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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Upstream의 부활 
박정아 | 2005.04.01 | 주간경제 826호
세계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 구조가 Upstream(기초유분, 중간 제품)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구조 변화와 맞물리며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Downstream 영역에 대거 포진해 있는 국내 기업의 대비가 시급하다.
국제유가가 배럴 당 50$를 상회하는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 구조는 철저히 Upstream(기초유분, 중간제품)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과거 저 부가가치 제품으로 소외되었던 Upstream의 부활과 Downstream (합성수지, 합성고무, 합성섬유)의 수익성 저하’라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Upstream의 이와 같은 수익성 호조는 일반적으로 Downstream 대비 제품 가격의 유가 연동성이 높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고유가의 혜택을 크게 받은 결과라고 설명되곤 한다. 그러나 이번 경기 상승 국면에서, 과거 통상적으로 나타났던 ‘Upstream에서 Downstream으로의 수익성 전이 현상’이 현재까지 전무하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설명을 궁색하게 만든다. 이러한 경기 양극화 현상을 근원적인 산업 구조 측면에서 해석할 때, 좀더 명쾌한 해답과 보다 적절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Upstream과 Downstream의 수익성 양극화
2003~2004년 세계 석유화학 기업들은 1994~1995년 이후 10년 만의 경기 호황을 맞이하여 급격한 수익 증대를 경험했다. 그러나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수익 증대가 상당 부분 Upstream 기업 혹은 Upstream과 Downstream이 수직 계열화된 기업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석유화학의 대표 제품인 PE와 에틸렌의 마진 추이를 비교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는데 Downstream에 해당하는 PE-에틸렌 마진의 경우 과거 경기 상승 국면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역마진 현상 마저 나타났다. Upstream 제품을 재가공한 것이 Downstream 제품임을 상기한다면 단순히 고유가 외에 또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석유화학 산업의 양극화 현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어떤 변화 요인들이 Upstream 위주의 수익 구조를 견인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 강화되는 Upstream
장기간 ‘높은 경기 변동성’ 그리고 ‘저마진’ 현상에 시달려왔던 Upstream은 이제 변화된 환경을 실감하고 있다. 지역을 초월한 M&A, 경쟁력 없는 설비의 퇴출, 과거 학습 효과에 의해 습득된 운영 노하우는 Upstream의 진입 장벽을 크게 강화시켰다. 결국 소수 거대 자본 위주로 재편된 Upstream은 저성장, 자본집약적이라는 과거의 제약요인을 탈피하여 안정적 수익을 담보 받게 되었다.
그러나 Upstream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 과거 대표적 ‘저부가 가치, 범용 제품’으로 인식되었던 석유가 점차 ‘희소 자원화’하는 가운데 석유기업과 석유화학 기업이 통합되면서 보다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의 희소자원화는 Oil Money를 통해 석유 기업에게 잉여 투자 자금을 제공하는 동시에, 석유기업의 석유화학 진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석유의 가치 증대는 석유화학 제품의 원재료인 천연가스 및 나프타(석유 정제의 산물)의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원재료의 안정적, 효율적 조달’이 석유화학 기업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 원천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원재료 부문에 있어 막강한 우위를 지닌 석유 기업들이 석유화학 영역으로의 진출을 가속화 하고 있음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거대 석유자본의 석유화학 사업 진출과 아시아 석유 기업들의 공격적인 석유화학 투자에 의해 더욱 강화 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경우 높은 경제성장력을 유지 하기 위해 안정적 에너지 확보가 국가 차원의 중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른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대형 소비국으로서의 입지가 맞물리면서 석유 기업의 석유화학 연계를 통한 수익성 강화 경향은 보다 분명해 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SINOPEC, CNPC, CNOOC 등과 인도의 Reliance, IOC 등이 대형 석유화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뿐만 아니라 대만 CPC, 태국 PTT 등 이른바 비-Chindia* 석유 기업의 최근 투자 전략 또한 석유정제와 석유화학의 통합 트렌드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약화되는 Downstream
반면, 과거 30년간 상대적으로 각광을 받아왔던 Downstream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Downstream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가격 교섭력의 저하다. Upstream이 구조 조정의 과정을 거쳐 소수의 거대 자본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동안 Downstream은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력을 지닌 수 많은 혁신 기업들의 경연장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라 전자, 자동차 등 수요 산업 또한 거대 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Downstream 기업은 막강한 경쟁력과 자본력을 지닌 Upstream 기업(석유화학 영역에 진출한 석유기업 포함)과 소수의 거대 수요 기업 사이에서 가격 교섭력이 크게 약화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원재료인 Upstream 제품 가격이 상승해도 이를 Downstream 제품 가격으로 전이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Downstream의 수익성에 적색 경보를 울리는 두 번째 신호는 제품의 수명 주기가 단축되고 있다는 것 이다. 과거 가치 창출의 핵심이었던 기술은 오랜 산업 진화를 거치며 이미 보편화 되었으며, 힘겹게 개발한 혁신 기술이나 제품도 Globalization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 교류의 영향으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시간 내에 확산되고 있다. Upstream 대비 월등히 낮은 설비 투자 비용 또한 경쟁자들의 진입과 모방을 용이하게 해 제품의 빠른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술 개발에 따른 대체재의 등장이 마진 압박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제품과 제품의 차별적 특성이 과거에는 일정 영역에서의 독보적 이익을 보장해 주었지만 기술 진화에 따른 대체재의 등장은 서로의 고유 영역을 잠식해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고만 고만한 제품 간의 경합이 원가 절감이라는 고객 요구와 맞물리며 저수익 가격 경쟁 구도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Upstream 위주의 수익 구조는 당분간 지속될 것
