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방식 대체 기술 성공 120㎏급 강판 최초 상용화
"상식 뒤엎는 제품 개발"

경북 포항의 포스코 포항제철소‘. 자원은 유한(有限), 창의는 무한(無限)’이라는 글귀가 적힌 정문을 통과해 고로(高爐·용광로)가 늘어서 있는 형산강 도로를 따라 계속 들어가면 산소공장 너머로 거대한 사각형 모양의 철구조물 2개가 보인다. 세계 철강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 지구상 최초·유일의 파이넥스(FINEX) 상용 공장이다.

파이넥스 공법은 철광석과 유연탄을 용광로에 넣기 전 적당한 크기의 덩어리 형태로 만드는 소결공정과 코크스공정 없이 가루 형태 그대로 원료로 사용하는 신(新)제철법을 말한다.

100년 이상 사용돼온 고로 방식의 제철법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포스코가 상업화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이넥스 공장은 포스코 연구·개발(R&D) 능력의 응축물이자 상징이다.



◆후발주자에서 선도주자로

세계 철강업계의 후발주자인 포스코는 오랜 기간 원천기술이 없어 선진기술을 도입해 개량하고 고도화하는데만 주력해왔다. 그러나 최근 포스코는 파이넥스 기술뿐 아니라‘세계 최초’‘포스코 고유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 잇따라 성공하는 쾌거를 올리고 있다.

특히 정준양 회장 취임 이후 R&D분야에서‘세계 최초(World First)’‘세계 최고(World Best)’‘세계 최다(World Most)’에 대한 지향은 더 뚜렷해졌다. 취임 일성으로 밝힌 3대 경영이념 중 하나가 바로‘창조 경영’이다. 정 회장은 연구개발이 단순히 기술이나 특허 개발로 끝나지 않고 비즈니스 성공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R&D(연구개발)’가 아니라‘R&BDE(연구 및 비즈니스개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자동차 강판의 강자로 부상

자동차 강판은 최근 포스코가 비즈니스 성공으로까지 이어진 실적을 속속 거두고 있는 대표 분야다. 포스코가 자동차 강판을 본격 생산하기 시작한 1980년대 말, 고속도로 결빙 방지를 위해 뿌려진 염화칼슘을 견뎌낼 수 있는 고급강판을 생산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올해 초, 포스코는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강판 품질 기준이 가장 까다롭다는 도요타에 자동차 강판을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자동차 강판은 크게 내판재와 외판재로 나뉜다. 특히 외판재는 표면의 흠 관리가 매우 엄격하다. 그중에서도 도요타의 외판 품질 관리는“30㎞ 길이의 강판을 확대경으로 살펴봐서 흠집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수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포스코는 이런 도요타의 품질관리 테스트를 뚫고 납품에 성공한 것이다.

자동차 강판 분야에서‘비즈니스 성공’뒤에는‘세계 최초’로 성공한 연구·개발 실적이 있다. 지난해 포스코는 120㎏급(지름 1㎜의 철강재가 120㎏의 무게를 버티는 것) 강판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하지만 120㎏급 강판은 강도가 너무 높아서 가공성이 거의 없다. 극히 제한된 부문에만 사용된다. 현재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사용하는 주력 강판은 35㎏급이고 서서히 50㎏급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2007년 10월 세계 최초로 50㎏급 자동차 외판용 도금강판을 상용화한 것도 포스코였다.



◆상식을 파괴3하는 철강재 개발

포스코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가가 시장을 뒤흔들 새로운 시도를 준비 중이다. 바로‘TWIP강’(Twinning Induced Plasticity·초고강도강판)이다. 포스코 TWIP프로젝트팀 진광근 팀장은“TWIP강은 기존의 강판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강판”이라고 말했다.

강판은 강도가 높을수록 가공하기가 어려운 것이 상식이다. TWIP강은 이런 상식을 파괴한다. 초고강도이면서 최고 수준의 가공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가공하기 어려운 복잡한 형상의 자동차 부품을 만들 수 있다. 기존 상식을 파괴한 TWIP강의 원천 기술을 바로 포스코가 가지고 있다. 포스코는 현재 일본·유럽의 주요 완성차업체, 부품 업체와 함께 TWIP강을 자동차와 부품에 채용하기 위해 내구성 등 각종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포스코는 현재 전 세계 100여개 완성차 업체와 부품 업체에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EVI(Early Vendor Involvement)’방식으로 공급하는 것이 많다. 즉 자동차회사가 요청하는 철강재를 단순 공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는 디자인과 시뮬레이션 단계부터 참여해 맞춤형으로 철강재를 개발·공급하는 것이다. 그만큼 유수의 자동차업체들이 포스코의 기술력을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3각편대식 연구·개발

후발업체인 포스코가 자동차 강판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포스코 사내의 기술연구소와, 사외 계열 연구기관인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연구 중심 대학인 포스텍(포항공대)과 세계 최초의 철강전문 교육·연구기관인 철강대학원 등 산·학·연 3각편대로 이뤄진 연구·개발체제 덕분이다. 기초연구는 포스텍과 철강대학원이, 응용연구는 RIST가, 구체적인 제품 개발과 생산공정 개발은 포스코기술연구소가 각각 맡고 있다. TWIP강 개발도 그런식이었다. 해당 기술은 1980년대 후반 개발했으나, 양산 기술이 부족해 묵혀두었다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 기술 개발에 들어가 이제는 실제 차체에 적용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정준양 회장은 최근 신기술 개발을 더 강조하고 있다. 그는“신기술은 무한경쟁 속에서 포스코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며“혁신적인 철강생산 과정과 제품기술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하자”고 독려하고 있다.

유례없는 글로벌 철강산업 불황이 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 어떤 신기술과 혁신적인 공정을 개발했느냐 여부가 미래의 승자를 결정할 것이라는 절박한 인식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