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의 달인이라면 수백 배의 수익을 냈나? 주식투자를 잘한다면 일단 ‘대박’부터 떠올리는 게 당연시됐다. 그러나 자신만의 투자법과 투자철칙, 투자철학이 없다면 높이 쌓아온 공든 탑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주식시장이다. 유성호 원장은 지난 수년간 자신만의 투자스타일과 투자철학을 닦아온 개인투자자다. 그의 시장보기, 기업보기, 인간보기를 들어보자.

최근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개인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펀드투자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거나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부류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사실 개인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주식매매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였다. IT 버블로 증시는 활활 타오르고 있던 데다 PC와 초고속 인터넷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탓에 개인 투자자의 숫자는 급증했다.

‘투자 아이디어’ 이거구나

유성호 리더스서울치과 원장이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도 이때다. 당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던 그는 박봉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주식을 선택했다.

처음엔 신문 스크랩도 하고 인터넷에서 각종 분석 자료도 보면서 공부에 전념했다. 그런데 공부는 공부대로 하면서 정작 실전에서는 증권사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찍어준 종목을 샀다는 게 문제였다. 그럭저럭 되는가 싶었지만 2000년 반등장에서도 헛손질만 하다가 마침내 500만원 투자원금을 거의 날렸다. 남들처럼 IT종목을 차트에 의존해 단타로 매매하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투자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매매한 탓이었다.

그 이후 주식시장은 완연한 하락세였다. 반면 신세계나 롯데칠성 같은 종목들은 강세를 나타냈다. 유 원장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신들을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2명의 투자자 김민국, 최준철(현 VIP투자자문 공동대표)의 글을 읽게 됐다.

“그 친구들, 자기들이 매수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투자 아이디어’라는 말을 쓰더라. 그게 참 신선했다.”

아내와 갔던 이마트에서 북적이던 사람들, 길을 걷다가 “저 가게 장사 잘 되겠다, 저긴 안 되겠군”이라며 흘려 말했던 기억, 여러 가지 희뿌연 개념들이 ‘투자 아이디어’로 정리됐다. 가치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기업 제대로 분석하고 투자는 실패?

그로부터 유 원장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1년 의료장비를 제조·유통하는 ‘신흥’이라는 기업에 대해 글을 썼는데, 당시 투자자들에게는 낯설었던 이 작은 기업을 알기 쉽고 자세하게 분석한 이 글은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유 원장이 분석에서 예상했던 결과는, 자기 자신도 주가가 오르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종목으로 갈아탄 뒤에야 시작됐다. 오랜 기간 2000~3000원대를 맴돌던 주가가 2만원을 돌파하기까지 계속 올랐던 것.

‘동아에스텍’도 비슷한 경우다. 2004년 봄 증시에 상장했을 때부터 이 종목을 주시하던 그는, 차이나쇼크로 코스피지수가 크게 하락한 뒤 천천히 반등할 때 동아에스텍은 반등하지 않았던 데 착안해 매수한 뒤 수개월 보유하다가 배당락 후 매도했다. 물론 수익률은 좋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주가는 2배나 더 올랐다.

유 원장은 이 두 종목을 실패 사례로 소개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모자랐다는 것이다.

적정주가란 과연 무엇일까

유 원장이 꼽는 가장 큰 성공사례는 삼성중공업이었다. 거제도에 병원 세우는 게 꿈이라는 친지의 말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지금 조선소 때문에 거제도에 풀린 현금이 엄청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이 첫 번째 힌트가 됐다. 한참 뒤 그 생각이 나서 삼성중공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해봤다. 부채가 많이 늘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선수금 때문이었는데 그건 수주계약이 많이 늘고 있다는 의미였다. 사람들은 그런데 관심이 없었는지 3000~4000원대에서 매수할 수 있었고 4년 정도 보유한 뒤 3만원대에 팔아 큰 수익을 거뒀다.

“두산도 있었고, 아마 그 즈음에 주식계좌 수익률이 20배 정도 뛰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투자는 고려아연이다. 원자재 가격은 1980년부터 20년 동안 약세였다. 비관적일 때 낙관적인 미래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오랜 기간 약세였기 때문에 움직일 거라 생각했고 그럴 경우 고려아연이 주목받을 거라 판단했다. 당시 자회사의 부실 문제 있었지만 그래도 아연 값만 올라주면 주가는 좋아질 거라 믿었다. 또 아연을 정제하고 남은 부산물이 돈이 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2005년 코스피지수는 계속 올랐지만 주가는 횡보했다. 유 원장은 이 시기에 3만6000~3만7000원대에서 사들였다. 그리고 2006년엔 거꾸로 지수는 하락 횡보했지만 고려아연은 크게 올라 시장의 주도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0만원대에서 매도했다. 그런데 주가는 더 올라 20만원을 뚫었다.

크게 남긴 투자였지만 그는 이를 계기로 ‘적정주가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으며 재무제표보다는 큰 흐름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러나 적정주가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공부와 결단력 필요하다

“경제에 대해서는 나보다 아는 사람 많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투자는 그렇지가 않다. 대학교수나 회계사가 나보다 투자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식시장엔 1700개 종목이 상장되어 있고 그 모두를 누군가가 제각각의 이유를 들어 매수한다. 그만큼 주식투자는 불확실하다. 그래서 더 매력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주식투자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유 원장이다. 그는 주식투자를 잘 하려면 지식과 감(感), 결단력, 그리고 약간의 돌아이 기질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설프게 종목을 연구하느니 인간심리의 극단을 찾는 게 좀 더 쉬운 방법일 거라고 조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세의 극단에서 올라탔다고 치자. 거기에서 뛰어내리기는 쉬울까? 기다리던 시세를 내기 위해서는, 제대로 팔기 위해서는 산통이 필요하다.”

그는 앤서니 볼튼의 ‘내가 가장 성공한 투자는 투자할 당시에 불편하게 느껴졌던 투자였다’라는 말로 남과 다른 투자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설명했다.

평가이익이 수익이 아니라 손에 쥐어야만 내 것이므로 냉정함을 강조하는 것도 적정주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다만 적정한 매도시기가 언제인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며 그 판단이 아이를 낳는 산통에 버금간다고 말하는 그다.

“욕심을 버려야 할 때가 있고 반대로 욕심을 내야 할 때가 있다. 좋을 때 위기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좋아질 것을 상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그가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절대 투자의 방점이 돈에 찍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지 돈의 흐름에 나를 맡겨 놓기만 하면 될 뿐 돈이 목적이 되면 사람이 황폐해진다고 경고했다.

책 안 읽는 사람 무섭지 않아

유 원장은 모니터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을수록 견디기 힘들 것이라며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도 정리를 잘 하지 못하는 편이라서 기껏 하는 게 책 읽으며 밑줄 치는 정도다. 나중에 밑줄 친 부분만 다시 읽기도 한다.” 주식투자를 처음 시작할 땐 투자 서적을 읽었고 마케팅 분야로 옮겨갔다가 금융역사와 관련된 책을 거쳐서 지금은 광고 관련 책을 주로 읽고 있다.

그는 요즘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아이투자에서 책을 읽는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끼리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정해 읽은 뒤 모여서 그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유 원장이 발표했던 책은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쓴 ‘글로벌 경제위기, 그 이후’였다. “이 모임에는 가치투자자 중에서도 나름대로 연구한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이런 모임을 통해 회원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그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는 표현으로 투자자에게 독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