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11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올해 베니스 영화제 영예황금
사자상을 수상했다. 예전에 나는 그를 잘 몰랐다.

내가 처음 본 그의 영화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놀라운 영화였다. 사진같이 섬세한 화면과 서정적 배경음악,
그리고 우리들의 메마른 심성을 묘사하는 함축적 내용,
영화를 보면서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하는
명작이였다.

얼굴없는 괴물 가오나시, 치히로가 유바바에게 이름을 뺏기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귀신들의 온천장에서 일하는 모습, 자신의
이름을 잊고 유바바의 하수인으로 살다가 치히로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름을 찾고 마법에서 풀려난다는 설정 등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슬픈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의 이름을 불리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직장에서는
"대리, 과장, 부장님", 교회에서는 "집사님",

집이나 동네에서는 "누구네 아빠"다.
나를 종호야하고 부르는 이가 지금 누가 있을까?

현재 나를 지칭하고 명칭은 인간 '종호'로서
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 즉 기능을 지칭하는 것이다. "과장"은 큰 회사조직으로서 
나의 자리이고, "집사"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나의 역할,
그리고 누구네 아빠는 아버지로서의 나의 자리일 뿐,
인간으로서 '나', 살아숨쉬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존재로서
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개개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점차
잊게됨에 따라 서로를 그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직을 구성하고, 그안에서 특정한 기능을 하는 부품과
같은 존재로 추락하게 된다. 이영화에서 유바바가 개인의
이름을 빼앗아 그들의 영혼을 지배하듯이, 우리도 우리의
이름을 사회에 빼앗겨 우리의 영혼을 지배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나는 조직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직책을 가진

다른 사람과 같은 객체이며, 기능을 제대로 못할때는
다른 사람으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특성없는
부품과 같이 취급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기 위해 주어진 기능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이러한 경쟁하에서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게된다.

이영화에 나오는 얼굴없는 괴물 가오나시는 기능중심적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개개인의 특성이
존중되지 않고 기능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각자의 얼굴은
필요가 없다. 또한 이름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한없이 외롭다.

자, 지금까지 나를 종호라고 부르고 있는 이가 누가 있나 생각해
보자. 가족(부모, 부인, 형제) 그리고 학교 친구들 뿐이다.
국민학교때 친구들을 생각해보자. 돈과 명예, 사회적 능력을 보고
친구를 사귀었던적이 있었던가. 해떨어질 때까지 오징어 달구지
놀이하고, 공놀이하고 놀다가 해어지던 친구들, 나를 '종호야'라고
인간적으로 불러주던 친구들이 그립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수없이
기능중심, 경쟁중심의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때로는 인간으로서의 나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를 말이다. 이 영화는 자아를 잊고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