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만약에 내가 누군가의 이해와 관심과 걱정을 바라며 한없이 기다리기만 하면서 원망했다면
그랬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다독일 수 없었을 거야.
뭔가를 바라고 산 적도, 보람이나 결실이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한 적 없는데
뿌린 것도 없이 거둔 기분이라 어리둥절한 요즘이야.
날 누가 걱정할까?
지금 이 시간에 누가 날 생각할까?
다들 자기 고민에 빠져 있다 해도 그래도 좋아.
그게 시작이거든.
거기 머물기만 하다 끝나도, 아니 그러면 무척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 당장은.
자신이 꽉 차야, 그래야 시선을 바깥으로 돌릴 수 있거든.
사람 대 사람으로 격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까?
엉뚱하고 이상하고 특이하고 쓸데없던 그 모든 시간이.
이럴려고 그랬구나. 이럴려고.
나를 자기들 편에 끌어들이려고, 그저 비슷한 사람을 만들려고 했던 그 말들을 그냥 넘긴 게
돌아보니 가장 잘한 일이었더라고.
긴 시간 외로웠는데, 이제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에 살고 있지.
귀에서, 마음에서 노래가 들려.
중국 노래도, 고전 음악도, 국악도, 가요도, 미국 노래도
어떤 음악, 어떤 가사도 좋게만 들린다.
남편은 열심히 프랑스 바이어 두 명과 같이 간 한국 사장님과 덥고 습한 날에 애쓰고 있겠지.
자꾸 나를 이기려고 해서 속상하지만, 절대 못 이길 텐데. 왜 자꾸 싸움을 거는지.
손바닥 안인데 말이야. 그래서 더 져 주기로 했어.
다음 주엔 병원 가서 또 피를 뽑고. 지난 번에도 뽑았는데 다시 오래.
그리고 피부과도 이제 다녀볼까 하는데. 귀찮지만 가야겠지.
마사지? 가려고 했더니 없어졌어. 가을이 오니 피부가 간질 간질.
둘째 여동생에게 진공청소기를 사서 보낼까 말까도 고민. 주는 게 돕는 걸까 안 주는 게 돕는 걸까 하면서.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세상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엉망진창인 모습을 인정하는 게 아름답더라.
만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보여.
연락이 없으면 이유가 있지. 바쁘거나 밥 살 돈도 없거나, 잘 지내거나, 무심하거나.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이 있거나 심심하거나, 돈 빌려 달라거나.
만나서 얼굴을 보면 걱정이 있는지 없는지, 자랑할 게 있는 지 없는 지 알 수 있고.
밥 값을 선뜻 내면 그래도 전보다 나은 상태이거나 무리하는 중이거나, 고마워서거나
머뭇하면 조금은 빠듯한 것이거나 짠돌이거나, 남한테 쓰기 아까워하거나,
돈을 주고 사 온 선물을 건네면 주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애쓰는 중이고,
집에 있던 날짜 지난 커피를 쥐어 주면 주고 싶은 마음은 똑같지만 사는 것은 주저하는 단계고,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대화하고 있는 느낌.
어떤 모습이든 괜찮아. 이해해.
나도 지나온 길이거든. 다행히 아직 잊지 않았어.
현명한 사람만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어리석은 게 사람이니까.
한 걸음, 한 발짝 나가는 것이 어려운 가봐. 그렇게 평생을 사는 사람이 많으니.
내일은 고운 친구를 만나러 간다. 소풍 가기 전 날처럼 누굴 만나든 왜 그렇게 떨리는 지.
하루는 설레며 잠들고, 하루는 신나게 만나고, 하루는 그 행복감을 만끽하며 보내고, 하루는 병원 가서 피 뽑고,
하루는 남편을 기다리며 책을 보고, 하루는 출장 이야기를 실컷 나눌 테고, 하루는 서울 엄마 병간호 상의하러 가야 하고.
누가 나에게 그러니까 그 정도 수익률이지, 라고 말해도 말야.
난 눈 깜짝하지 않는다. 그 말이 나를 욕하는 게 아니라 더 욕심내서 많이 벌어야지, 우쭈쭈하는 말로 들리거든.
만일 그게 한심하다는 말이어도 괜찮아. 크게 신경쓰지 않으니까.
내 속도는 내가 정하니까.
일희일비하지 않는 걸 보면 이제 엄청 큰 돈을 벌겠다 싶어.
이제 욕심 좀 내볼까? 제대로 힘껏 달려 볼까?
난 내 마음이 잔잔하게 미소짓고 있는 파도처럼 조용한 상태에 있도록 유지할 수 있거든.
돈 주고 살 수 없는. 절대 팔지 않을. 하루 이틀에 따라할 수 없는.
저, 여기 있을게요.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아요. 이게 제 진심이에요.
가을에 새빨간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다니.
내가 머무는 곳에는 음식점 점장님도, 커피 가게 직원도 사장님도, 옷가게 주인도 판매원도 같이 웃는다.
당신이 있는 곳에 같이 머무는, 마주치는 사람은 웃고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