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_COMMENT사진들어가는 부분@@END_COMMENT 자일링스·ARM, 특화된 사업 모델로 ‘우뚝’…시설 투자 대신 연구개발에 집중
삼성전자, 인텔, AMD, 텍사스인스트루먼트, 하이닉스…. 전 세계 반도체시장을 호령하는 대표적 제조업체들이다. 이들에게서 흰 작업복에 마스크를 한 연구원과 번쩍거리는 첨단 제조설비, 드넓은 부지에 펼쳐진 공장지대를 연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들처럼 반도체 생산설비를 갖추지 않고도 업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업체가 있다. 최첨단 기술개발과 신축성 있는 실리경영을 앞세워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춘 곳들이다. 그 배경에는 이른바 ‘틈새시장’을 노린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이 자리 잡고 있다.
△자일링스-생산라인 없이 반도체 제조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본사를 둔 자일링스 www.xilinx.com는 비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프로그래머블 로직 디바이스(PLD)분야의 세계 1위 업체다. PLD는 고객의 용도에 맞춰 생산되는 주문형 반도체(ASIC)의 한 종류다. 고유한 기능을 갖고 대량 생산되는 표준형 반도체(ASSP)와 달리, PLD는 고객이 원하는 기능과 사양에 맞게 회로를 직접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단 구매한 뒤 마음대로 기능을 넣거나 바꿀 수 있어 ‘카멜레온 칩’이라고도 불린다.
세계 반도체업계에서 자일링스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로 유명하다. 반도체 제조업체면서 자체 생산라인(팹·FAB)이 없는 ‘팹리스 기업’이라는 점이다. 자일링스의 제품 생산은 모두 아웃소싱 형태로 이뤄진다. 수탁생산업체(파운드리)인 대만의 UMT와 미국의 IBM이 생산을 도맡고 있다. 자일링스는 다만 반도체 설계와 연구개발을 맡을 뿐이다.
팹리스 모델을 세계에서 처음 내놓은 곳도 자일링스다. 기존 업체들은 반도체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선 공장 부지부터 확보하는 게 순서였다. 하지만 자일링스는 1984년 설립 당시부터 별도의 팹 없이 칩 제조를 아웃소싱하는 모델을 내세웠다. 팹리스 모델은 유연한 재정관리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제품의 대량 생산을 팹에 일임하고 회사는 제품 개발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반대로, 경기가 안 좋을 때는 팹 운영을 축소해 효율적인 긴축관리가 가능하다.
이런 장점 덕분에 많은 기업들이 자일링스의 팹리스 모델을 도입했다. 그래픽 프로세서업체 엔비디아나 플래시메모리 카드 전문업체 샌디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팹리스기업협회(FS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팹리스 기업들의 평균 성장세는 16.2%. 이 가운데 자일링스는 샌디스크, 미디어텍에 이어 3위의 순익을 달성했다. FSA를 이끄는 사람도 자일링스의 CEO인 웜 로랜츠 회장이다.
영업사원도 자일링스에는 없다. 제품 판매는 대리점이 맡는다. 팹리스 모델을 도입했듯이, 굳이 내부 영업망을 갖출 필요는 없을 거란 발상에서다. 현재 국내 영업은 매커스와 인사이트코리아가 맡고 있다. 이들 대리점은 자체 영업사원과 기술인력을 앞세워 국내의 주요 고객을 대상으로 자일링스 제품을 직접 판매한다. 전문 판매채널에 영업을 맡기는 게 효율적이라는 게 이유다. 생산라인에 이어 영업망까지 아웃소싱한 셈이다.
생산라인 구축과 제품 판매에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제품 연구개발로 돌려진다. 자일링스에서 한 해 동안 연구개발에 투입되는 금액은 전체 매출의 16~18%에 이른다. 이는 곧 성과로 나타난다. 미국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2001년, 자일링스의 주력 제품인 필드 프로그래머블 칩(FPGA)을 ‘우리 삶을 바꿀 10대 기술’ 중 1위로 선정했다. 이는 인간복제 기술보다 높은 순위다.
직원을 배려하는 기업문화도 자일링스의 자랑거리다. 세계 반도체업계 최악의 불황기였던 지난 2001년, 미국 실리콘밸리는 대대적인 해고 바람에 휩싸였다. 너도나도 직원을 줄이면서 위기를 돌파하려는 가운데, 자일링스는 해고 대신 ‘고통분담’을 선택했다. 윔 로렌츠 회장이 앞장서 임금의 20%를 자진 삭감했고, 직원들은 직급에 따라 3~6%의 삭감폭을 나눠 가졌다. 그리고 2년 뒤 회사가 정상화되자, 임금은 곧바로 정상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런 기업문화에 힘입어 자일링스는 <포춘>지가 선정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서 3년 연속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일터로 인정받고 있다.
