배제할 목적으로 장막 오디션을 상황은 급변했다. 오로지 소리로만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대거 클래식 음악계에 진출했다. 장막이 남자냐 여자냐, 잘 생겼냐 못 생겼냐 하는 외모의 편견을 없앤 것이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많은 것을 판단하지만 그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한다.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은 돈이 없을 걸로 생각해 소홀히 대접하다 실패하는 자동차 영업사원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미국 대통령 워렌 하딩도 외모 판단이 부른 실수이다. 그는 대통령처럼 키도 크고 잘 생긴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그가 유능하고 성실할거라고 생각했고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그는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았다. 외모가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를 마비시킨 것이다.

도대체 눈 깜짝할 사이인 2초 (블링크)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이 책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배울 점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자.

직관을 올바로 이해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직관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직관이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나 아이디어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직관이다. 직관은 직감과는 구분해야 한다. 직감은 때로 비이성적 결정이나 행동을 뜻한다. 감성적이고, 굳건한 이론적 기반 위에 있지 않는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직관은 다르다. 직관은 이성적인 판단이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지만 그렇다고 덜 다듬어지고 덜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순간적인 영감이고 정확하다. 갑자기 떠오른 것이 아니고 그 동안의 경험과 지식의 결과가 순간적으로 발휘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따진 것보다 오히려 정확하고 옳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중요한 결정은 직관적으로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직관력을 길러야 한다. 직관력을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에 필요한 경험이다. 쿠로스상을 보는 순간 가짜라고 판단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십여 년간 수없이 많은 유물들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감각이 길러진 것이다. 지식의 농축 결과가 순간적인 거부감으로 나타난 것이다. 테니스 선수의 더블폴트 예상도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많은 테니스 경기를 보면서 축적된 정보와 경험이 어느 순간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별다른 경험은 없지만 막연히 그럴 것 같다는 것은 직관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판단에 의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직관은 고도의 전문성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그런 것이 직관이다.

너무 많은 정보는 본능에 충실한 것을 방해한다. 시끄러운 데서는 마음의 소리를 못 듣는다. 그렇기 때문에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클래식음악가 선발을 위한 장막 오디션이 그렇다. 장막을 치면 외모로 인한 판단 방해를 걷어낼 수 있다.

신중한 사고와 본능적인 사고의 균형도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의사결정시 모든 것을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한다. 느낌에 모든 것을 의존한다. 하지만 이는 위험하다.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을 너무 이성적으로만 판단한다.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람들의 얘기를 모두 들은 후 이리저리 재보고 결정하는데 이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의사결정은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이루어진다. 직관적인 느낌을 중요시하되, 이를 백업할 이성적인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이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우와 좌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좋은 의사결정도 마찬가지이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이성적인 것을 강조하고 스쳐 지나가는 직관적 느낌을 무시했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생각을 조금 교정 시켜주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