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하루 남았다.

 

나는 이맘때 자주 흘러 나오는 "고요한밤 거룩한 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면 10년전 레지던트 시절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영문도 모르고 속절없이 이 세상을 떠나야했던 한 가엾은 어린 영혼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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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아이는 정문이다,

 

정문이는 처음에 내 환자로 만난 아이는 아니다.

 

정문이는 정형외과에 입원한 어느 엄마아빠의 외동아들 이었다.

 

갓 초등학교 1 학년 어린 정문이가. 어느날 집에와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 엄마 걸어 다닐 때마다 왼쪽 무릎이 아파요.." 엄마는 정문이의 증상을 그나이에 흔히 겪게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원래 크느라고 그래, 조금만 지나면 안아파,,"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두달이 지나면서 정문이 왼쪽 무릎 아랫쪽이 불그스럼해지고, 주변에서 가벼운 열감이 느껴졌다, 아빠도 그때까지는 그러려니 하다가. 그 자리를 누르면 압통이 느껴지고 주변이 염증이 있는 듯해서, 아내에게 정문이를 데리고 다음날 가까운 정형외과에 들려 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정문이는 동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엑스레이를 본 동네병원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일단 종합병원에 데려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 볼 것을 권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은 엄마가, 그길로 정문이를 대학병원으로 데리고 왔고, 어린 정문이는 그자리에서 컴퓨터 단층 촬영과 핵의학 검사를 받아야 했다.

 

진단명은 골육종 . 대개 10대에 많이 발생하는 무서운 골종양이 어린 정문이에게 생긴 것이다,

 

치료방법은 즉각적인 하지절단술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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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는 고민했다.

 

그방법 밖에는 치료를 할 수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는 했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외동아들의 한쪽 다리를 절단한다는 것을 어느 부모가 쉽게 받아 들일 수가 있었겟는가..

 

그들은 필사적으로 다른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방사선 치료를 통해 해결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모 한의원에 가서 책임지고 암을 치료한다는 한약을 지어 먹이기도하고, 엉터리 민간요법 전문가를 찾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미국에서라도 수술을 하지 않고 고칠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팔아서라고 가겠다고 했다.

 

결국 정문이는 수술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우리병원을 떠나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어느부모 ,어느 환자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혹시나 진단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정말 혹시 0.1 %라도 오진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대학병원을 세군데나 다녔다. 그들은 그만큼 절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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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석달 후 정문이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정문이의 골육종은 경골 다리뼈를 넘어 폐로, 간으로, 그리고 뇌속으로  전이가 되어 있었다. 

 

불과 두달만에 정문이의 왼쪽 다리는 썪어서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상처에서는 차마 맡을 수 없는 살이 썪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하다가 가득이나 약한 환부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나는 6.25 전쟁때 상처에서 구더기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지만, 내 눈으로 의사생활을 하는 동안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구더기가 들끓는 것은 처음 목격했다. 12월의 날씨에 어디에서 어떤 곤충이 알을 낳았는지. 무릎 주변이 썩어버린 정문이의 몸에는 가느다란 실지렁이같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애벌레들이 수백마리가 들끓고 있었다,

 

정형외과에서는 하루에 두번씩 정문이의 상처를 드레싱을 했지만. 드레싱 거즈로 그 징그러운 것들을 딲아내어도 어느새 다시 위쪽 근육사이에서, 아래쪽 살속에서 구더기가 다시 스물스물 기어나왔다.    

   

이제는 수술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정문이는 오후에 뇌압이 올라가면서 머리를 감사쥐고 투통을 호소했고, 폐에 들어차기 시작한 삼출액들은 호흡을 제약했다, 더우기 간에 전이된 정문이의 암세포는 복수까지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정문이는 결국 정형외과에서 우리과로 전과가 되었다. 

