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충정로에서 인사 교육이 있었다.

어제 강사에게 일부러 말을 건넸다.

호되게 당하고 싶어서. 먼저 각오를 하고.

나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고 시도한 선생님이니 개인 하나쯤은 쉽게 파악하겠지.

한숨 못 잤다.

그리고 수업 내내 기분이 별로였다.

이 생각, 저 생각.

틀에 대한. 틀이 없는 인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틀에 갖힌 걸까.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약간의 뿌듯함.

자유롭게 사는 것에 대한 은근한 자랑스러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히 염려.

누군가를 조용히 돕는다는 자발의 착각.

반성하고 반성했다.

그 전에 속상했고 슬펐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는 기대가 없었는데.

오히려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니 욕심이 늘었구나.

대기업에서 인사 관련한 일을 십수 년 이상 한 사람.

나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가.

왜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가.

진짜 스스로 가르치고 배우려는 게 이유인가. 침묵하지 못하는 까닭.

다시 나를 탈탈 털어 뒤집어 엎어야겠다.

그리고 다음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했다고 뒤집는 일은 안 하고 싶다.

뒤집지도 엎지도 말고 그냥 미워하고 실수하고 반성 안 하고도 살아 보고 싶다.

내가 나중에 미안해 할 일을 만들어 볼까. 할 수 있을까. 하지 않아도 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실컷 떠들면서 깨달았다면 당분간은 조용히 깨달아야겠다.

아니, 아무 것도 깨닫지 말아야지.

즐기자.

하자. 그냥 읽고, 그냥 보고, 그냥 살고, 그냥. 한 번쯤 그냥 아무렇게나.

언젠가 먼 훗날, 많은 것에 초연할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그게 과연 바람직하고 옳은 바람인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참 병이야.

토달고 토달고 토다는 것도......

그래도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자라긴 한 걸까. 이렇게 쉽게 무너질 벽이었다니. 강한 척, 내가 날 속이다니.

나도 이제 어쩌면 나를 사랑하나 보다.

그렇지 않은 게 더 편할 뻔 했는데. 앞으로 갈 길이. 뒤늦게 거꾸로 고생. 쉬고 싶은데.

각자 행복한 데 왜 네가 고민하느냐고......

내 귀엔 그렇게 들렸다. 아니 나는 곧이 듣지 못, 안 했다.

내 주위엔 불행하고, 나약한 사람만 있는 걸까.

행복한 사람을 잘 보지 못해서 나도 모르게.

아빠의 죽음을 어떤 기회로 삼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도 이제서야 자신에 대해 조금씩 인정하는 중이고,

엄마는 달라지기엔 멀리 왔고,

여동생 둘도 결론 내리지 않았었는데 잠정 결론을 혼자 내렸고, 남동생은 무한한 사랑으로. 버거울까?

다들 나름 행복하다고?

그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왜 행복을 잘 모를 거라고 오판했을까.

조직은 다른 생물체라고 강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 행복에 집중해야 하나. 내 앞가림이나.

문득 이전에 간단한 과자, 빵 만드는 수업.

강사 분이 아침에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울리는 전화.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교실 도착 전에 받았다면 모를까, 이미 다들 와 계시니 합시다.

괜한 흉내를 냈을까.

그 생각이 나서 누구나 겪는 일, 하던 대로 계획대로 지내자.

지난 주 수업 들을 때까지 멀쩡했는데.

어제, 오늘 와르르 무너졌다.

왜 이 수업을 배우려고 했었지.

아직 소화하기에 벅찬 걸까.

아니면 성장을 위한 좋은 징조일까.

다 때려 치우고 하나만 할까.

5시. 집에 도착. 주문해 놓은 고구마를 몽땅 구워서 냉동실에 넣고.

똑같이 행복해야 하냐는 말을 곱씹으며 이해하려 안간힘. 안 하려고도 안감힘.

한참 펑펑 눈물 뚝뚝 흘리며 울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 여태 왜? 무엇 때문에?

하필 남편은 베트남에 알아 볼 게 있다며 새벽 5시 30분에 나가서 없다.

내일은 지난 주에 잡은 선약. 합정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한 날.

극복하지 못한 냉정한 눈빛과 편들어 주지 않는 객관인지 정답인지 모를 판단에 대해 아무말 대잔치를 해야겠다.

사람이 좋기도, 싫기도, 아니 조금, 잠깐 싫기도.

내가 누군지 생각해야겠다. 오늘은 잘 모르겠다. 이기고 싶었나, 시험해 보고 싶었나, 상처받고 싶었나. 오해하고 싶었나.

아니다. 기대가 있었다. 조직을 알면 개인은 당연히 품을 줄 알겠지. 그러면 깊은 마음을 어떤 기술로 구현할 지 궁금했다.

마음에 품고 다니는 사람들. 내 그릇에 맞는 걸까.

다 내보내는 게 합당한가.

어디까지 개입하고 언제까지 방관하고 얼마나 모르는 척 하는 게 적당한 걸까.

사는 동안 같이 행복했으면 하고 말하는 게 허무맹랑한 것일까. 누가 누구에게 묻는 걸까.

나도 이렇게 굳어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