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수요 기반이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ABCP 매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리ㆍ신한은행 등이 신규 매입을 자제하고 있고,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도 자산관리계좌(CMA)나 머니마켓펀드(MMF) 등에 ABCP 편입을 꺼리는 분위기다.

이처럼 ABCP 수요가 계속 위축되면 ABCP 발행 금리가 상승하고 신규 발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주목받아 온 ABCP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종합금융업을 겸하고 있는 우리ㆍ신한 등은 이미 ABCP 보유 비중을 줄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에 따라 은행이 사들인 ABCP와 일반 기업어음(CP)을 유가증권이 아닌 대출로 회계 처리하게 되면 신ㆍ기보료와 대손충당금 부담이 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우리은행의 ABCP 보유 잔액은 4조6000억원, 신한은행은 3조2000억원에 달한다. 두 은행만 합쳐도 8조원에 육박한다. 이 중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ABCP는 3조원을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도 매입을 점차 꺼리는 모습이다. ABCP의 시장 유통이 원활하지 못해 유동성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PF ABCP는 전통적인 PF 대출과는 달리 1~3개월 만기의 단기 유동화증권이다. 한 사업장의 공기가 2~3년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3개월씩 8~10번 차환 발행이 이뤄져야 PF사업의 현금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과 2금융권의 ABCP 매입이 어려워질 경우 신규 발행과 차환 발행에도 악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PF 유동화로 자금을 조달한 건설업계가 자금 미스매치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 금융 전문가는 "ABCP가 최근 3~4년간 건설업계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인기를 끈 이유가 바로 저리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CD금리에 연동되고 3개월 만기여서 5~6%대 금리가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ABCP를 통한 자금 조달은 주로 30~100위 권의 중견 건설업체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ABCP 수요 위축은 이들 중견 건설업체의 조달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나마 은행들의 매입 약정이 붙은 A1등급 ABCP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은행들이 건설 사업장의 준공 시점까지 매입 약정(일종의 신용공여)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 신용공여 없이 시공사의 연대 보증(혹은 채무 인수)만으로 발행한 A2~A3등급 ABCP는 차환 발행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게 금융권 분석이다. 은행의 매입 약정이 없는 ABCP는 20%에 달하며 최근 그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파악된다.

ABCP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경우 건설업계의 자금조달 비용은 껑충 뛰게 된다. 2~3년 만기의 확정금리 PF 대출은 금리가 10%를 훌쩍 넘을 수 있다.

금융감독당국이 최근 밝힌 PF 유동화채권 규모는 지난 6월 현재 ABS가 6조8000억원, ABCP가 15조2000억원이다. 최근에는 ABCP가 건설업계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건설업계가 과거처럼 2~3년 만기의 확정금리 대출을 받는다면 금리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ABCP 발행이 최근 수년간 급격히 늘어난 이유가 바로 저리의 자금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ABCP 발행이 어려워지면 건설사의 조달금리가 상승하고 결국 최종 소비자들에게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금융감독 당국은 PF 대출을 많이 취급하거나 연체율이 높은 저축은행을 집중 관리할 계획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금융권 전체의 PF 대출 규모는 총 69조9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저축은행 PF 대출 규모는 12조5000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