 

어차피 다리를 수술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전신적인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오전에 커다란 주사바늘을 정문이의 7번 8번 늑골 사이의 가슴에 꽂고, 또 다른 바늘을 배꼽아래의 복부에 꽂아 넣은 다음 50cc 주사기로 정문이의 가슴과 배에 찬 물들을 빼주어야 했다, 한번에 50 cc 씩 아주 천천히 스무번쯤 뽑아내면 그 작은 가슴이 비로소 숨을 제대로 내 뱉고 , 영양실조에  걸린 난민처럼 부풀었던 배도 조금씩 가라 앉았다,

 

그때서야 아이는 하루중에 가장 편안 시간을 맞이 하는 것이다,

 

내가 아이의 가슴과 배에 3 way 를 연결하고, 복수와 흉막 삼출액을 뽑는 시간에 정형외과 일년차가 와서 아이의 다리를 드레싱했다,

 

아이의 복수를 제거하는데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야박하게도 그와중에도 30분간 그 자리에 앉아 기계적으로 주사기를 빨아들이고, 다시 버리고 하는 작업을 하다가 꾸뻑꾸뻑 조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때면 정문이도 "선생님 내게 큰 절한다..!!"  놀리면서 아이 특유의 장난기를 발동했다,

 

오후만되면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울부짖는 아이가, 다리가 썪어 들어가고 몸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아이가, 아침에 진통제를 맞고 복수를 빼고나면 잠깐 동안이라도 동심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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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절단 수술을 강행 하기로 했다.,

 

이제는 치료목적의 수술이 아니라, 썪어 들어가는 다리를 더 이상 감당 할 수가 없어서였다, 어찌보면 별 의미가 없는 수술이었을지도 모르고, 정문이 건강 상태가 이 수술을 감당 해 낼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았지만, 정문이의 수술에 모두가 동의했다,

 

엄마 아빠도, 주치의인 나도, 정형외과 스텝도, 현 상황에서 더 이상 아이를 방치 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받아 들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아이지만 정문이의 몸에서 나는 그 지독한 악취와, 아무리 약을 바르고 딲아내도 정문이의 몸과 살을 파먹고 살아가는 그  끔찍한 생명체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정문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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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 일 수술이 이루어졌댜,

 

정문이의 상태를 고려해서, 마취과에서는 기관지 삽관을 하지 않고, 정맥 마취를 한 후 Mask bagging 만으로 얕은 마취를 끌고 갔고, 정형외과에서도 재활에 대한 고려없이 일단 가능한 부위까지 다리를 절단했다,

 

정문이는 그날 고관절 아래의 왼쪽 다리를 모두 잃었다,

 

그러나, 22,일  23일이 되면서 아이의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우려하던 패혈증이 시작된 것이다.

 

워낙 약해진 신체 상태에서, 면역기능이 거의 바닥에 이르른 이제 갓 8 살의 어린 육체가 가혹한 수술을 이겨내기란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2월 24일 정문이의 어린몸에서 나는 고열이 더이상 컨트롤되지 않았다,

 

뇌압이 급상승하고, 혈압이 180수준 까지 올랐다, 뇌압을 떨어뜨리기 위해 나이푸라이드를 투여하고 만니톨을 쏟아 부어도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스테로이드와 항생제를 쏟아 붓고, 약으로 컨트롤 되지 않는 아이의 고열을 식히기 위해 알콜을 적신 거즈로 어린몸을 딲았다,

 

그러나 정문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결국 저녁 8시쯤, 정문이의 심전도에서 더이상의 전기신호를 발견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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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어린몸을 포박하고 있던 각종 수액줄과 생명유지장치, 모니터 들을 정문이의 몸에서 떼어냈고,호흡을 위해 절개했던 정문이의 목을 다시 깨끗하게 봉합했다,

 

간호사들은 아세톤을 솜에 적셔서 어린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반창고 자국들을 지웠다,

 

정문이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정문이의 몸을 수습하는 과정을 뒤에 서서 묵묵히 서서 지켜보았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다 못해 그자리에서 쓰러지고 부축받아 일어서고를 반복하면서, 그래도 어린 아들의 마지막 수습과정을 끝까지 지키겠노라고 우리가 수습하는 과정을 힘들게 지켜보았고, 아빠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면서 아이의 발치에서 침대 머리를 잡고 간신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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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깨끗이 봉합되고, 몸에서 접착제의 흔적들이 지워진 다음, 영안실에서 올라온 직원들과 간호사들이 뼈만남은 정문이의 몸에 하얀 시트를 씌우고 스트레치카에 정문이를 옮겨 실으려는 순간  그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던 엄마 아빠가 영안실 직원들을 제지했다. 

