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나와 똑같은 출발점에 섰던 친구.
부모에게 신세지는 것 없이 자신의 힘으로 결혼을 하고,
집이 없었고, 현금도 그리 많지 않았으며, 행동보다는 고민이 많았던, 별다른 능력이 없었던 우리.
얼마 전, 만났다. 맥주 한 잔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사는 지 모르겠다고 울었다.
같이 울 수가 없었다. 전혀 슬프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는 결혼 당시 남편에게 약간의 빚이 있었다. 여태 그 빚은 그대로라고 했다.
임대 아파트에 살고, 맞벌이를 한다. 자가용이 있고, 수시로 여행을 다니고, 먹는 것에 돈을 많이 쓴다. 저금은 하지 않는다고.
십 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고, 직장 생활이 바쁘고 피곤하다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무엇을 배우거나 시도하는 것이 두려운 것 같았다.)
빚을 놔뒀더니 깎아 주겠다고 연락이 온다면서...... 앞으로도 급하게 갚을 생각은 없다고.
그러더니 갑자기 '너 예전에 ***였는데!'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서 정확히 무슨 단어였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머저리? 쓰레기? 버러지? 뭐 대충 그런 말이었는데. 물질의 차이가 배 아팠을까. 쉽게 얻고 편히 사는 것 같아서?
최선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시작은 비슷했는데, 내가 버러지면 너도 버러지가 되는 건가.
복지라는 건 어려운 일이다. 돈으로 누군가를 돕는 게 정말 돕는 것일까?
갚지 않을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빚 탕감이 옳은가? 갚을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탕감이 옳은가? 탕감은 옳은가?
넌 어떤 노력을 했니? 결과가 좋은 건 과정에 충실했다는 건가? 그렇게 물어봤다면 모든 다 건네려고 했는데.
너도 편해질 수 있다고. 네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었다.
떠오르는 말들을 꿀떡 삼키고, 그저 계속 듣기만 했다. 약간의 추임새를 하면서.
그러다 마지막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까? 최선의 끝이 뭘까? 확인이 가능할까?'라고 물었다.
새벽 1시 반, 벌떡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다. 서운하거나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안타깝고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가끔 만나는 사이였는데 당분간, 아니 아주 오랫동안 그 아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행동은 모든 것을 말한다.
부는 욕을 먹어야 하는 걸까. 가난이 욕을 먹어야 하는 걸까. 서로 미워하지 말고 예뻐했으면 좋겠다.
돈? 심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이 내 것이면 당연하고 남의 것이면 열 받고? 결과만 보고 과정은 보지 못하는.
내가 가난해지면 반가워하며 동지라 여길까. 난 다시 쓰레기가 되는 건가.
돈과 능력이 있으면 사람, 없으면 머저리? 친구 자신은 또 빼고? 이게 이중 잣대일까.
친구의 생각이 평범한 다수의 생각이 아니길. 보이지 않는, 드러내지 않는, 미움의 싹. 어디에 도움이 된다고......
고맙다 친구야.
부와 가난, 부자와 가난한 사람, 특별함과 평범함, 노력과 열매, 공짜와 대가, 앞장서기와 뒤따라가기,
책임과 회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앞으로 곰곰히 더 고민하고 공부하고 판단할께.
나만의 합당한 결론이 날 때까지 기다려 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