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흩뿌리며 내린 오늘.
남편 아침 겸, 내 간식 겸 먹을 빵을 샀던 교대역.
지난 번 빵을 사러 가는 길에 사선으로 맞은 편 1층에 있던 시래기국집이 떠올라서 점심을 먹으러 12시에 집을 나섰다.
여섯 정거장 지나 하차.
여전히 비는 내리고. 계단을 내려가 4번 출구로 나와 큰 검정 우산을 같이 쓰고 걸었다.
설렁탕집, 빵집, 커피가게 등을 지나 식당.
문을 열고 들어 가기 전 눈으로 봐도 손님이 가득찼다.
다 먹은 손님이 문을 열고 나가면서 우리가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무엇을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를 고민하며 음식 종류를 한참이나 쳐다 보았고.
새로 만든 메뉴가 저녁에는 15,000원인데 점심에 12,000원이라고 설명해 주시며 먹어 보라고.
우리는 2인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기본으로 가져다 주시는 3가지 말고 무한히 가져다 먹을 수 있게 반찬이 더 있었는데
파프리카, 당근, 살짝 매운 양파, 부추 등이 들어 가 있어서 깜짝 놀란 잡채, 무절임,
내가 좋아하는 들깨가 들어간 콩나물 무침(식당에서 콩나물 무침에 들깨라...... 드문 일인데),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음식의 맛과 모양, 느낌에 의해 짐작했을 때 국산 메밀일 것만 같은 묵.
드디어 시래기밥과 함께 등장한 불고기.
시래기가 들어 간 밥을 양념간장을 넣기 전 한 입을 먹었다.
맛있다.
비벼서 먹어도 맜있다.
먹다가 남은 묵을 넣고 비벼 먹어도 맛있다.
겉으로 드러나게 상냥하지 않았지만 무뚝뚝한 것도 아닌 세련미 넘치는 사장님.
손님이 메뉴판을 뚫어지게 보고 있어도, '어떻게 드시는 것을 좋아하세요, 이건 어떨까요'라고 묻지 않는, 관심없는 직원.
하지만 음식을 먹고 나니 만들기까지의 수고를 느낄 수 있었다.
배가 불렀지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집 뒤에 있는 남산이 내 뱃 속에 있었다.
계산하면서 사장님에게 말했다.
"밥 한 수저, 반찬 한 젓가락 먹으니 수고가 느껴지네요."
뚱하기도 했던 얼굴이 살짝 웃는다.
"감사합니다. 양념 간장 만드는 데만 4년이 걸렸어요."
"와! 어쩐지. 잡채의 당면도 보통 불게 만드는 데 그렇지 않고, 각종 야채가 들었더라고요. 하나하나 다르더라니."
"인공조미료는 하나도 넣지 않습니다."
"잘 먹고 갑니다. 이 곳을 지나가는 길에 간판이 눈에 들어 와서 가 봐야겠다 해서 왔는데 오길 잘 했네요."
"또 오세요.(빈 말이 아닌 정말 다시 오라는 눈빛으로)"
"네.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몇 걸음 걸어 빵 가게로.
인절미처럼 생기기도 생기고 맛도 상당히 비슷한 빵이라고 불러야 할 지 떡이라고 해야 할 지 헛갈리는 빵을 포함해
지난 번에 먹었던 것 말고 다른 종류 몇 개 담고, 샌드위치도 하나.
계산하려다 인절미빵을 하나 더 집었다.
좀 전에 기분 좋게 나온 식당으로 다시 신나게 돌진.
인절미빵을 들고 식탁 위에 빈 그릇을 치우던 사장님 손에 쥐어 드리며
"맛있는 음식 만드시는 분이니까 맛있는 것 많이 드셔야죠. 드셔 보세요. 맛있더라고요.
다시 밥 먹으러 오긴 올 것 같은데 또 언제 올 지 몰라 드리고 가고 싶어서요."
깜짝 놀라시며
"아니 왠 걸."
그릇 치우다 말고 내 손을 잡더니
"이리 와요. 이것 하나 줄 테니."
그러시더니 상당히 건전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판매용 튀긴 과자 한 봉지를 얼릉 주셨다.
사장님도 나 때문에 놀라셨겠지만 나도 그 순간 깜짝 놀랐다.
뭘 받으려고 한 게 아닌데 뜻밖이어서 정말 예상 밖이었다.
나도 그런 후회를 지금보다 어설펐을 때 많이 했는데 어떤 후회냐면 고마운 것을 즉시 표현하지 못하고
나중에 알았을 때, 그 사람을 다시 찾을 수도 없고 바로 표현할 것을 때를 놓치고 한 박자 늦은 자신을 탓했었다.
