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마지막 출장.

잠이 안 온다.

남편이 끓여 놓은 미역국에 된장찌개. 밥까지.

거기에 혼자 있으면 잘 못 자는 것을 알고 맥주 캔, 월, 화, 수, 목, 금, 토 6개까지.

지난 토요일.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 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쫄래쫄래 뒤만 따라다녔는데.

다 나 먹으라고 산 것......

맥주 한 캔 마시며 혼자 또 울컥.

십 몇 년 속을 썩이더니 죽을 때까지 받을 효도를 미리 줄 모양이다.

요즘은 마음이 허하다.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가끔씩 가슴이 무너질 때가 있다.

다시 제자리를 찾겠지만.

지칠 때는 좀 쉬어야 하는데.

지난 달 시골에 내려갔다 온 이후 기분이 좀 그렇다.

제주도로 식구들 다 같이 여행 한 번 가면 어떻겠냐고.

제주도는 다들 가 봤으니까 그 돈이면 해외로 가는 게 어때?

그랬더니 니가 돈 더 내면 되겠네.

......

그래 돈이야 더 내든 어떻든 괜찮지만 그 말이......

부모, 형제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

그런데 가끔, 정기적으로다가 이럴 때면.

아끼면 아껴서 욕 먹고 벌면 벌어서 욕 먹고.

나도 내 위주로 편리하게 살까?

하긴 나도 내 위주로 산다. 내 기준으로.

전경련 지하 식당에 쌀국수 파는 곳이 있다.

매번 웃고 계셨다.

아주 맛있지는 않지만 같은 값이면 사람 따라 가는 게 좋다.

아니 비싸도 웃는 모습이 좋다.

어느 날 밥을 먹고 계산하려고 계산대 앞으로 갔는데 

문 밖에서 과자를 드시고 계셨다.

마주치지 않으려고 살짝 비껴서다가 눈이 마주쳤고.

사장님이 쏜살같이 계산대 앞으로 들어오셨다.

입에 과자를 한 가득 넣은 채로.

말씀하시지 말고 계산하세요.

끄덕끄덕.

체하시겠어요.

끄덕끄덕.

안 마주치려고 얼른 물러섰는데 눈이 마주쳐버렸네요.

괜히 저 때문에 과자 하나 편하게 못 드시고.

끄덕끄덕. 

여전히 입을 앙 다물고 과자 하나를 건네신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나서면서 어제 챙겨놓은 고흥에서 올라 온 김 10봉지를 챙겨 들고.

점심 시간에 식당에 내려가자마자 짜잔, 어제 주신 과자에 대한 선물.

그렇지 않아도 웃는 모습이 좋아서 뭐라도 드리고 싶었거든요.

주거니 받거니.

튀김 4개를 서비스라고 또 주시고.

세상에 이런 사람도 다 있냐고. 처음 본다고.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끝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살겠죠.

나? 그래, 나는 내 멋에, 내 입맛대로 살련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만족에. 나 좋으라고 나 편한대로. 뭐.

같은 값이면, 아니 더 비싸게 주고 사더라도 난 사람이 좋은 게 좋다.

사람이 목적인 게 좋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이 헛헛함도 욕심이야. 너도 못났다.

남에 편에서 내 편으로 변해가는 남편과 잘 먹고 잘 살란다.

그래도...... 다른 사람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뭐라하든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이.

어디까지가 내 진심일까. 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다음 주면 캐나다에서 멋진, 잘 통하는 친구가 먼 길 돌아 돌아온다.

실컷 수다나 떨어야지.

(식당 주인 분이 암환자? 암에 걸린 적이 있다고 하셨다.

지금 그렇다는 것인지 과거에 그랬다는 것인지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순간 떠오른 생각. 저 분은 그 전에도 웃으셨을까, 아프고 나서 웃으신 걸까.

웃으면 안 아플까, 웃어도 아플까, 웃으면 나을까, 안 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