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최용식님이 이른바 경제전문가들의 판단, 예상과 엇갈리는 판단, 예상을 할 때 많은 분들이 아마 생각하셨을 것이 "다들 안좋고, 더 안 좋아질 거라는데, 저 양반은 도대체 왜 그러나?" 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에도 최용식님의 주장이 아마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최용식님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과 아울러 이른바 "경제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예상은 항상 틀려온 것을 제가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 KDI, 민간 경제연구소의 성장률 전망이나, 경기 고점, 저점 예측은 대체로 맞은 적이 없고, 심지어는 근사치에 간 적 조차 드뭅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이른 바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경제전문가라도 하는 곳의 경제전망은 항상 틀려 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첫째 이유는 "맞출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송자" 교수님께 회계원리를 들었었는데요. 그 분 말씀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씀이 "사람은 평가받는 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도덕성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말씀만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잘 파악한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은행, KDI, 그리고 민간 경제연구소의 "경제전문가"들은 월급을 받고 근무합니다. 다 들 경제가 안 좋아질 거라고 할 때, 혼자 경제 좋아진다고 해서 그 결과를 맞추었다고 성과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요. 승진이 빨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남들 다 안 좋아질 것이라고 할 때, 혼자 좋아진다고 했는데, 경제가 여전히 안 좋아지면, 그 사람은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겠구요. 회사에서 짤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제가 증권사 경제연구소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경제팀에서 경제전망을 할 때 모든 요소들을 다 감안하고 마지막 결론을 내기전에 반드시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뭐냐하면, 다른 증권사나 연구기관에 전화 하는 겁니다. 다른 연구소의 전망치보다 우리 전망치가 많이 높으면 우리 것을 낮추어서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하고, 반대로 우리 전망치가 다른 데보다 많이 낮으면 우리 것을 조금 높여서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춥니다.
이런 식이니 모든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치가 비슷 비슷할 수 밖에 없구요. 또 항상 비슷하게 틀리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그리고는 다 들 비슷하게 틀렸으니, 아무도 비난받지 않고, 직장들 계속 잘 근무하게 되는 거죠.
남들과 같이 다 같이 틀리면 회사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혼자만 틀리면 그 비난은 온전히 자기 몫이 되는 거죠. 이러니 굳이 자신의 주장을 고집스럽게 내세울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당연히 남들과 같이 묻어가기를 바라게 되고, 이것이 "경제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틀린 답을 내는 이유가 되는 거죠.
둘째 이유는 "다른 모든 것이 일정하다면"이라는 가정 때문입니다.
이른바 "경제전문가"들이 종종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것이 일정하다면"이라는 경제학 교과서의 원론적 가정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것이 일정하다면"이라고 가정하고 "특정의 한가지 이유때문에 결과가 이렇게 될것이다"라고 예상하는 데, 현실세계에서는 "어떤 한가지가 변하면 다른 모든 것들이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예상이 틀리게 되는 거죠.
작년 여름정도만 하더라도 "환율이 하락(원화의 평가절상)하니 수출이 부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내년경기는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예측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습니까?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 호조는 여전하고, 최근에는 내수마저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어서, 올해 경기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마도 "다른 모든 것이 일정하고" 환율만 하락한다면, 수출 호조세는 둔화되었겠죠.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이 다 같이 변하면서" 환율이 하락했기 때문에, 환율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 호조세는 지속된 것입니다.
제가 증권사의 경제연구소에 있을 당시 "환율과 수출", "환율과 경제성장률", "환율과 주가"등의 상관관계를 조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작년 "환율이 하락할 당시, 환율하락 때문에 수출이 둔화되고, 주가가 하락할 것이다"라는 생각들이 많았는데요. 실제 과거 그랬는지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는 식이죠.
결과는 거의 대부분이 "환율하락시에 수출이 증가하고", "환율하락시에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환율하락시에 주가가 상승하는" 일반적인 생각과 반대방향의 상관관계가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사실 이것이 당연한 현상임을 싶게 알 수 있습니다.
뭐냐면, 우리는 흔히 "환율하락이 수출감소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현실은 "수출호소세 때문에 환율이 하락한다"는 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생각하듯이 환율하락이라는 원인에 따라 수출감소라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그 반대방향인 수출호조라는 원인에 따라 환율하락이라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의사"가 잘못된 진단을 여러번 내리면, 그 의사라는 전문가는 아마 폐업해야 될 겁니다. 만일 "과학자"자 잘못된 예측을 여러번 하게 되면 그 과학자는 직업을 잃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경제전문가"들은 잘못된 예측을 계속 반복해도 누구 하나 비난하는 사람도 없고, 여전히 "경제전문가"로 그 명성을 이어갑니다.
어떻게 보면 "경제전문가"란 사실 전문적으로 그럴듯하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미래를 잘못 예측하는 사람인 거죠.
2) 환율정책 어떻게 해야 하나?
작년 여름이후 환율이 급락하자, 많은 경제전문가와 언론, 기업들은 "환율하락으로 수출이 급감할 수 있다. 정부는 환율방어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공통적으로 해 왔습니다. 이 곳 서프앙의 상당수도 이런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과연 수출증대를 위해 정부가 환율하락을 막는 것이 옳은 일인가요? 몇가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환율방어는 "공짜"가 아니다.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하다면", 환율하락을 막아서 수출이 계속 잘 되도록 하는 게 당연히 좋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환율하락을 막는 것에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명백히 할 것은 정부에 의한 "환율하락의 인위적인 방어"는 "소득 이전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원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면, 수출기업의 채산성에 긍정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수기업, 그리고 소비자들에는 불이익을 주게 되는 것 또한 명확합니다.
