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위황후
고종이 죽은 뒤 무측천은 중종을 앉혔는데 54일 만에 쫒아 냈다고 앞서 말했다.
이유는 중종의 황후인 위황후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 여자는 무측천의 며느리로서 먼 발치에서 무측천의 종횡무진하는 활약을 보고
아마 황후라는게 저런건가 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종이 등극하자 마자 자기 아버지를 문하시중이라는 요직에 앉혔는데, 뭘 좀 모르는 여자이다.
중종이 허수아비인줄 조차 몰랐으니.
22년을 기다린 끝에 무측천이 죽고 중종이 다시 등극하자
처치 곤란인 이 여자는 새로운 꿈을 키운다.
오랫동안 무측천의 천하를 보아온 그녀,
권력을 부리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왕국을 꿈꾸어
친딸인 안락공주와 함께 중종을 독살하고 만다.
중종의 딸인 안락공주 역시 어머니 다음엔 자신이 제 3 의 무측천이 될것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이 일에 동참한 것이다.
지저분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으며,위황후는 무측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중종 독살 이후 18일만에 후에 양귀비로 유명한 당 현종이 되는 이융기가 반란을 일으켜 궁전으로 쳐들어 갔다.
반란군의 실감나는 선포는,
“위황후는 선재를 독살하고 사직을 위태롭게 하였다. 오늘 밤 마땅히 위 일족을 주살하리라.
말채찍 높이 이상은 모두 베어라.”
말채찍 높이, 즉 어린아이를 제외한 모든 위씨 일당을 베라는 것이다.
군관으로 있던 위씨들은 주살당했다.
위황후는 이리 저리 쫒기다가 칼을 맞아 죽었고 안락공주는 거울 앞에서 눈썹을 그리고 있다가 칼날을 맞았다.
18일의 천하는 너무 짧았고 꿈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
그날 밤 하늘엔 별이 흩어져 떨어지는 것이 꼭 눈(雪) 같았다고 한다.
무측천을 변호하는 사람은 있어도 위황후를 변호해 주는 사가(史家)는 없다.
위황후의 아들은 장씨 형제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무측천이 죽였다는 것을 앞서 말했다.
대를 이어 황제에 오를 아들이 없다.
언제 어떻게 쫒겨나게 될 지 모른다.
기댈 것은 권력밖에 없었다. 그것도 자신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
이런 욕심들이 참혹한 패륜을 저지르게 한다.
딸과 함께 남편을 독살한 이 여인에 대해 동정할 수는 있지만 역시 변호해 줄만한 가치는 없다.
3부 태평공주
태평공주는 고종과 무측천의 딸이고 중종과 이융기의 쿠데타에 의해 즉위한 예종과 남매간이다.
태평공주는 무측천을 빼어 닮아 스케일이 크고 권모술수에 능했으며 경쟁심이 강하고 무씨들과 깊이 얽혀 있었다.
외갓집이니까.
무측천은 50년간이나 집권했기 때문에 무측천 사후에도 영향력이 크게 남아 있었다.
따라서 위황후등의 세력보단 훨씬 크며 아직도 조정을 휘어잡고 있었다.
위씨 일당에 대한 쿠데타에도 태평공주가 관련되었으며 그녀의 아들도 직접 가담했다.
쿠데타 후 중종의 동생 즉 태평공주와도 형제인 예종이 즉위 했으며 별로 유능하지 못한 예종은 늘 태평공주에게 의지했다.
태평공주는 조정의 일을 주물렀다.
쿠데타의 주역 이융기는 훗날 당나라 번성기를 이룬 현종이 된 사람이다.
황태자로 책봉되어 있다.
야심이 크고 조용히 지낼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골치 아픈 고모인 태평공주가 권력을 쥐고 있으며 위의 형들을 제치고 황태자가 된이융기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으며 태평공주 쪽이 우세했다.
이융기의 지위는 불안했다.
태평공주는 ‘황태자가 폐립될 것이다’하고 소문을 퍼뜨렸다.
실제로 제거 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둘은 치열한 권력 다툼을 하였으며 마침내 예종은 자신이 이융기에게 양위함으로서
이 다툼을 끝내려 하였다.
그러나 현종이 등극하고도 결판이 난 것이 아니었다.
조정은 아직도 태평공주의 힘이 강했다.
무측천의 딸인 태평공주는 그냥 주저 앉지 않는다.
마침내 현종 암살이라는 비상수단을 계획하게 된다.
이에 현종은 태평공주에 대한 마지막 공격을 개시하여 깨끗이 숙청시켜 버렸다.
태평공주는 절로 도망갔다가 사흘 뒤 돌아와 집에서 사약을 받았다.
결말은 깨끗했다.
태평공주의 죽음으로 당나라 조정에서 길고 긴 여인의 향기가 사라지게 된다.
실로 50년 만이다.
