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키운 상추 뜯어, 부추 잘라, 양파 뽑아, 바다에서 이모가 잡은 새우, 소라 익히고, 조기찜, 전어회는 무치고,
식당에서 한 마리가 그대로 든 장어탕, 순대가 맛있었던 순댓국,
순천 5일장에서 산 갑오징어를 마당에 불 때 바지락국 끓이고 열기가 남은 나무 재 위에 구워서.
인생 최초로 가장 대접을 많이 받고 그래도 편히 있다 왔다.
어릴 때부터 위로를 많이 해 드렸는데도 자존감을 아직도 충분히 쌓지 못하셨다. 어디로 다 도망갔는지.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했더라면 이렇게 기다리지 못했겠지.
부모도 그냥 사람이다.
가족이 뭐 별 것이냐, 그냥 사람이다.
니 가족, 네 가족, 그저 사람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미숙하고 내일은 모레보다 모자른.
가장 처음 하는 일은 잘한다를 무한 반복.
그리고 상대가 힘이 좀 생겼다는 것을 감지하면 끄덕거리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마음을 들쑤시며 조금씩 스트레스를 준다.
견딜 수 있을 지 어떨 지 무척 세심하게 바라보면서.
이번에 엄마에게 약간의 고통을 주었다.
지난 일에 후회가 많다고. 지금 낳아서 키우면 잘 할 텐데.
그래서 한 마디 했다.
지금 낳아도 아이들은 어른인 채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면 어려서 속을 썩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머리 아파할 것이라고.
이전이라면 아니라고,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할만큼 했다고 잘했다는 뻔한 내용을 읊었을 것이다.
무조건 위로를 해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에.
다르게 대화를 해 보고 싶었다. 순전히 엄마를 위해서.
지난 일이 왜 미안하며 후회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정리하지 않은 채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인다.
길게 이야기하면 본인이 불편하기에.
그 불편함을 그대로 또 덮으면 실수는 반복한다.
엄마는 남편이 내게 잘한다는 말을 하면 이렇게 반응한다.
너 잘났다, 아직도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았나 보지. 날이 많이 무뎌졌지만 그래도 여전하다.
자신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상대방이 어떻게 들을지, 이 말이 또 후회를 부를 지 어떨지 감지 못한다. 아니면 안한다?
이제 아빠를 몇 시간씩 비난하는 대화를 하지 않지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을 어떻게 받아 들일 지 정하지 못했나보다.
이 말도 했다.
나는 경험이 많아, 젊은 사람들이 무언가 물었을 때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으로 늙고 싶다고.
속으로 엄마에게 한 말은 이렇다. 엄마는 이제라도 어떻게 늙을 지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불편할까 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넘기는 것이 과연 상대방을 위하는 것일까 나를 위하는 것일까.
나약한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해도 편만 들어주면 결국 망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 속이 듣는 사람보다 더 괴롭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서.
말하고도 괴롭고 돌아오면서도 그렇고 나중에도 생각이 많다. 이 시도는 엄마가 원하는 것일까 아닐까 등등.
그래도 내 마음 편하자고 입 다물지 말아야겠다. 이해 받자고 산다는 것은 조금 어리석으니까.
남은 인생, 이제라도 엄마답게, 예전과 조금 다르게, 자식이 어리다고 고깝게 들을 게 아니라 서로 배우면서.
원망하지 않는데도 어떤 말을 해도 원망으로 듣는, 자꾸 주어에 엄마를 넣지 말라고.
많은 사람이 자신의 과거에서, 마음에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곧 세상의 평화 아닐까.
오늘도 남편을 불편하게 만든다. 몇 년에 한 번 할까 말까한 굵고 짧은 잔소리.
2년 째 알아보는 공장 찾기, 결과를 좌지우지 할 능력이 있으면 조바심을 내라.
그렇지 않으며 과정에 집중해라, 어설프고 산만한 노력이 결국 나쁜 결과를 더 부르는 게 아닐까.
아무도 모르겠지만 듣는 사람보다 2, 3배로 더 괴롭고, 싫은 소리를 하기 싫은 마음을 다잡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한다.
연기학원이나 다닐까. 소질이 있다니까.
냉정하기 힘들다...... 나한테 냉정한 것은 쉬운데 말이지. 그래도 곧잘 한다니까. 냉정하기, 냉정한 척 하기?
엄마, 남의 집 부엌에서 일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돈 한 푼 받지 못했다고 했지.
아마 아름다운 대화를 들은 적도, 한 적도 별로 없겠지.
그저 구박만 받고. 그래서 그게 싫은데도 다른 말하는 법을 신경쓰며 살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가시 돋힌, 화를 참지 못하는, 그렇게 싫었던 대접을 자신이 또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는 있는데 그러고 나면 뭐가 남을까.
내가 부모를 이해하는 것과, 부모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지.
사는 동안 충분히 만족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아들 번호만 외우고 있는 부모라도 괜찮아. 그렇다고 부모가 아닌 게 아니니까.
실수할 수 있지만 최소한 생각하고 했으면 좋겠다.
나와, 둘째 여동생과 셋째 여동생은 왜 다른 삶을 살까. 똑같이 비난과 무시와 무관심과 차별 속에 자랐는데.
둘째는 엄마를 많이 닮았으나 아니라고 하고, 셋째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부모를 힐난, 비난하기를 즐긴다.
뭔가 생각하기 시작하는 나이부터.
학생이 뭘까, 어른이 뭘까, 부모는 뭘까, 취업은 뭘까, 돈은 뭘까, 결혼은 뭘까, 육아는 뭘까, 어른은 뭘까, 삶과 죽음은 뭘까.
답을 찾기 전에 내 생각이 어떻게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으며 왜 서로 다르게 발달하고 결론내리는 지.
계속 궁금해하면서 확정짓지 않고 열린 결말을, 그 결론을 점점 키워나가는.
그 생각이 한 명을 담고, 또 다음에 더 고민한 뒤 두 명을 담고, 그 다음에 세 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