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M&A 전문가의 지적처럼 올해의 재계 판도는 인수·합병 대상으로 나온 업체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 만큼 매각대상으로 나온 기업들의 면면이나 비중이 만만치 않다. 진로, LG카드, 대우건설, 나산, 대한통운 등 올해 주인을 찾아 나설 기업들의 명단만 간단히 살펴봐도 모두 해당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업체이거나 선두를 넘보는 업체들이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재계에서는 어떤 기업을 누가 인수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진로 인수전, 은행까지 나서 ‘이전투구’
‘큰 장’이 선 2005년 M&A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첫 번째 주자는 소주업계 부동의 1위 진로다. 진로 인수전에는 국내 대부분의 식음료업체와 주류업체를 비롯해 일본 등 해외의 주류업체에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금융기관까지 가세해 치열한 인수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 14일 마감한 인수의향서 접수를 통해 예비실사업체로 선정된 곳은 모두 12개 기업. CJ, 롯데칠성, 대상, 동원 등 식음료업체와 두산, 하이트, 오리엔탈(금복주, 무학 등 지방 6개 소주사 컨소시엄) 등 주류업체에 진로의 채권자인 대한전선, 외국계 자본인 JP모건, 시티벤처캐피탈, 서버러스 등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두꺼비’를 품에 안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신한은행(CJ), 하나은행(동원) 등 금융기관과 아사히 맥주(롯데칠성), 기린맥주(CJ) 등 일본계 주류업체까지 인수경쟁에 가세했다.

이처럼 진로를 인수하려는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당초 1조5000억원 내외로 예상됐던 진로의 인수금액은 2조원을 훌쩍 넘어 3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해지자 과거 인수업체들의 눈치만 보던 매각주간사가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 진로 인수전의 형국이다.

진로 매각주간사인 메릴린치증권은 진로 우선협상을 위한 계약금으로 700억원을 책정했다.

인수희망 기업들은 예비실사가 끝나는 이달 말 가장 많은 돈을 써내야 우선 인수협상 자격이 주어지며 우선협상자는 기업 실사에 앞서 700억원을 계약금으로 예치해야 한다.

진로 관계자는 “기업 정보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대가”라면서 “무분별한 인수전 참여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M&A 관행상 예상 매각금액의 5%를 계약금으로 책정한다며 700억원은 그렇게 볼 때 많다고만은 할 수 없는 규모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실사 후 인수를 포기한다면 계약금을 되찾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인수희망 기업으로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진로 예비실사에 나선 기업의 한 관계자는 “진로 소주병 겉모습만 보는 데도 1000만원을 내야 하고 소주병 내용물까지 훤히 들여다보려면 700억원을 계약금으로 예치해야 할 정도로 진로 인수전은 돈 싸움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웬만큼 간이 크지 않은 기업이라면 진로 인수전에 뛰어들 수 없다”고 말했다.

LG카드 잡으면 단숨에 업계 2위
진로만큼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최근 감자를 마치고 경영 정상화의 궤도에 접어든 LG카드의 새 주인 자리를 놓고 벌이는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물밑에서 벌이는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지난 2월 17일 영국의 유력일간지

<타임스>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에 이어 HSBC가 26억4000만 달러(약 2조7000억원)에 LG카드 인수를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HSBC가 지난 한 달 동안 산업은행 등 최소 두 군데의 LG카드 채권단과 접촉해 비공식적으로 인수 협상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HSBC와 더불어 제일은행을 SCB에 매각한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탈도 가능성있는 LG카드 인수 후보라고 밝혔다.

이 보도를 계기로 금융가에서는 LG카드 인수를 강력히 희망하는 HSBC가 언론플레이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특히 국내 은행들 중에서 유력한 LG카드 인수 후보자로 꼽히던 우리금융과 하나은행 등은 “HSBC가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가격이 생각보다 높다”며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HSBC가 제시했다는 가격 26억달러가 사실이라면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이라고 일축하면서도 내심 반기는 눈치다. 내수 경기가 회복돼 LG카드의 수익력이 회복되면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겠지만 원매자들이 속속 인수전에 뛰어들 경우 과열경쟁으로 인해 LG카드 매각가를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HSBC, 뉴브릿지 등 외국계 금융사가 LG카드를 인수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아 보인다는 게 금융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채권단 내부적으로 되도록이면 LG카드를 국내 금융기관에게 매각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재 LG카드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은행은 하나은행과 우리금융지주, 농협, 한국씨티은행 등이 거론된다. 이들 은행의 경영진은 이 보도가 나가자 이에 질세라 채권단과의 접촉을 더욱 활발하게 할 것으로 관측돼 치열한 인수전을 예고하고 있다.

만약 LG카드 매각이 마무리될 경우 국내 신용카드 시장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사용액 기준으로 KB카드(시장점유율 18.5%), LG카드(13.9%), 삼성카드(11.8%) 등 ‘빅3’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LG카드가 은행에 넘어갈 경우 해당 은행은 신용카드 시장에서 단숨에 선두권으로 도약하게 된다.

