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주관적인 동물이며, 감정적이다.

100명의 사람에게 똑같은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받아드리는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똑같은 태양, 하늘, 햇살, 새들의 지저귐, 바람소리, 떨어지는

낙엽마저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과 주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던 일이 참담한 결과로 나타났을때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 깨어져 버릴때

내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지쳐 괴로울때

모든 세상이 회색으로 보이지 않을까?

 

나는 지금까지 대체로 순탄하게 편하게 살아왔지만

세상이 회색으로 보였던 적이 몇번 있었다.

 

첫번째는 대학입시에 떨어졌을때. 고등학교때 친구랑 잘 사귀며

균형적으로 지내지 못하고 대입만 바라보고 3년을 곰처럼 지냈던

나이기에 시험실패의 충격은 굉장히 컸다. 본고사를 치르고 봉천동

고개길을 넘어가면서 바라봤던 맑은 하늘은

소나기가 내리기전의 검은 하늘처럼 잿빛이었다.

 

두번째는 역시 고시 1차에 떨어졌을때.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등지고 주로 도서관에서 살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리 어려운 시험도 아니었기에 시험발표가 나고

나는 한달간 방에 처박혀 있었다. 한달만에 관악산에 올라 바라본

겨울의 맑은 하늘은 부슬비내리는 브뤼셀의 날씨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큰 시험의 실패가 주는 정신적 충격도 크지만 젊은 시절 느끼는

가장 큰 충격은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에서 오는 것같다.

차분하고 별 말없이 조용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늪처럼 사랑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으로는

사랑하지만 자신이 참을수 없는 이유로 그것을 버려야 할때. 

사는 것이 사는것 같지 않고, 주위의 것들이 제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진공상태가 된다.

 

나도 그런적이 있었다. 내 스스를 얽매였던 기준과

여전히 사랑하는 나의 마음사이에서 어쩔줄 모르고 몇달을 진공상태에서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와 같이 시간을 보냈던 장소를 혼자

찾아다녔다. 봄날의 용산공원, 여름날의 압구정동, 가을날의 미술관옆 동물원,

겨울날의 옥수역.

 

수 많은 고민끝에 허덕거리며 겨우 제정신을 차렸을때 나의 주위는 아무일이 없었던 것 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하루를 몇년처럼 치열한 고민끝에 지옥같은 몇달을 보냈었는데 오늘도 태양은 뜨고 햇살은 비치며, 어김없이 저녁이 찾아왔고 희뿌연 서울 하늘의 별은 어제와 다름없이 빛났다.

 

오늘 저녁 엘리 맥빌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귀에 친숙한

The end of the World라는 팝송을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노래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나는 연인과의 사랑으로  상처받고 방황하며 모든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끼는데 why does sun go on shining 하며, why do the birds go on singing하며, why do the stars glow above 하는 것일까? 밤새도록 번민으로 지새운 아침에 왜 세상은 그전과 그대로일까? ( I wonder why enerything's the same?)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추억은 마음을 sentimental하게 만든다.

 

모딜리아니 그림에서 나오는 여인의 푸른눈동자,

옥수역에서 바라본 파란 한강

강촌 다리위에서 바라보던 푸른 강물에서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