무측천은 원래 태종의 궁녀로서 재인(才人)이라는 하급궁녀로서 이름은 무조이다.
태종의 셋째 아들인 이치(태종 사후에 고종이 됨)는 아버지 태종의 궁녀이며 연상인 무재인과 남의 눈을 피하는 사이가 되었다.
후에 태종이 무재인을 이 아들에게 주었다고도 하고
태종이 죽은 뒤 머리깎고 절에 중이 되어 있는 무재인을
고종의 황후인 왕황후가 데려 왔다고도 한다.
왕황후가 무조를 데려 온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종의 후궁중에 소숙의가 있는데 고종이 이 여자에게 쏠렸다.
왕황후는 과거 고종이 황태자 시절 그렇고 그런 관계였던 무조를 불러 들여 소숙의를 견제하고자 했다.
견제라면 제대로 견제를 했는데 이번에는 고종의 총애가 무조에게로 쏠렸고
왕황후와 소숙의는 유폐되고 말았다.
늑대를 피하려 호랑이를 끌어들인 격이다.
유약한 고종이 몰래 두 사람을 찾아간 것 때문에 격분한 무측천은 두 사람을 죽이는데
잔인한 그녀의 성품이 역사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먼저 두 사람에게 곤장 100대를 친 다음 사지를 절단하여 술독에 처 넣었다.
“두 계집의 뼈가 흠뻑 취하게 만들어라”
며칠 지나 두 사람은 죽었는데 무조는 다시 그 시신까지 베게 했다.
소숙의는 죽으면서 소리친다.
“너는 죽으면 쥐로 태어나거라.나는 고양이로 태어나서 네 목을 물어뜯어 죽일 것이다.”
이 후 무황후는궁궐에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한나라 고조인 유방의 부인이 여황후인데
이야기가 매우 흡사하게 들린다.
차마 읽기에 소름끼치지만 여황후의 잔혹함을 알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한 고조 유방에게는 여황후 외에 말년에 사랑한 척부인이 있었다.
척부인은 아들을 낳았고 이름이 여의이다.
척부인은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고조의 뒤를 잇게 하고 싶었고 고조에게 매달렸다.
고조도 여후에게서 난 아들인 황태자 유영 대신 늦둥이인 여의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 것 같다.
여후는 호걸 집안의 딸이다.
결국은 여후의 수완으로 유영은 황태자의 자리를 보존하게 되었고 고조가 죽자
여후는 척부인을 도저히 용서 할 수 없었다.
그냥 죽여서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
팔과 다리를 자르고 눈을 도려내고 귀는 그슬려서 듣지 못하게 하였으며
독약을 먹여 목소리를 잃게 한 뒤 변소에 가두고
인체(人彘=人豚=사람 돼지)라 부르게 하였다.
그 처형은 잔인성에 있어서 역사상 너무나 유명하다.
혜제가 된 유영은 원래 심약하였는데 이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1 년 이상 드러누웠으며 이 후 주색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24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여후는 남아 있는 여의를 독살했고 이 후에도 유방의 배다른 다른 아들들을 차례로 굶겨 죽이고 스스로 자살하기도 한다.
무측천은 수백년전의 이 이야기를 들어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무측천은 그 일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
여황후의 일생과 무측천은 닮은 데가 많다.
절대적인 힘을 가졌던 아버지에 이은 심약한 아들의 등극
그리고 그 곁에 대가 쎈 여인이 있었다는 것
그 여인들이 결국 그 나라를 빼앗아 지배했고
당연한 결과지만 그녀들이 죽고 나면 그 흔적들이 모두 없어졌다는 점.
무조를 황후로 책봉하는데 고종은 건국시대부터 중신으로 있던 네 명의 신하에게 가부를 물었다.
두 명은 반대했으며 한명은 침묵을 지켰고 한명은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다.
황후가 된 무측천은 반대한 한 명은 지금의 베트남 하노이 남쪽까지 유배시켜 더럽고 축축한 독기의 땅에서 죽게 했으며, 한명은 모반 혐의로 사사했다.
침묵을 지킨 자는 좌천되었다.
황후가 된(655년) 무측천은 고종을 제치고 자신이 전면에 나섰다.
심약한 당 고종은 무측천의 잔인성에 질려 버렸는지 모른다.
재상으로 있던 상관의와 모의하여 무측천을 제거하려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무측천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고 밀고에 의해 발각되었다.
고종은 모든 죄를 상관의에게 뒤집어 씌웠고 아내로부터 몸을 지켰다.
상관의는 처형되었다.
이런 일에는 의례 일족이 다 처형된다.
아들도 처형되었다.
그 아들에게 갓 태어난 딸이 하나 있었고 무측천은 차마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일수는 없어
데려가서 세상과 격리시켜 후궁에 넣어 두었다.
무측천이 무려 50년간을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공포정치였다.