인위적으로 환율을 10% 정도 저평가 해 놓았다고 했을 때, 소비자들은 수입품, 예를 들자면 석유를 10% 이상 비싸게 사야 됩니다. 수입품이 아닌 국산품이라 하더라도 100% 다 국산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국산" 라면이라 하더라도, 라면 제조에 들어가는 밀가루, 제품을 포장하는 종이, 그리고, 공장 가동시 사용되는 전기도 수입품인 석유를 사용해서 나오는 겁니다.
즉, 인위적인 환율방어를 통해 수출기업의 채산성은 좋아지겠지만, 소비자들은 그만큼 더 비싼 물건을 사야 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죠.
인위적인 환율방어는 수입업자, 내수기업과 영세 상공인들에게도 피해를 주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국산" 라면을 만드는 내수기업의 경우에도 환율이 하락했다면 물건값을 싸게 해서 매출을 더 늘렸던지, 아니면 이익을 더 냈을텐데, 정부의 인위적 환율방어로 그 이익을 고스란히 수출기업에게 넘기게 되는 거구요. 영세 상공인들의 경우에도 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게 되면, 이는 전반적인 구매력의 향상을 가져와서, 물건 하나를 더 팔던지, 아니면 개당 마진을 더 남기던지 하게 될텐데, 이런 효과 또한 고스란히 수출기업의 몫이 되 버립니다.
결국 문제는 소비자, 수입업자, 내수기업과 영세 상공인들의 이익을 뺏어다가 수출기업들을 더 살 찌우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이 되겠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출을 더 잘 되게 해서, 우리나라가 더 빨리 선진국이 되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실테구요. 수출기업들은 작년에 그야말로 "노"가 났는데, 소비자, 내수기업, 영세상공인들은 그야말로 "죽" 썼으니, 수출기업들한테 "부"를 몰아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는 후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우리 정부와 우리 국민들이 그 만큼 수출기업, 대기업들을 키워줬으면 됐지, 더 이상 대다수의 국민들 몫을 양보해가면서까지 지원해 줄 이유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이 "일본", "중국"을 제외한 경제선진국이 "강한 달러가 좋다"는 식으로 자국통화가 평가절상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둘째, 환율정책의 목표는 "무역수지의 균형"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전문가, 언론, 국민들중 다수는 무역수지 흑자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제학 교과서에는 분명히 "무역수지의 균형"이 좋은 것이며, 적정환율은 "경상수지의 균형"을 가져오는 환율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물론 무역수지가 흑자인 것이 적자가 많은 것보다야 낫겠지만, 실제 가장 좋은 것은 무역수지가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외환보유고(=경상수지 흑자의 누적분)가 2,000억불을 넘어가는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이는 경제성장율이 높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률이 적정한 것이 좋은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거 근대 유럽에서는 국가의 목표가 "무역수지 흑자의 최대화" 였습니다.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많은 금(=당시의 국제통화)"을 보유하는 것이 부자나라가 되는 길이라는 생각에 이것을 국가의 목표가 삼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금을 갖기 위해서는 무역수지 흑자를 늘려야 했고, 이를 위해 인위적인 평가절하 정책을 경쟁적으로 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자신의 저서를 "국부론(國富論)"이라 명명한 것도 사실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얘기하기 위한 이유에서 였습니다. 국부(國富)란 국민들의 경제적 생활수준이 부유한 정도를 얘기하는 것이지, 나라에 금이 많다는 것(=나라에 달러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담 스미스의 주장인 거죠.
사실, 무역수지 흑자가 많다는 것은 "나라는 부자이나, 국민은 가난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인위적 환율방어를 통해 수출은 증가할 지 모르지만, 그 나라 국민들은 괜히 더 비싼 물건을 소비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그만큼 국민이 가난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흔히, 일본을 "나라는 부자이나, 그 국민은 가난하다"라고 합니다. 실제로 일본은 인위적인 환율방어로 악명높은 국가이면서,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과거 국부의 상징인 "금"과 같은 오늘날의 "달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어떻습니까?
일본국민들은 높은 1인당 GDP에도 불구하고 닭장같은 좁은 집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높은 물가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일본이 무역수지 균형을 정책목표로 삼아 값싸고 질좋은 외국제품을 더 많이 수입했더라면, 물가가 그렇게 높지도 않을 것이며, 국민들의 생활수준 또한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겁니다. 게다가, 아시아 각국들이 대일본 수출이 늘어나서, 아시아 각국의 성장이 더 빨랐을 것이며, 이는 또한 일본의 대 아시아 수출을 더 늘리는 효과가 있었을 테고, 또한 아시아 각국 국민들이 지금처럼 일본을 나쁘게만 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기업, 수출기업만 잘 살 수는 없습니다. 대기업, 수출기업만 잘 되게 해서도 안됩니다. 이것이 인위적인 환율방어 정책을 재고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만 잘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여러나라들과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무역수지 균형을 정책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설연휴가 시작되는 군요.
2005년은 희망의 한 해가 될 걸로 감히 예상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들 받으십시요. 꼭 부자 되시구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