자일링스가 주력하는 PLD시장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분야다. 용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회로를 설계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인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전 세계 PLD시장은 2002년 23억달러에서 2008년 63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일링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14억달러로, 전 세계 PLD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규모가 큰 ASSP시장으로의 진입도 넘보고 있다. 제품의 교체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면서, 용도에 따라 기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PLD의 장점에 눈을 돌리는 기업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ASSP에 비해 비싼 값이 보급화의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최근 기술개발과 공정개선을 통해 점차 해결하는 추세다. 자일링스의 경우 지난해 9월 업계 처음으로 300mm 웨이퍼 기반의 90나노미터 공정을 도입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다. 자일링스의 PLD 칩은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대부분의 전자업체와 모토로라·에릭슨 등 이동통신 기지국, 컴퓨터 주변기기와 자동차 및 의료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
△ARM-제품 대신 핵심 기술만 판매
ARM www.arm.com은, 말하자면 비메모리 반도체업계의 ‘두뇌’다. ARM은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이들은 완제품 형태인 칩 대신 ‘지식’을 판다. 휴대전화와 같은 모바일 제품의 두뇌인 CPU, 그 가운데도 핵심 기술인 ‘CPU 코어’ 기술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생산라인도 필요 없다. 본사는 영국 캠브리지에 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CPU는 명령 처리방식에 따라 CISC와 RISC로 나뉜다. CISC는 ‘복합명령형컴퓨터’의 약자로, 방대한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일반 PC에 주로 쓰인다. RISC는 주로 쓰는 명령어만 적용한 대신 크기와 전력소모량 등을 줄인 제품으로, 크기와 휴대성을 중요시 하는 모바일 기기에 주로 쓰인다. 이 모바일 CPU도 속을 들여다보면 여러 칩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가운데 핵심인 ‘코어’ 기술을 ARM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ARM이 파는 것도 바로 이 CPU 코어 기술이다. 지적 재산(IP)을 비즈니스 모델로 선택한 것이다.
ARM은 이 코어 기술을 주요 반도체업체에 라이선스 방식으로 제공한다. 이를 제공받은 기업은 ARM의 코어 기술을 기반으로 자사가 원하는 기능에 맞게 부가기능을 추가해 CPU 완제품을 만든다. 결국 핵심 기술은 ARM에 의지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ARM은 연구개발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본사 전체 매출액의 30~40%가 연구개발에 투입된다. 세계 최고 반도체업체인 인텔이 지난해 8%, 삼성전자와 노키아가 각각 8%, 8.5%를 연구개발에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꽤 많은 규모다. ARM 전체 직원의 70%도 기술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ARM의 코어 기술은 처리속도가 빠르고 전력 소모량은 적으면서, 크기가 작고 가격이 낮아 휴대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비롯해 산업 전반에 쓰이고 있다. 이 저전력·저가격·고성능 코어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반도체산업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CDMA·GSM 방식 휴대전화의 80%가 ARM의 코어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 이 밖에 디지털 카메라와 프린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와 무선랜, 자동차와 디지털 셋톱박스 등 다양한 제품이 ARM의 코어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ARM 기술을 채택한 반도체기업은 현재 65곳이다. 인텔과 퀄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소니와 미츠비씨 등 제휴사를 통해 지난해에만 8억8천만개 이상의 ARM 코어 기술을 채택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올해에는 10만개 이상의 제품에 코어 기술을 탑재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 휴대전화 출하량(5억대)의 2배에 이르는 규모다. 이쯤 되면 정말 만만하게 볼 기업이 아니다.
지적 재산을 판매하는 덕분에, 생산성도 상당히 높다. 지난해 본사 전체의 매출액 3천억원 가운데 순이익은 무려 540억원으로, 전체의 6분의 1에 달한다. 매출 비중을 보면 코어 라이선스 비용이 50%,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개발도구 판매를 통한 수익이 20%, 고객사 제품판매를 통한 로열티 매출이 25%에 이른다.
사업 전망도 밝다.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이 도입되고 주문형 동영상(VOD)과 음악감상 등 모바일 장비의 기능이 다양해지면, 고성능·절전형 모바일 CPU에 대한 주문도 늘어날 것이다. 300~500MHz 수준인 지금의 CPU 사양도 1GHz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인텔 등 주요 고객들이 반도체 공정을 개선하는 데 발맞춰, ARM도 CPU 디자인 기술 향상 등을 통해 꾸준히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한국 시장의 위상도 높다. ARM코리아는 ARM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 역할을 겸하고 있다. 97년 지사 설립 때부터 개인 지분투자 형식으로 참여한 김영섭 ARM코리아 지사장이 중국·대만법인까지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태지역이 올린 매출액은 본사 전체 매출액의 12%인 350억원으로, 이 가운데 97억원을 한국 시장에서 거둬들였다. |
![](java script:ViewPic("http://www.economy21.co.kr/img/blank.gif")){kind=spac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