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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함의 화신-용궁 갯민숭달팽이

이 생물은 동족을 만나면 반가이 다가간다.

친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잡아 먹기 위해서다.

자신의 몸통만한 동족을 괴물 같이 생긴 커다란 입으로 통째로 꿀꺽 삼킨다.

새끼라고 인정 사정 봐주지도 않는다.

이 비정한  생물에게  동족이란, 적  아니면 먹이 , 둘 중 하나이다.

상대의 헛점을 노려 잡아 먹거나 방심하면 잡아 먹힌다.

물어 보지는 못해도 아마도 그들의  삶은 늘  굶주림과 시기심, 그리고 공포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사마귀 역시 교미 후에 동족인 수컷을 잡아 먹지만, 그것은 적어도 유전자를 남기는 데 일조한다는 명분이 있다.

진한 파란색과 황금색의  화려한 의상, 용궁 갯민숭달팽이라는 우아한 이름만이 찬란한 용궁의 일족이었다는 이 생물의 먼 과거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한다.

화려한 색깔의 위장에 가려져 있으나, 그 본 모습은
모양없는 거대한  입과 꿀꺽한 음식(?)을 수용할 만한 원통형의 몸체뿐이다.

용궁에서 돌팔매질 당하며 쫒겨난 후 , 동족 조차 먹이로 삼아야 하는 나락으로 떨어진 갯민숭 달팽이의 후손이 바로 이 생물인지 모른다 .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용궁에서 추방 당했는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다.

한 장소에 떼지어 서식하기도 하는데, 모여 산다기 보다는 ‘먹이가 풍부한 곳에 있는 것’ 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런 생물이 바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습과 이름만 다를 뿐,  잔인한 용궁의 추방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출처-이상한 생물 이야기-하야가와 이쿠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