 

그들은 정문이의 시신 곁으로 다가가서, 정문이의 환자복을 벗기고, 엄마가 준비해 온 정문이의 옷을 갈아 입히기 시작했다. 엄마는 정문이의 옷을 갈이 입히면서 아이의 귀에대고 무어라고 나지막한 혼자말로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양말을 신기면서 결국 인내심을 잃고 그자리에서 몸부림치며, 가슴을 쥐어 뜯으며,,,그렇게 피눈물 흘리며 절규했다........ 

 

아빠는 몸부림치는 엄마를 달랬다.

 

그리고는 정문이 침대 옆으로 다가가서, 아이를 두팔로 안아 들고는,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 가슴에 그대로 새겨져있는 마지막 인사를 아이에게 전했다..

 

 

" 사 랑 한 다..........."

 

 

나는 그때 그가 아이에게 남겼던 " 사랑한다.."는 말의 느낌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가 말한 "사랑한다.."는 말은 아마 이 우주의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가슴 시린 사랑이었을 것이고 세상에 어느 사랑보다 소중하고 눈물겨운 사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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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내게 부탁했다,

   

"선생님 그냥 제가 안고 영안실에 내려가겠습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영안실 직원들과 스트레치카를 물리고, 아이 아빠가 직접 아이를 안고 중환자실 복도를 지나 영안실로 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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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나는 중환자실 복도에 인근 교회와 성당에서 온 봉사자분들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손에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외과 중환자실 문틈으로 복도에서 부르는 캐롤들이 새어 들어왔다,

 

"고요한밤, 거룩한밤, 어둠에 묻힌밤,,,,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나는 그 노래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지금 이안에 어떤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당장 그만두세요..!!"

 

 

내가 얼굴이 벌개서 소리치자, 영문을 모르는 봉사자분들이 많이 당황스러워 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봉사자분들께 정말 죄송스럽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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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이는 그를 그토록 사랑하는 아빠의 품에 안겨 촛불은 든 성가대가 도열해 있는 중환자실 복도를 지나 그렇게 영안실로 내려갔다.

 

나는 그와 함께 정문이의 몸을 안치 할 장소로 같이 걸어갔다.

 

성탄절이라 사람들로 어수선한 병원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서 스쳐지나간 사람들은 지금 이 남자의 품에 안긴 아이가 그 성가의 가사처럼 그렇게 곱게 그렇게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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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내가 가운을 입은 이후로 처음 영안실을 구경했다,

 

수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정작 그들이 이 병원안에서 마지막으로 머무는 그곳은 한번도 찾아보지를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안실 뒷 문으로 들어가서, 관리인에 의해 시신 안치소의 스테인레스문이 열렸지만, 정문이가 누워야 할 자리는 그 가녀린 작은 몸집에 비해서는 너무 크고 황량했다. 문을 열고 레일이 달린 차가운 스테인레스관이 밖으로 빠져나오자, 그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정문이를 그곳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때 마치 내가 그자리에 누워 사방을 가늠 할 수 없는 어두운 굴속에 갇혀있는 듯한 한기와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그랬는데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는 정문이의 몸을 그곳에 내려놓고, 정문이의 몸이 다시 레일을 타고 차가운 냉장고 속으로 사라진 다음, 마지막으로 스테인레스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스테인레스 손잡이를 두손으로 부여잡은 채 그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2004/12/23  시골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