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적당히 마시면 개인의 사회활동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국가 권력은 술을 통제해왔고, 다른 한편으로 막대한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원천으로도 활용해왔다. 그러다보니 국가가 술에 대해 일반 공산품보다 많은 규제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술에 대한 통제가 정부의 무능력이나 과도한 의욕, 생산업자들의 이해관계 등에 의해 적정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 문제를 초래할까? 무엇보다도 술을 마시는 소비자, 이른바 ‘주당(酒黨)’들이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피해를 입게 된다. 품질은 나빠지면서 오로지 취하게만 만드는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술 생산량은 1950년대 30만㎘ 정도에서 오늘날 300만㎘를 넘는 수준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며 음주량이 늘어났고 인구 증가 등이 가세하여 서로 상승작용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양적으로 급성장한 술 시장에 대한 규제가 불합리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소비자 입장에서 질적인 발전은 아주 미흡했거나 오히려 퇴보하고 말았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규제의 ‘봉’으로 간주하면서 술마다 여러 가지 규제를 한 결과였다.
먼저, 1970년대까지 대표적인 술이었던 막걸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막걸리 생산은 1974년 최고 약 170만㎘로 우리나라 전체 주류 생산의 80% 정도를 차지하기도 하였으나, 오늘날 불과 10만㎘ 수준으로 곤두박질했다.
막걸리 경쟁력 잃어 시장서 퇴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막걸리 생산과 소비가 줄어든 것은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소비자의 입맛이 달라지는 등의 요인도 작용하였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다른 데 있었다.
막걸리는 일반 서민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는 점을 내세운 제조업체들과 정치권이 합작하여 1961년부터 시ㆍ군ㆍ구 독점판매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양조장에서 생산한 술을 그 양조장 소재지의 시ㆍ군에서 독점 판매하고, 다른 시ㆍ군에서는 판매할 수 없도록 하였다. 막걸리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변질되었고, 냉장시설이나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에는 불가피한 규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생산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제도가 없었다. 왜냐하면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술 소비량이 늘어났고, 생산된 술을 판매할 수 있는 일정 지역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역 독점판매제도는 탁주 업체들의 경쟁을 없애고, 대형화를 어렵게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시ㆍ군ㆍ구 안에서만 판매할 수 있는 규모로는 신제품 개발, 품질 향상, 용기나 포장개선 등을 수행할 여력이 없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막걸리의 품질은 떨어졌고 소비자는 자연 이런 술을 멀리했다.
이 제도는 2001년 폐지될 때까지 무려 4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는데, 이로 인한 피해자는 다름아닌 소비자와 탁주 업체들이었다. 소비자들은 다른 시ㆍ군에서 좋은 막걸리가 생산되어도 자기 지역에서 생산되는 술을 마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비싼 맥주나 고(高)알코올 소주를 마셔야 했다. 그리고 탁주 업체들은 막걸리 수요자를 다른 술에 계속 빼앗기면서 영세하고 취약한 규모에 허덕이거나 아예 문을 닫아야 했다.
불균형 속에서 시작된 소주 정책
이번에는 소주의 경우를 보자. 1960년대 500여개에 달했던 소주 업체는 불과 10개로 통·폐합되고 말았다. 양곡 부족에 따라 곡물로 소주를 만드는 것을 금지한 양곡관리법이 1965년 시행되면서 증류식 소주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난립한 영세 업체를 대형화하기 위한 산업합리화조치법에 따라 1973년부터 통·폐합 되었던 것이다.
