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딴지일보 [특파원보고] 반도체계곡에서 살아남는 법/⑨ 한국회사땜에 조뙈는 일본회사, 그래도 부자는 삼대 간다(2005 8.25 (목), 딴지 실리콘밸리 특파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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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반도체는 알아도 그 종류의 머시기가 거시기냐 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본인이 예전에 만들었던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반도체와 출판업을 비교해서 설명한 그림이다. 이해가 되시면 참 고마운 일이고 그래도 헷갈리면 본인 부덕의 소치니 그냥 넘어가면 되겠다. 하여간에.
2005년 전체 반도체시장 규모는 약 225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이 중에서 메모리산업은 올해 가격이 약세이므로 약 47조원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럼 한 20% 조금 넘는 수치가 되는데, 한국이 반도체에서 잘 나간다는 건 이 메모리산업 부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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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삼대 간다
지금까지 일본 메모리 사업의 몰락과, 삼성 및 하이닉스가 어떻게 지배적인 위치에 섰는가에 대해서 정말 번개불에 팝콘 튀겨먹듯이 살펴보았다. 그런데..
왜 일본업체들은 자기 사업의 반을 한국에 덜컥 내주고, 또 미국과 중국/대만에 자기 그릇을 빼았겼는데도, 주요 반도체 10개사 중 한 개도 아직까지 안 망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즉, 조뙈버렸는데도 아직까지 꿋꿋하게 버티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부터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서 간단하게 살펴 보겠다.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폐쇄적인 일본시장
아무리 삼성과 엘지가 그리고 중국의 하이얼이 난다긴다 해도, 일본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전자 대국이다. 전세계에서 인기가 쟁쟁한 가전제품 대기업만 열 개 정도 몰려있는 일본시장은 아직도 세계반도체 시장의 약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 시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내부끼리의 공존공생 및 일본 특유의 폐쇄적 시장으로.
물론 일본에 없는 기술이나 제품들, 그리고 가격이 아주 싸서 누가 보아도 일제를 쓰면 바보같을 경우에 그들은 다른 나라 제품들을 수입해서 쓴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모든 가전회사들이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다. 그들이 자사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있게 개발할 수 있는 제품들은 자기네 것을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외국회사가 일본 시장을 뚫기는, 대기업들이 아니라면 몹시 힘들다고 보면 사실이다.
또한 일본에는 IT벤쳐가 아직도 걸음마 단계이고, Fabless란 말이 생소하므로, 구매자들도 기본적으로 조그만 외국 업체 제품들은 정말 특이한 것이 아니면 구매하지 않으려는 게 일반적인 사항이다. 게다가 정부도 알게 모르게 국산품을 장려하는 현상도 있고.
하여간 이런 현상들이 모여서, 일본시장은 물론이요, 일본내부 대기업들의 경쟁은 아주 치열해도 국가적으로 보게 되면 일본인들이 사이 좋게 나누어 먹는 것이 된다.
수많은 분야에서 길러놓은 기본적 경쟁력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 말이 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우리가 잘 모르는 비메모리 제품들은 오랜 시간 한 우물만을 파야 성공할 수 있는 게 많다. 흔히들, CPU 하면 인텔, CDMA휴대폰 칩 하면 퀄컴 등 하는 것처럼, 일본업체들에도 아직도 이런 제품들이 많이 있다.
일례로 휴대폰이 전 세계 시장에 약 5억 대에서 7억 대 정도가 팔린다고 보는데, 분석가들이 이 휴대폰 시장을 예측할 때 시간 없으면 일본의 한 업체만 확인해 본다. 무라타 제작소에 만드는 수정소자 제품이 세계 휴대폰에 약 70% 정도 공급되기 때문이다. 일본전자 회사들의 제품중에는 아직도 이런 제품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이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본 특파원, 한국 회사에서 반도체 판매사원직 10년을 하였는데, 메모리 품목이 아니라, 맨날 일본 미국넘들에게 깨지는 비메모리 영업부문이었다. 이 당시 늘 생각했던 게 있다.
씨바, 도대체 그 놈들은 물건을 어떻게 만들고 개발하고 영업하기에, 이렇게 난 물건 팔기가 힘든 거야.
그러다 본의 아니게 여차저차해서 일본 업체에 취직을 하게 됐고, 일본 회사 중에서 4-5위권을 다투는 본인 회사 본사에 2001년에 출장을 갔었더랬다. 이 와중에 그 회사 반도체 부문의 역사를 전시해 놓은 조그마한 사내 박물관에 들어갔다가 느낀 점 하나가 있었다.
연륜 전시품 중에 일본 최초의 트랜지스터가 있었는데, 1958년에 시제품을 생산했다고 해설이 써있더라.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반도체 역사보다 무려 20년이 앞선 것이었드랬다. 이밖에도 반도체 각 분야에 걸쳐 손을 안댄 제품이 없다고 할 정도로 모든 분야의 제품들이 있었다.
물론 '선택과 집중'이라는 작금의 현실에서, 되는 것 안되는 것 그렇게 다 만드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지 하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그렇게 쌓인 기술력이 폐쇄적인 일본 시장의 환경과 겹쳐서 다른 업체가 못 들어오는 벽을 만들 수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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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새로운 모델 미쓰비시와 히타치가 합병한 르네사스 미국지사. |
그럼 어떻게 이런 기술력이 쌓이는가.
