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북’은 재정경제부가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자료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정부부처가 발행하는 자료인 만큼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잘 들여다보면, 정책당국이 우리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전망하고 있는가, 경제정책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등을 대강이나마 추정해볼 수 있다.

9월호로 발행한 이번 자료에는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가 지적되어 있다. 즉, “우리 경제는 경기의 개선흐름이 강화되면서 점차 잠재성장률 수준에 접근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나, 국제유가 상승 등에 따른 하방위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정말 큰일이다. 정부가 잠재성장률을 4% 후반대로 추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는데, 성장률이 5%를 넘어가면 경기를 진정시키는 정책을 펼친다는 얘기일까?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실현된 성장률이 실제의 잠재성장률(내가 추정한 수준)에 못 미치는 일이 일어날 것이고,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잠재성장률도 함께 떨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마라톤을 두 시간 10분대에 뛸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항상 세 시간 대에 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시는 두 시간 10분대에는 뛰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고유가(高油價)가 경기를 실제로 하향시킨다면, 이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모처럼 살아나던 국내경기는 다시 하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비관적인 분위기는 더욱 짙어질 것이며, 이것들이 상승작용을 한다면 국내경기는 그 밑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는 일마저 벌어질 수가 있다. 그런데 ‘고유가’가 진짜로 우리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까?

석유가격은 지난 1년여 사이에 거의 두 배나 상승했다. 국내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은 배럴당 30달러를 겨우 넘었던 때부터 ‘이제는 진짜로 큰일 났다’면서 국가경제가 곧 파국으로 치달을 것처럼 끊임없이 예고해왔다. 40달러를 넘고 50달러를 넘어도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예고는 계속되었다. 그들의 경고등은 자꾸만 잘못 울렸지만, 그 원인을 찾거나 반성할 기미조차 없었다. 지치는 기색도 없었다.

한 때 텍사스산 중질유 가격이 70달러를 넘어선 적이 있을 정도로 석유가격은 폭등했지만(지금은 65달러 선), 그 ‘큰일’은 아직까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이제는 재정경제부까지 나섰다. 한국개발원이나 한국은행 역시 재정경제부와 비슷한 경고음을 이미 울린 바가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큰일’이라고 여기는 꼴이다. 제발 ‘큰일’이 우리 경제에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투이다. 이런 현실을 민초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래도 정책당국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할까?

석유가격은 벌써 두 배나 상승했으므로 ‘큰일’이 터지려면 진즉 터졌어야 하는데, 왜 큰일은 아직 터지지 않은 것일까? 석유가격 상승은 크게 다음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 국내경기에 영향을 끼친다. 그 하나는, 세계경기가 나빠지면서 우리나라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다시 국내경기를 하강시키는 경로이다. 다른 하나는, 석유가격 상승이 국내 물가를 전반적으로 상승시키고, 이것이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을 약화시켜서 국내경기를 하강시키는 경로이다.

그렇다면 세계경기가 나빠졌을까? 아니다. 국내물가는 불안해졌을까? 이것도 아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지금과 같은 석유가격 앙등이 왜 일어났는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인을 따지는 것은 경제전문가가 경제를 분석하고 진단함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전제조건이 아니던가.

과거의 석유파동들은 모두 공급부문에서 일어났다. 산유국들이 석유수출을 갑자기 줄이면서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의 석유가격 상승은 수요부문이 촉발했다. 인구가 무려 13억인 중국의 석유소비 증가율이 매년 40%에 육박하고, 인구 12억인 인도도 15%를 넘으며, 러시아나 동유럽 등 다른 지역의 석유소비도 늘어났기 때문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대단한 특수가 일어난 셈이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설령 석유가격 앙등이 국내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더라도, 위와 같은 세계적인 특수가 그 부정적인 영향을 어느 정도 상쇄하거나 완화시켜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보는 것이 경제문제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아닐까? 이것이 균형감각을 갖춘 분석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 재정경제부는 어떤 짓을 하고 있는가? 한국개발원이나 한국은행은 또 어떤 짓을 하고 있는가? 경제전문가들이 일반적으로 지적하듯이, ‘석유가격이 10% 오르면 성장률은 1% 정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진짜로 사실일까? 만약 그렇다면 올해 석유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두 배나 상승했으므로, 성장률은 5% 이상 이미 떨어졌어야 한다. 참여정부 경제팀이 추정하는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5%에도 못 미치므로, 지금쯤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진짜로 지금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경기가 빠르게 상승 중이다.

재정경제부가 왜 이 지경일까? 정책당국이 앞장서서 우리 경제를 비관의 구렁텅이로 끌고 가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경제가 추락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까? 진짜로 한심한 일이지만, 재정경제부는 석유가격이 국내경기에 미치는 두 가지 경로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니, 그런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최고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원이 고작 이 수준이란 말인가? 이들은 왜 덩달아 춤을 출까? 왜 언론의 경제저주를 뒤따르는 것일까? 나는 그들이 악의를 가졌다거나 무능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면밀하게 분석하고 진단하기에 앞서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구멍을 먼저 찾았을 뿐이다.

국내경기가 모처럼 살아나는 것이 그들은 너무 불안한 것이다. 살아나는 경기가 혹시라도 다시 죽는 일이 벌어지면, 그 책임을 온전히 떠 안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런 것이다. 그래서 변명거리를 미리 찾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때의 악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짓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잠시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지금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경제전문가조차 1970년대 초와 1980년대 초의 경제난이 두 차례의 석유파동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당시의 군사독재정권이 그렇게 언론을 통해 국민들을 세뇌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 오히려 경제난은 석유파동이 터지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야 한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1969년에 기록한 13.8%라는 성장률이 경기과열을 불렀고,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부리게 했다. 그 후유증으로 경기부침이 이미 극심하게 나타났으며, 석유파동이 터지기 직전인 1972년에는 성장률이 5.1%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석유파동이 터졌던 1973년에는 성장률이 무려 13.2%에 달했고, 1974년에도 8.1%라는 비교적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제2차 석유파동 때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장률이 1976년에 13.1%, 1977년과 1978년에는 각각 9.8%를 기록하는 등 경기과열 양상이 이미 석유파동 직전에 벌어졌으며, 증권투기와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석유파동 직후인 1979년에는 성장률이 7.2%로 떨어졌지만, 이것은 비교적 견실한 성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 다음해인 1980년에는 성장률이 -3.7%를 기록했는데, 군사정권의 권력야욕이 불러온 극심한 정치불안이 이런 참담한 결과를 빚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석유파동 전후의 성장률(%) 추이

자료 : 경제통계연보 1991, 한국은행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왜 석유파동이 경제난을 불러왔다고 국민들을 세뇌시켜야 했을까? 그거야 당연히 경제정책의 실패를 호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석유파동을 전후한 경제난은 석유파동이 불러온 것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실패가 불러왔는데, 이것을 감추기 위해 그 책임을 석유파동에 돌렸던 것이다.

지금 재정경제부도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과거 독재정권 때의 폐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 나선 병사가 도망 갈 구멍부터 찾는다면, 그 전쟁의 결과는 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경제여건이 어려워도 불굴의 의지로 용감하게 싸워서 난국을 헤쳐 나갈 경제정책 당국자는 과연 없다는 말인가?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다시 찾아줄 당국자는 과연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