무측천이 황후가 되자 원래 있던 황태자를 폐립하고 무측천의 장자인 이 홍이 다섯살에 황태자가 되었다.
이홍은 훌륭하게 자랐으며 옳지 않은 일에는 어머니라도 직언을 한다.
이 아들이 무측천은 좀 껄끄러웠는데, 죽은 소숙비의 딸들이 서른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간 것을 두고 이홍은 고종에게 출가시키라 상주 했다.
고종은 기특히 여기며 허락 했는데,이 일 직후 이홍은 무측천에게 독살 당하고 만다.
아들보다는 정치를 택한 여자이다.
둘째인 옹왕이 새 황태자가 되었는데 모반의 혐의를 뒤집어 쓰고 자살한다.
다음에 영왕 이현이 새 황태자가 되었고 고종이 죽자 즉위하였는데 중종이다.
이번에는 중종의 부인으로 좀 처치곤란한 여자인 위황후가 자기 아버지를 문하시중이라는 요직에 앉혔는데 무측천의 위세를 흉내 낸 모양이다.
대노한 무측천이 54일만에 중종을 폐위시켜 버리고 여덟째인 이단을 황제로 앉혔으니 예종이다.
그나마 죽지 않고 목숨을 건진 것이 다행이다.
예종은 조용히 지냈다.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무측천은 자신의 나라를 세운다.
예종을 폐위시키고 나라 이름을 ‘주’로 하였다.
당의 이씨들이 가만 있지 않은 것은 당연했지만 모두 처형 당했다.
황족 연합군을 일격에 부셔 버리고 모두 살해되거나 자살하였다.
당 황실은 거의 전멸했다.
설회의라는 요승이 있어서 무측천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궁전 출입이 무상했는데 얼마 안가 싫증이 난 무측천은 궁중의사인 심남구로 옮겨갔다.
설회의는 미련없이 죽였다.
76세가 되던 해에는 장역지 장창종 형제를 총애한다.
76세에 뭔 총애인가 모르겠지만(^^;;;) 무측천 말년은 두 형제의 천하였다.
자신의 손자와 조카가 그들을 못 마땅해 한다는 말을 듣고 노하여 그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홍안의 애인들을 위해 기꺼이 자손들을 죽인 것이다.
그녀는 장생전(長生전)에 살았는데 이름 덕분인지 오래 오래 살았다.
세월은 누구도 비켜가지 않는다.
젊은 애인들을 데리고 잘 지냈건만 83세에 죽었다.
죽기 수개월 전에 당나라의 옛 신하들은 장생전으로 들어가 장씨 형제를 주살하고
병석에 누워 있는 무측천을 퇴위 시키고 전에 한번 자리에 오른적이 있던 중종을 다시 옹립했다.
무측천의 공포 정치에 가담하여 밀고,고문,처형을 마음대로 일삼던 혹리들은 살아있는 자들은 주살당하고 죽은 자는 그 죄가 유족에게 미쳤다.
그 해 말 무측천은 죽어 고종 곁에 나란히 묻혔다.
자신의 아들들을 차례로 죽인 끔찍한 아내가 자신 옆에 묻히는 것을 고종이 좋아 했을지 모르겠다.
잠시 산속의 집에서 놀며
쉬이 떠나기가 아쉬워 머뭇 거린다.
안개 낀 창문에는 밝은 달 가득차고
계류를 향한 문에 흰구름이 난다.
책은 등나무를 끌어서 서가로 삼고
사람은 쑥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이는 진정 차분한 마음으로 즐기는 곳
둘러보며 그 찬란한 빛을 완상한다.
서론
당나라는 힘이 넘치는 시대이다.
우리나라에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나라이다.
고선지가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까지 점령하고 티벳을 점령하였고
실크로드상에 있던 서역의 모든 국가와 항상 중국을 괴롭히던 돌궐족등
북쪽과 서쪽,동쪽의 모든 이민족을 평정하였다.
당태종은 진시황이 했던 태산에서의 봉선을 자신도 하려 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당나라가 여인들에게 무려 50년동안 천하를 빼앗겼었던 시대가 있었고
불과 30년 뒤 다시 당 현종은 양귀비에 빠져 결국은 당나라가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정말 아이러니 이다.
무측천의 등장 이후 50년간
당왕조에서 지분냄새가 사라질 날이 없었다.
오로지 향기 뿐이면 좋으련만
지분 냄새에 실려 비릿한 피비린내를 확 풍기는 시대이다.
황제와 그 자식들 그리고 그들의 아내 혹은 어머니 사이에 죽고 죽이는 궁궐의 이야기와
그 틈 사이에서 자신의 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칼날 위의 줄타기 일생을 살다 간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의 이야기가 있다.
끝내 그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쓰러진 기이한 운명의 여자….
이 여자 이야기를 하려면
무측천에서 시작해야 하며
무측천은 또한 당 최고의 번성기로서 정관정요의 주인공인 당태종에서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