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경제에는 특이한 현상이 세 개나 한꺼번에 나타났다. 그 하나는, 소득은 늘었는데 소비는 오히려 줄어든 현상이다. 다른 하나는, 기업이익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는데 투자는 오히려 줄어든 현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성장률은 5% 내외로 비교적 양호했는데 분배는 악화된 현상이다.

이 세 가지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소득이 늘면 소비가 증가하고, 기업이익이 늘면 투자도 늘어나며, 성장률이 양호하면 분배도 개선되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경제의 운동원리인데, 이에 반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두 말할 것도 없다. 그 원인은 우리 경제에 비관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데에 있다.

지난해 성장률은 5% 전후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분명히 2003년 성장률 3.1%보다는 훨씬 높아진 실적이다. 그렇다면 경기가 상승했다고 봐야 하며, 경기가 상승 중이므로 곧 호황이 닥칠 것으로 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사실 성장률이 2% 내외나 더 증가했다면 이것은 대단한 호전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느꼈으며, 실제로 지난해 9월경에는 한 때나마 경기추락을 피부로 느껴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현실적으로, 찜질방 안에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추위에 떨게 할 수 있다. 최면을 걸어서 ‘북극에 와 있다. 너무 춥다.’고 계속 주문을 걸면 벌벌 떠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지난해 우리 국민들은 이런 최면에 걸려 있었다.

언론과 경제연구소와 경제전문가들이 모두 ‘경제가 어렵다’고 지속적으로 주문을 걸었고, 국민들은 그 바람에 벌벌 떨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득은 증가했어도 소비는 줄었고, 기업이익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어도 투자는 줄었으며, 비교적 양호한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분배는 악화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관적인 분위기가 초래한 이 세 가지 특이한 현상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했다. 소비가 줄자 경기가 부진해졌고, 경기가 부진해지자 투자는 물론이고 생산을 더욱 망설이게 하였다. 무엇보다, 기업이 생산과 투자를 적정하게 증가시키지 않자 취업자가 충분하게 늘지 않았고, 실업률이 충분히 줄지 않자 임금상승률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으며, 이에 따라 분배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할 일은, 분배의 지속적인 악화는 유효수요의 만성적인 부족을 불러서, 국가경제를 장기침체의 늪에 빠뜨리거나 경제공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고, 나아가 결국은 국가경제의 쇠퇴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지난해에 나타난 위와 같은 세 가지 특이한 현상들은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위험한 사태였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경기가 상승 중이고, 위와 같은 사태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되었다. 주식시장이 호조를 보이자, 올해 들어 비관론이 빠르게 기세를 잃었고, 이것이 경기회복을 불러오면서 사태전개를 반대방향으로 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우연한 일이 국가경제가 비극적인 상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한 번은 막아줬다고 해서, 비관적인 분위기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이런 우연한 행운은 반복된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국가경제의 장래를 항상 염두에 두는 경제전문가라면 비관론의 확산을 결코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사태전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책당국자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비관론 확산에 맞섰던 정책당국자는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오직 두 사람 뿐이다. 한 사람은 대통령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경제부총리다.

우선, 대통령은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경제가 위기에 빠져든 것이 아니라고 외쳤었다(많은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이 점만은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경제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위기’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목소리는 너무 외로웠고 너무 미약했으며, 상황의 개선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청와대 경제참모들도 모두 나서서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여 방어해야 했으나, 이런 일을 공개적으로 한 사람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음으로, 경제부총리는 선제적으로 비관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서운한 점은 비관론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할 때부터 선제적인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최근에는 비관론의 싹이 다시 크지 않도록 선제적인 노력을 열심히 기울이는 모습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물론 선제적인 대처는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미 사태가 벌어진 다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보다는 그 효과가 훨씬 탁월하다.

그런데 분배를 지상목표로 생각하는 참여정부 안의 원리주의자들은 과연 어떤 짓을 했을까? 우리나라 빈부격차가 세계에서 최악이라고 떠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통계조작으로 나온 결과이다) 비관론 확산에 큰 기여를 하고 만 것이다.

마치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었고, 그래서 빈부격차를 더 키우는 결과를 빚었다. 원리주의를 주장하더라도 제발 앞뒤를 가려가면서 할 일이다. 최소한의 경제원리라도 생각해가면서 할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들은 분배개선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정책결정권을 그들이 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배는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통계청이 며칠 전 발표한 「2004년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5분위배율(하위 20% 소득에 대한 상위 20% 소들의 배율)은 참여정부 출범 뒤 2년 연속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2002년 5.18배였던 것이 2003년에는 5.22배로, 2004년에는 5.41배로 악화된 것이다. 그동안 경제정책을 마음대로 요리했던 그들은 분명히 실패한 결과를 남겼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실패에 대해 책임은 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반성만은 해야 한다.

제발 이제는 ‘IMF 이후 빈부격차가 최악’이라는 따위로 떠들지 말라. 아래 표에서 보듯이, 실제로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지배하여 국민들이 경기부진이 심각하다고 느꼈던 2001년과 2004년에만 빈부격차가 잠시 악화되었을 뿐, 그 밖의 해에는 계속 개선되는 중이다.

물론 외환위기가 터진 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사라지고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바람에, 1998년과 1999년에 빈부격차가 갑자기 크게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뒤로는 비관적인 분위기만 극성을 부리지 않으면 빈부격차는 계속 호전되어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할까? 당연히 무엇보다 먼저, ‘빈부격차가 최악’이라는 따위의 엉터리 의제를 내세워 비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앞장서지 말아야 한다. 제발 정책과 그 결과로만 말하라.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기호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 최근의 지니계수 추이

* 자료 : 통계청, 2004년 가계수지동향

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사족을 하나 더 달아두자. 지금은 국민들이 경기를 우선 살려내라고 요구하고 있어서 원리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낮추고 있지만(실제로는 지금도 터무니없이 크지만), 장차 경기상승을 체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이들이 더욱 극성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즉, 원리주의자들이 머지않은 장래에 ‘분배 없는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떠들고, 결국은 경기를 다시 하강시킬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점을 미리 경고해두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 표에서 보듯이, 분배는 성장에 후행하곤 한다는 사실이라도 이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 최근의 가구소득 증가율과 경제성장률 추이(%)

* 자료 : 통계청, 2004년 가계수지동향

출처 : 서프라이즈(www.seoprise.com)의 최용식씨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