문제는 매각가격.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과 시장에서 보는 가치가 너무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채권단은 “LG카드 정상화에 모두 4조5000억원이 들었다”며 그 가격 이하에는 안 팔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대체로 LG카드의 가치를 LG카드 자본 총계(4900억원대 추정)의 2.5~3배인 1조2000억 ~1조5000억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LG카드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 물량의 과반수를 인수한다고 하면 6000억 7500억원 가량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따라서 앞으로 LG카드의 매각은 LG카드를 인수하려는 금융기관과 채권단 사이에 매각가격을 둘러싼 지루한 물밑협상과 줄다리기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대우건설 인수전, 투기자본은 ‘No’
자산관리공사가 연내에 매각절차를 밟겠다고 입장을 표명한 대우건설의 행방도 올해 기업 인수·합병시장의 최대 관심사다.

대우건설은 당초 올 상반기 매각이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5억3000만 달러에 달하는 옛 대우그룹의 채무이행을 둘러싸고 빚어진 자산관리공사와 대우건설의 법적분쟁으로 매각이 늦춰지고 있다.

그러나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이자 매각주간사인 자산관리공사는 소송에도 불구하고 하반기에 매각공고를 내는 등 매각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현재 자산관리공사는 일단 인수자격과 매각방식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조만간 확정할 예정이다.

특히 인수자격과 관련해 자산관리공사는 매각 차익만 노리고 들어오는 악성 펀드를 차단하기 위해 현재 ‘건설업’을 하고 있거나 ‘건설업’을 할 의지가 있는 업체에만 신청자격을 준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관리공사가 이처럼 인수자격을 제한한 것은 대우건설의 자산(약 2조원)이 부채(약 1조원)보다 두 배 가량 많은 데다, 이미 극동건설이나 남광토건, 한신공영의 경우처럼 단기성 투기 자본이 건설사를 인수하면 어떤 폐해가 생기는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우건설 박세흠 대표이사가 수차례나 “투기성 자본의 대우건설 인수는 절대 안 된다”고 피력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현재 대우건설 인수 의향을 보인 업체는 국내 1개사, 국외 5개사 등 모두 6개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외업체 5개사 중 3곳은 금융 관련 회사이고 2곳은 미국 유력 건설사인 벡텔과 파슨스인 것으로 전해져 외국 건설사에 대우건설이 인수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 관계자는 “투기자본성 펀드는 필사적으로 막겠지만 벡텔이나 파슨스와 같은 우량 건설사라면 인수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해 외국사의 대우건설 인수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우건설의 매각이 관심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대우건설의 매각방식이 이후 있을 현대건설의 매각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우건설과 현대건설은 시공능력 2,3위를 자랑하는 국내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업체들이다. 과연 이 두 업체가 제대로 된 주인을 찾아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한통운의 향방은 골드만삭스 손에
국내 최대의 육상물류업체인 대한통운과 5대정유사 중의 하나인 인천정유, 숙녀복업체인 나산의 행방도 재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서울보증보험이 대주주인 대한통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기업은 금호아시아나, CJ와 외국계 물류회사인 UPS 등이다.

그러나 최근 골드만삭스가 동아건설에 대한 대한통운의 보증채권을 인수해 골드만삭스가 조만간 서울보증보험을 제치고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따라서 대한통운의 인수 향방은 골드만삭스가 쥐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들 기업들은 골드만삭스가 갖고 있는 대한통운의 보증채권을 인수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중국의 화학기업인 시노켐에 6500억원에 매각될 예정이었다가 채권단 중의 한 곳인 시티그룹 계열의 자산유동화회사 ‘블루투’의 반대로 매각이 무산된 인천정유의 매각도 재추진되고 있다.

시티그룹이 국내 5대 정유사 중의 하나로 하루 27만5000배럴의 정제능력을 갖고 있는 인천정유를 시노켐보다 비싼 75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 현재 시티그룹이 인천정유의 자산실사를 벌이고 있는데 시노켐과 시티그룹 중 높은 인수가격을 써낸 업체에 매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매각을 추진했으나 무산된 여성복업체 나산역시 올해 다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나산 관계자는 “현재 상장 폐지 여부가 보류 중이나 지난달까지의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상장 유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실패한 M&A를 올해 본격적으로 재실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조이너스, 꼼빠니아, 트루젠, 예츠, 메이폴 등 5개 브랜드와 1개의 수입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복 업체인 나산은 지난해 총 매출 2400억원을 달성했다.

이 밖에 대우증권, 대우인터내셔널, 현대건설, 하이닉스 반도체 등 옛 대우그룹 계열사와 현대그룹 계열사들도 아직 뚜렷한 매각 방침은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시장 상황만 허락하면 언제든지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 2005년은 이래저래 기업 인수·합병이 재계의 관심을 모으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