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한국기업평가가 대한통운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A0에서 A+로 한 단계만 올린 것을 본 증권사 크레디트 애널리스트의 반응이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7일과 9일 대한통운의 신용등급을 A0에서 AA-로 각각 두 단계씩 올린 상태였다. CJ그룹에 편입돼 대외 신인도가 높아지고 그룹의 지원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경우 마지막에 평가하는 신용평가사는 앞서 신용등급을 조정한 회사의 결과를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굳이 발행사인 기업에 밉보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룹 후광을 업은 대기업 계열사에는 특히 그렇다.
한국기업평가가 대한통운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올리는 데 그치면서 대한통운은 열흘 만에 AA급 기업에서 A급 기업으로 내려 앉았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가장 최근 평가를 받은 2개 등급 중 낮은 것을 유효한 등급으로 인정하고 있어서다. 이로써 대한통운은 AA-가 아닌 A+의 신용도로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한국기업평가로서는 대한통운과 CJ그룹의 눈밖에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기업평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실무자들의 의견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합병(M&A)이라는 이슈를 낙관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시너지 효과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소신이었다.
신용평가사들은 미래에 발생 가능한 긍정적인 요인을 등급 상향의 주된 근거로 삼는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도 대한통운이 CJ그룹에 편입됨으로써 발생할 미래의 효과를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영업수익성 하락 등 부정적인 변수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CJ그룹이 대한통운을 인수하기 위해 새로 돈을 빌려 재무부담이 심화된 점을 간과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같은 신용평가사의 태도가 ‘등급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금융당국이 신용평가시장 선진화를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만들어져도 공정한 평가를 하겠다는 신용평가사의 의지가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한국기업평가의 소신이 그래서 값지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