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첫째인 내가 무슨 권한이 있다고 어른 노릇을 할 수도 없었다.
언젠가 부모 역할을 하겠지 기다렸다. 하지만 이제 마음을 접었다.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도 귀를 달고 있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할 사람들에게 말해도 소용없으니까.
그러던 올해 2월, 둘째 여동생 생일.
점심에 만나 밥을 먹자고 했더니 동생이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둘이 만나기 어색했는지 셋째 여동생도 부르자고. 그거야 흔쾌히.
그렇게 셋째 여동생 생일에도 만났고 내 생일에도 만났다.
급격히 가까워진 우리. 하루가 멀다하고 문자, 전화, 만남.
9월에 둘째 여동생과 처음으로 여행을 갔다. 부산 2박 3일.
어릴 때부터 머리가 나쁘다, 노력해도 신통찮다, 무관심과 무시, 언어폭력과 진짜 폭력 속에 자랐다.
나는 돈을 모으면 집을 나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행동이 앞선, 그 나이답게 살았던 둘째, 셋째는 그렇지 않았다.
서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6년을 잘 모른다.
결혼 후 출발이 달랐다는 이유로 두 여동생은 날 욕하고 미워하고 거리를 두었다.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이해했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그렇게 시간을 버리는 것이.
그 출발이라는 게 돈이다. 나는 직장 생활하며 책, 차비, 밥값 빼고 모두 저금, 남편도 마찬가지 성향.
그러나 둘째와 셋째는 이런 저런 일로 빚으로 시작했다. 저금한 게 죄? 빚이 나 때문에?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으니 둘이 모이면 이 사람 저 사람, 이 일 저 일, 뒷담화로 풀며 상황은 늘 제자리.
둘째가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부모는 아니지만 30년 속 썩이던 자식이 정신차리면 그걸로 충분한, 이런 기분일까?
깨달은 자체가 보기 좋고 예쁘고 다행이다. 나에게 미안할 건 없다. 이제라도 네 인생을 실컷 즐기며 살기를.
둘째가 조금씩 귀를 열고 열심히 듣고 달라지려고 노력하니 셋째도 갑자기 둘째 언니가 이상하다며 농담을 한다.
그러더니 셋째도 슬금슬금 우리에게 다가와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변화가 빨랐다.
진작 내가 더 열심히 살았다면, 자존감을 조금 더 일찍 채웠다면 너희들 고생이 좀 덜 했을텐데, 내가 미안하다......
나도 날 어느 정도 채우는 데 오래 걸렸어. 많이 힘들었어. 너희는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빨리 채웠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는 막내 남동생 결혼식 때 보니 여전히 아들만 자식이더라.
그래서 내가 너희를 챙기기로 했다.
부산보다 더 좋은 곳, 맛난 음식, 재미난 것 보면서 같이 늙어가자.
사람이 좋지만 관계가 깨질까 무서운 셋째 동생.
둘째가 갑자기 자기랑 놀다가 첫째 언니랑 노니까 불안했는지
'그래, 친하게 지내. 언제 또 틀어질지 모르니.'
니가 많이 외롭고 연약하구나.
너희 둘이 다시 나에게 무관심하거나 함부로 해도 할 수 없어.
사람 사이가 잘 통한다고 영원하지도, 나쁘다고 끝까지 나쁘지도 않을테니까.
욕심과 걱정 속에 허비하느니 오늘에 충실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둘째, 셋째의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나보다 더 행복하도록, 자존감, 자신감, 용기, 희망, 무한한 칭찬을 쏟아부어야겠다.
많이 미안해...... 하지만 일 년 전만 해도 알아듣지 못할 듯 싶어 기다렸어.
타이밍 기막히게 찍었지? 줄곧 너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섭지?
둘째야 고마워, 귀를 열어줘서. 잘 알아듣는 귀를 지니고 있어서.
네가 달라지니 셋째도 금방 따라오는구나.
셋째야, 말을 거칠게 하고 강한 척 해도 아닌 거 안다.
외로우면 외롭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면서 살자. 별 거 있니.
인사동에서 밥도 사고, 예쁜 머리핀도 선물로 받고. 이런 날이 다 있구나. 고마워 셋째야.
내가 더 돈 많이 벌게. 하고 싶은 게 많다.
도와주고 싶어도 참을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어떤 게 최선일지 고민하고 있단다.
많은 말을 하고 싶어도 참을게. 너희들 머리와 가슴에서 스물스물 무언가 올라와서 스스로 답을 찾도록 기다릴게.
어설프게 고생하는 것보다 차라리 바닥까지 찍으면 올라올 궁리를 하잖아.
더 나빠질 게 없을 때까지 돕지 말자 생각했었지. 독하지? 어줍짢게 도와주면 더 망칠까 봐.
힘내. 이제 알아서 잘하잖아. 올 한 해, 가슴이 먹먹하고 뿌듯하고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고.
어디서든 너희 자랑이 저절로 나와 민망하지만 자꾸 자랑하고 싶은 걸 어떡해~~~.
직장 생활하는 셋째랑도 여행 한 번 가자고. 사랑한다. 우리 또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