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부모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자식을 제대로 키우기 힘들 수 있다.

아무리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강한 척 해도 속지 않는다.

내면이 외면에 다 드러나기 때문에.

나이만 먹었다고 다 컸다고 우기지 말고 자신의 감정 중에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하나씩 채워야 한다.

자라면서 꽉 찼다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 별로 없다.

머리가 큰 후에는 자기가 채워야지.

자려고만 하면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수첩을 다시 꺼낸다.

이전에 끄적거린 것을 다시 보다 갑자기, 서점에서 남편 읽을 만한 책 고르다가 우연히 봤던 에릭슨 아저씨의 삼각형 생각이 났다.

그 때는 표를 보고 어? 나도 아는데. 다른 나라 동네 사람도 비슷하군. 잘 정리했네.

수첩에 적은 것은 이랬다.

텅빈 나 - 나를 보며 채운 나 - 비운 나 - 남을 보며 채운 나 - 남을 채우는 나 - 사라지는 나

그래, '나를 보며 채운 나'를 건너띄고 '남을 보며 채운 나'로 어린 시절을 보냈구나.

나를 들여다봐야 하는 지도 몰랐다.

집, 학교에서도 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없는 사람과 마찬가지여서.

좁디 좁은 자신의 마음만 보며 2단계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한 사람이 많던데.

눈을 외부로 돌려 4단계로 채우고 나서 날 들여다보는 2단계로 오는 것은 오히려 쉬운데.

상상력은 이래서 중요하구나.

'나'에 먼저 집중했다면 거기에 꽂혀서 밖을 보지 못하고 비슷한 속도로 살았을까.

나를 먼저 사랑하지 않은 것이 날 위해 더 좋았던 거였구나. 나하고 어울리는 발전 방식이었어.

부모, 학교, 직장, 사회, 나라, 세계.

누군가, 집단이 바뀌어서 날 어떻게 해 주기를 기다리기엔 시간은 지나치게 빨리 지나간다.

날 가꾸면서 부모, 학교, 직장, 나라, 세계를 고민하기를.

단순히 푸념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요구하기를.

그냥 말 말고 제대로인 말. 말은 솔직해야 하는데. 솔직한 말 듣기가 어렵다.

출발은 신뢰부터다. 동 시대 모든 사람이 자신과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제도를 바꾸든 뭘 어떻게 해도 효과가 있지.

백날 떠들어도 소용없는 이유가 있는데...... 에릭슨 아저씨가 울겠어. 아직도 이러고 있는 우릴 보면.

미성숙한 사람이 미성숙한 아이를 만들고 미성숙한 아이는 또 미성숙한 어른으로......

내가 우주고, 내가 곧 우주의 수준이다. 나도 날 안 바꾸면서 남은 바꾸라고? 나는 남을 바꿀 수 있는가?

누굴 탓하는가. 내 얼굴에 침 뱉기지. 역사는 반복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역사를 반복한다. 배우고도 반복하는데 배우지 않으니.

내가 태어나서 나같은 사람을 하나 만들고, 나를 닮은 누군가는 자신을 닮은 누군가를 만든다.

좀 더 나은 내가,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를 남기려면 나를 낳아 준 사람보다 조금만, 손톱만큼만 더 현명하면 충분한데.

가능할까?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계속 해 보자. 사람들은 도돌이표를 원하는 걸까.

하나로 합쳐진 자신을 보며 뿌듯해하고 다른 사람의 통합을 도우며 살 지,

지난 날을 후회하고 남은 세월을 원망으로 보낼 것인지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