그건 사람 관리의 문제이다. 미국처럼 화끈하게 돈과 미래로 승부하거나, 아님 종신고용과 사회 분위기로 남게 하던가.
하여간 일본 대기업 전자회사들의 엔지니어들은 거의 퇴사를 안한다. 한국이 대기업에서 승진 문제 때문에 남들보다 1-2년 뒤지면 회사에서건 자기자신의 자존심의 문제에서건 주로 퇴사를 하게 된다. 또한 벤쳐들의 활성화로, 나와서도 일본보다 훨씬 유동적인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대기업들의 평균 엔지니어 경력은 10년차 정도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일단 벤쳐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나올 데도 없고, 직급 승진 스타일이 한국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보통 과장(책임급) 되는데 18년, 부장(수석급)되는데 23-25년 걸린다. 조직에 과나 부서가 없으면 한국처럼 담당으로 승진되는 경우는 없고 그냥 평사원이다. 따라서 엔지니어들이 직책 스트레스 없이 대략 50대까지 한 회사에서 열심히 다니는 편이다.
일본도 이것 때문에 문제가 있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적어도 전자회사들은 그렇다. 따라서 보통 중간급 엔지니어들의 경력이 보통 15년 정도 되는 편이고 20년 이상 엔지니어로 있는 사람들도 수두룩한 편이다. 이들의 경험이 회사에게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연봉인데, 그러나 이런 요인이 현재 한국이나 대만이나 중국에서 만들 수 있는 제품으로 가게 되면 가격경쟁력에서 마이나스가 되겠지만, 일본 내에서만 쓰이는 제품들일 때, 그리고 사양이 복잡해질 때는 얘기가 다르다. 경험이 얼마 안되는 다른나라 업체들은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기본 경쟁력인 연구개발이 중점인 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일본 내부의 경향이 큰 경쟁력이 된다. 메모리처럼 대량저가 생산의 범용품 시장에서야 망가지고 있지만,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당당히 미국과 함께 2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만/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만.
지속적으로 시장을 창출해 내는 그들의 가전제품들
첫 번째 이유와 조금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일본 가전 회사들은, 저가품쪽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확실히 내수시장을 독식해 나가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도 이들은 백색가전만 빼고는 거의 독식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 신문에 삼성이나 엘지가 시장점유율 1위라고 하는 제품들이 나오고 위상도 달라졌다고 하지만, 나라 대 나라로 보면 한국 2개 회사 대 일본 10개 회사이므로 나라별 시장점유율에서 일본의 대세다.
올초에 삼성과 소니를 비교하면서, 소니가 망가진 것을 들어 일본회사들의 총체적 위기로 보고 있던데, 소니는 결국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살아날 것이다. 원래 소니는 미주시장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이지, 일본에서 독보적으로 지배적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하간 이러한 10개 전자회사들에서 나오는 신제품들은, 아직도 많은 새로운 시장들을 창출하고 있고, 잘 아시다시피 세계 시장에서 이들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제품들은 수두룩하다. 게임기, 디카,디지캠코터 등등 가전시장이 일본 반도체 시장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새로운 목표인 비메모리 부문의 선전을 위하여, 대한민국 정통부에서 정말 잘한 일 중 한 가지를 소개하면서 결론 들어가 보겠다.
2000년 반도체계곡에는 'I-Park'이라는 이상한 조직이 생겼다. 옛 엘지반도체 미국지사 건물을 대한민국 정통부가 인수하여 한국계 IT업체들의 인큐베이트 사업에 들어간 것이다.
물가도 비싸고, 어떻게 사업을 벌여야 될 지 아이디어가 없는 업체들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그런 조직.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드랬다.
미국이나 대만에 비하자면 IT 벤쳐의 출발 시점이 훨씬 늦은 한국인데, 한국업체들을 위해 정부가 시작한 일이다. 그 후로도, 용두사미가 잘되는 정부 정책에 비해 I-park의 지원은 여전히 꾸준하다. 작년에 드디어 Nasdaq에 상장하는 업체도 나오고 지금도 몇십 개 업체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 중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벤치마킹을 하는 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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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ark에 입주해 있는 한국 IT업체들의 회사 간판. |
I-park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비메모리 사업은 그 분야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비메모리 부문 강화도 좋겠지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이미 고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또, 동작이 느린 대기업보다는 90년대에 비해 사업 환경이 훨씬 좋아진 중소업체와 벤쳐들도 열심히 따라와 주어야, 우리가 일본이건 대만이건 미국이건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옛날에 우리들은, 특히 전자업체 쪽에 종사하는 분들은 아마 "공일증"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일본제품에 비해서 우리 게 그럼 그렇지 하는.. 특히 우리 부모나 형님 세대들에게 많이 계실 것이다.
90년대, 2000년대를 거쳐 우리는 전 분야는 아니지만 반도체 메모리/LCD/디지탈 가전 등은 일본을 추월했다고 볼 수 있다. 가전에서는 만년 2-3등에서 드디어 어느 정도 맞짱을 떠보려는 세상이 온 것이다. 즉, 극일이 되어 버린 것.
이렇게 되고 보니 적어도 이쪽에서는 여유있게 일본업체들을 지켜 볼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지난 번 딴지 총수의 쓰레빠 기사같이 더이상 자존심 상하는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우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쪽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본인도 아주아주 행복하고, 삼성과 하이닉스같은 대기업 그리고 수많은 IT벤쳐 업체들이 더욱 더 열심히 경쟁하기를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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