물론, 일부에서는 오늘의 Upstream과 Down stream의 수익 양극화 현상이 오래지 않아 역전될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경기 상승 국면에서의 수익성 급증이 대규모 설비 투자 및 공급 과잉을 유발하며 경기 하강 국면을 초래하는 석유화학의 일반적 경기 사이클에 근거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석유화학 경기 패턴은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 되어야 할 것이다. 화학 산업은 ‘천연물화학 → 석탄화학 → 석유화학’을 넘어서서 수소화학으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최근 교토의정서의 발효는 대기 오염 없는 에너지에 대한 세계적 요구를 부각 시키며 수소화학으로의 이행에 보다 힘을 실어 주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의 발달이 석유 자원의 가채년수를 늘려가고는 있지만, 석유 자원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수소화학의 시대에 대한 준비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석유 기업들이 수소화학 시대에 대비한다는 것은, 현재 Upstream 위주의 수익 구조를 야기시킨 가장 주요한 원인인 ‘타이트한 원재료 수급 상황’이 급속히 완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유 기업의 투자 영역이 유전 개발과 석유 정제라는 전통적 영역에서 벗어나 수소 에너지 및 환경 관련 설비 등으로 확대되면서 석유화학의 원재료를 생산해내는 석유 정제 설비의 증설은 최소화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Upstream위주의 수익 구조 지속은 특히 한국 화학 산업에 큰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 EU, 일본 등의 선진국 대비 정밀 화학 비중이 낮고 석유화학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다, 대다수의 기업이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Downstream 영역에 대거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은 중동, 중국, 인도 등의 경우와 유사하지만, 풍부한 천연자원 또는 대형 소비국으로서의 입지를 충분히 살려 Upstream 영역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이들 국가들과 우리의 상황이 또 다르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일본 기업
Upstream 위주로 게임의 규칙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본 Downstream 기업들의 발 빠른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석유화학 영역으로부터 반도체 웨이퍼 분야로 진출 하여 사업 다각화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신에추는 최근 미국 걸프 지역에 PVC 60만톤, VCM 75만톤, 염소 45만톤 규모의 통합 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에틸렌 내재화 또한 검토하고 있음을 발표했다. 고기능성 필름으로 유명한 스미토모 또한 사우디 아람코와 단일 프로젝트로서는 최대 규모로 꼽히는 Rabigh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가 완료될 2008년 후반에는 에틸렌 130만톤을 신규로 확보하게 된다. 이 밖에 미쓰이는 이데미츠와 공동 출자로 폴리 올레핀 전문 기업인 ‘Prime Polymer’를 설립 한 후 각각의 폴리 올레핀 사업을 이관, 통합하는 방식으로 경쟁력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나라의 경우는 고작해야 호남석유화학이 중동에 에틸렌 합작 공장을 검토한다거나 인천 정유를 인수한다는 ‘설’이 있는 정도로 급변하는 산업 환경 속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준비가 미흡한 상황이다. 전방으로 전자 산업이 고도로 발달해 있고, 비산유국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매우 유사한 사업 환경을 가지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전략 변화는 우리 화학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석유화학 기업들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다 안정적, 효율적 원재료 조달을 위한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중동, 중국, 인도 등의 기업과 직접 연계를 통한 Upstream 분야 진출, 신규 투자나 원료 구매, 원료 다변화 등과 관련한 단지별 공동 대응 체계 강화, 특정 분야로의 전문화 및 수직 계열화 등의 방안을 강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업 간 컨버전스가 주는 기회에 주목하라
전통적인 석유화학 영역에서의 대응 방안과 더불어, 화학산업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 또한 놓칠 수 없다. 전자가 가능한 한 Upstream 영역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원가 절감 및 생산성 향성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Downstream의 핵심 역량(Application 및 Customization 노하우 등)을 십분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산업 간 컨버전스 현상은 Downstream 기업에게 매우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전자 산업의 경우 부품, 기기의 발전을 통한 성능 향상의 한계는 소재에서의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물질 기반의 ‘신 개념 Device’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형태의 전자-화학 기업의 협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요와 코닥의 JV(SK Display 설립), 샤프와 스미토모(스미토모 베이크라이트)의 4 인치 Flexible Color Display 개발 협력 등이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유기재료 뿐 아니라 무기재료 시장에서도 기존 실리콘 반도체 이외에 화합물 반도체*가 부각되는 등 전자 소재로서 화학 업체의 입지는 보다 넓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트렌드는 자동차 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차체 경량화를 위한 세계 자동차 업체의 노력은 신소재 개발로 이어지고 있으며, 다우와 미쓰이는 이미 금속을 대체할 수 있는 고성능 신수지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지 오래다.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호응하라
크게는 석유 화학에서 수소 화학으로, 작게는 Downstream에서 Upstream으로….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석유 화학 산업의 Risk를 증가시키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 온 석유화학 산업의 사이클에 갇혀 내일도 어제와 같을 것이라 안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과거의 방식을 과감히 벗어나야 할 때다. SCM, 인력 구조 조정,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 영역 조정, 공정 효율성 제고 등의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의미 있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변화의 시점은 곧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최적기임을 주지하고, Next 패러다임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