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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인플루엔자(AI·Avian Influenza)로 전국에서 수백만 마리의 닭이 산채로 땅에 묻히고 있지만, 인간을 AI에서 지키는 것도 닭이다. 인간이 맞는 AI백신을 달걀(유정란)에서 배양해 뽑아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생명체에 기생하는데, 달걀에서 병아리가 생길 때 가장 잘 배양된다. 그래서 AI백신뿐 아니라 다른 백신도 달걀에서 배양해 뽑아내는 경우가 많다. AI백신은 AI바이러스의 독성을 없앤 뒤 배양하는 것이다. 이 백신을 인간이 맞으면 AI에 대한 항체가 생긴다. 그래서 백신용 닭과 달걀을 지키는 일은 사실상 '국방산업'이다.
다행히 한국은 백신 만드는 기술을 가진 세계 9개 나라 중 하나다. 백신을 만드는 원리는 비슷하기 때문에 개발에 착수하면 성공 확률이 높다. 그래서 과거 간염 백신을 만든 경험이 있는 녹십자에서 AI백신 개발에 나섰다. 한국은 영국·미국·프랑스 등에 이어 AI백신에 대한 임상실험을 준비해 빠르면 2010년 'AI백신 독립국'이 된다.
◆요새 같은 양계장
지난 17일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행죽리 한국양계TS 사육장. 닭 10여만 마리가 사육되는 양계장은 요새처럼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김윤호 부사장은 "반경 3㎞안에 닭·오리 농장이 없어 AI가 인근에서 발생하더라도 살(殺)처분될 우려가 없다"고 말했다.
- ▲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의 목암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AI균주를 달걀에 넣고 있다. AI균주는 이 달걀에서 3일간 배양된 뒤, 백신으로 만들어진다. /조의준 기자 joyjune@chosun.com
선별하고 또 선별한 닭들이 이곳에 있다. 김 부사장은 "유전병 검사 결과 하자가 없고, 암탉의 경우 최소 20주간 매일 알을 낳을 수 있는 건강한 녀석들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닭들은 매달 피를 뽑아 건강검진을 받고, 유기농 사료에 비타민과 무기질을 섞은 영양식을 먹는다. 흙바닥을 뛰어 노는 '촌닭'들과 달리 살균된 닭장에서 한 마리당 750㎠의 공간을 배정받는다. 일반 양계장은 마리당 420㎠ 공간만 준다.
닭장에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된다. 암탉 소유 다툼을 없애기 위해, 수탉 한 마리에 암탉 10마리를 함께 넣는다. 이 때문에 큰 닭장에 77마리 정도 들어가지만 다툼은 거의 없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사람은 거의 안 들어간다. 닭장 청소부터 모이주기, 계란 수집까지 모두 기계가 한다.
이곳 닭들은 '굵고 짧게' 산다는 것. 김 부사장은 "노산(老産)을 하면 건강한 유정란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생후 68주엔 모두 닭고기가 된다"며 "나중 백신생산이 본격화하면 50주만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반 양계장의 닭은 80~100주간 산다.
이곳에서 생산된 달걀은 엄선돼 백신용으로 공급된다. 백신용 달걀은 개당 600원으로 일반 유정란(150~200원)의 3배 이상 값을 받는다. 나머지는 병아리(두당 1100원)로 부화시켜 다른 양계장에 판다.
◆2010년 AI백신 독립국 목표
18일 경기도 용인시 녹십자 목암연구소. 한국양계에서 선별된 2700개의 유정란이 매주 이곳으로 배달된다. 우규진 연구팀장이 달걀에 불빛을 비추며 "실핏줄이 생기고 안에서 병아리 태아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죠? 11일째고, 이 안에 AI백신 균주(菌株)를 넣어요. 3일 후인 14일째에 배양된 바이러스를 빼내는 거예요."
목암연구소에서 달걀에 넣는 AI균주는 영국에서 가져왔다. 박두홍 연구소장은 "2005년 베트남에서 발병한 AI 바이러스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독성을 빼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산된 백신은 현재 동물실험을 마쳤고, 임상실험을 준비 중이다. 원래 신약은 임상실험을 3번 한 뒤 출시해야 하지만, 정부는 AI백신의 중요성과 시급함을 감안해 2번만 실험하고 일반에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박 소장은 "전남 화순에 녹십자 백신 공장이 생기면 2010년 이후 백신 대량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며 "그때는 AI공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