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서울에 처음 와 봤다.
대학 입시가 지원 대학교에서 치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산역에서 서울역까지 기차를 타고 와서
다시 4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넜다.
말로만 듣던 한강!
저녁 석양에 반짝이는 63빌딩을 처음 봤다.
저기가 전쟁나면 둘로 갈라지며 속에서 로봇 태권 V가 나온다는 건물인가. ㅎㅎ
그 해 시험에서 낙방하고 나서
서울에 다시 올라온 건 그 다음 해 겨울이었다.
환경이 낯설어서 일까?
수학 시험을 망치고 나서
시험 발표 날에 서울에 올라가지도 않고
부산 집에 쳐 박혀 있었다.
그때는 인터넷도 제대로 안 쓰던 때라
합격자 발표를 전화로 확인하던지
아니면 대운동장 벽면에 과별로 합격자 명단이
게시되면 직접와서 확인하던 때였다.
전화는 잘 통화가 되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직접 와서 확인을 하고 했다.
나는 시험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서울에 있는 형님에게 대신 확인해 달라고 하고
부모님 볼 면목도 없기에
방안에 쳐 박혀 있었다.
10시 쯤 되었을까?
형님이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해왔다.
'너 붙었다 임마!' '불문과에!'
붙었다는 소식에 기뻤지만
불문과? 난 경제학과에 시험을 쳤는데..
1지망은 떨어지고 2지망이 된 것이다.
어쨌든 합격은 했기에 3수를 면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날 오후에 서울행 새마을 열차를 탔다.
마침 같이 옆자리와 앞자리에 탄 분들이
젊은 대학생들이라 마주 보는 좌석에서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의 젋은 애가
말없이 조용히 앉아서 가니
혼자 먹기 무안했는지 내게도 오징어 포를 권했다.
마지못해 오징어 한 두개를 집어 먹고
김광석의 카세트 테이프와 이어폰을 끼고
창문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마침 열차가 낙동강 강변을 지나고 있었다.
스산한 겨울 갈대 밭에 붉은 해가 지나는 강변.
안도감과 아쉬움과 불안감이 섞인 내 마음을
보여주는 걸까?
이제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낙동강 석양이 눈에 선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