전국 10개 시ㆍ도를 대표하는 소주 업체가 소주 소비를 애향심과 연계시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다목적 포석에 의해 지역 독점기업으로 육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신규면허 금지, 원료 배정제도 등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생산량이나 시설을 충족하지 못하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여 웬만한 중소 업체들은 소주 생산에 참여하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한 생산된 소주가 해당 시ㆍ도에서 판매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1977년부터 각 도매 업체로 하여금 매월 50% 이상을 자기 시ㆍ도의 소주 업체가 생산한 제품으로 의무 구입하도록 하는 ‘자도주(自道酒)’ 제도를 실시하였다. 지역 소주 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규제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 정책은 지역별 인구 격차 등에 따라 처음부터 불균형 속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경제발전에 따른 수도권으로의 인구이동에 의해 업체간 불균형을 고착시키거나 더욱 심화시키고 말았다. 더욱이 수요가 폭증하는 지역의 업체들은 인기제품에 비인기제품을 끼워 팔고, 다른 지역의 업체는 재고가 남아돌아 덤핑으로 판매하는 등 독과점 문제나 불공정행위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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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소주 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업체간 경쟁을 사라지게 했고, 주당들이 품질 좋고 다양한 소주를 선택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1990년대 초부터 규제개혁이 추진되어 면허개방, 알코올 도수 제한 폐지, 시설기준 완화, 자도주 제도 폐지 등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소주 시장의 경쟁이 활발해졌고, 수많은 신제품들이 봇물 터지듯이 출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주 브랜드가 조만간 100개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10여년 전과 비교할 때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변했다.
맥주 시장 신규 진입 어렵게 해
마지막으로 맥주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맥주는 일시적으로 3개사였던 시기도 있었지만, 대개 2개사가 생산해왔다. 1960년대 전반 불과 1만2000㎘ 수준이었을 때나, 오늘날 180만㎘를 넘어 세계 14위 정도로 성장하였어도 변한 것은 없다. 맥주회사가 2개사만 있었던 것은 정부 규제 때문이었다. 주세법령에서 면허를 금지하였거나, 한 해 일정량 이상을 생산하지 못하거나 또는 수천억원 규모의 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중소 사업자가 참여할 수 없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의 규제개혁에 따라 1993년 진로쿠어스가 진출하기도 하였지만, 2001년부터 OB맥주에 흡수 합병됨으로써 2사 체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2002년부터 소규모 맥주(마이크로 부로이) 생산이 가능하도록 시설기준을 낮추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소규모 맥주를 생산하려면 음식점 영업을 해야 하고, 생산된 맥주를 그 음식점 안에서만 판매해야 하는 엄격한 제한이 있기 때문에 쉽게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맥주시장에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입맛에 맞는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독일에는 1300여개에 이르는 양조소가 있어 저마다의 맛과 향을 자랑하는 맥주가 있다는 것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는 4개 대형 맥주 회사 이외에 230개가 넘는 소규모 맥주 업체들이 수백 종류의 지역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술 생산 위해 노력해야
1990년대 초와 1998년의 대규모 규제개혁으로 주류 산업에 대한 규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은 퍽 다행이었다. 그러나 아직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특히 저(低)알코올이면서 다양한 술이 많이 생산될 수 있는 방향으로 더욱 개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같은 소주일지라도 알코올 도수(度數)가 높으면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낮으면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지역별로 다양한 술이 생산될 수 있도록 외국에서처럼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세금을 낮추어줄 필요도 있다. 소규모 맥주 제조자에게 음식점 허가를 받도록 하는 것과 같은 제한을 폐지하여야 한다. 양조시설은 갖출 수 없지만 능력 있는 양조자가 시설을 공동 이용하거나 임차하여 좋은 술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술에 넣는 첨가제를 일일이 규제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더 많은 술을 생산하여 흥청대자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특색이 있는 다양한 술이 생산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당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우리나라 국민은 일본인보다 연평균 15ℓ나 술을 적게 마시지만, 소주나 위스키 같은 증류주를 많이 마시기 때문에 술 속에 포함된 순수한 알코올 섭취량으로는 0.2ℓ나 많이 마시고 있다. 결국 일본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2도 이상 높은 술을 마시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고알코올 술을 자제하고 담배나 커피를 골라 소비하는 것처럼 술도 선택하여 즐기며 적당히 마시자는 것이다.
지철호 공정거래위원회 부이사관 ‘한국의 술, 반세기의 바가지’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