그런데 그 사장님은 바로 행동하시는 것을 보고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즉시 그 자리에서 그렇게 자주 해 본 것처럼 돈 받고 팔 면 3,000원인 제품을 서슴없이 주는 모습을 보고
어? 통하겠는데. 친구하고 싶다, 왠지 곧 친분을 쌓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곧 내 발이 그리로 향하는 그림이 순간 내 눈 앞에 떠올랐다.
오른쪽 팔 윗부분의 옆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토닥토닥하며 "애쓰세요."하고 인사하고 나왔다.
사장님은 계산하려는 손님이 부르기 전까지 내 옆에서 살짝 혼미하게 계셨다.
같은 감정, 같은 행동을 주고 받은 우리는 서로에게 감동한 채, 흥분한 채 그렇게 헤어졌다.
아까 버스 타고 오는 길에 교대역 전 정거장 맞은 편에 겉모습이 멋스러워 보였던 커피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오후 4시까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커피까지 맛있고 화장실까지 신경 쓴 남다른 건물주겠구나,
이런 저런 것을 보고 배우며 이야기하며 예전보다 빨라진 내 발전 속도에 내가 놀라며 커피 가게에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 지 모르겠다.
산다는 것.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내가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사전 정보없이 간 식당에서 한 수저 먹고 노고를 느꼈다니.
그 동안 소비하길 잘 했구나. 소비하면서도 많은 것을 배우려고 했는데 이럴려고 그랬구나.
아무도 이렇게 살라고 말해 주지 않았고 도와 주지 않았고 관심 주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왜 그래야 하냐고, 쓸데 없는 짓, 쓸모 없는 행동, 이해 받지 못했는데.
이렇게 살려고 그렇게 계속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관찰하고 책 읽고 실천하고 수정하고 반성하고.
책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수정하고 생각하고.
줄까 말까 이리 재고 저리 재며 망설이고, 내 돈 내고 내가 사 먹는데 뭐가 고마우며,
나한테 쓰는 돈은 안 아깝고 남한테 쓰는 돈은 아까워서 빵을 사지 않았다면
미소 짓는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손님, 아니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모르셨겠지.
나도 내가 빵보다 더한 것을 받을 줄도 몰랐겠지.
돈은 그냥 돈이 아니다. 웃지 않는다고 웃을 줄 모르는 게 아니다. 웃게 해 주고 싶다.

자신의 앞가림을 하고 나면 내가 지나온 길을 알기에 헤매는 사람이 눈에 밣힌다.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품을까요 묻지 않는다.
충분히 두껍고 튼튼한 두 다리로 서 계신 것 같아서 여쭙는다. 그 짐작은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 것인데.
어제, 오늘 생각해 보니 이런 저런 시도 끝에 마음을 접은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고,
나와 같은 방법도 있다는 것을 내가 떠들고 다니지 않아서 몰랐을 수도 있고.
내가 말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친구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기대한 게 있었고,
늘 내가 아는 것 이상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서
- '내가 사람들을 포섭하고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식은 말이야......' -
흥미진진하면서 다정다감한 경험담이나 지혜를 기다렸다.
기대하던 게 없다고 실망할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낙담을 했는지.
아무 것도 몰라서 혼자일수도 있고 남들이 모르는 많은 것을 알아서 혼자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난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온다.
소용없다고 결론 지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난...... 소용있는 게 많다고.
그렇게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겠지?
어제보다 개운하다. 그래도 조금 찜찜하지만. 찜찜할 때마다 난 발전한다.
이제 난 날 안다. 찜찜함의 끝에 한 발, 열 발 더 성장하고,
더 많은 사람을 품는 더 향상한 좋은 나만의 실전 적용 방법, 잠정 결론을 얻는 다는 것을.
다시 나에게 집중하자. 강요하지 말자. 자연스럽게. 어떤 식으로든 불편하게 하지 말자.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그 이유를 난 알지만)
2명의 나이와 성별이 다른 친구를 얻는 대신 한 명의 성별은 같은, 나이는 많은 친구를 만났으니까.
친구가 없었는 데 이제 친구를 찾아 다니다니.
말 한 마디 못했었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찍'소리를 내다니.
(상대방이 상처 받을까 봐 심하게 안절부절 걱정하며 내는 '찍'소리였지만.)

내일이라는 흰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려 볼까? 일단 점부터 찍어 볼까?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정의는 '그리려고 애쓰지 마','이건 이렇게 그리고 저건 저렇게 그려!'가 아니라
'난 이렇게 그렸는데 넌 어떻게 그렸어?'다.
대화에 대한 정의도 사람마다 다른 걸까? 뜻은 같은데 단지 표현이 달라 정의까지 다른 것처럼 느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