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이었던가 잘 모르겠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을지로에서 만나서 놀다가

친구들 둘과 같이 지하철을 타기위해

명동 스타벅스쪽으로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명동거리가 항상 그렇듯이 주위 가게들은

번쩍거리고 젊은이로 넘쳐났다.

나도 명동에는 오랜만에 나온터라 주위의

쇼윈도를 두리번 거리며 올라가다가

앞쪽을 보는 순간 그만 그자리에 멈춰서 버리고 말았다.

 

옆에서 같이가던 친구가 "야 임마 너 왜그래" 하는 소리도 듣지못하고

약 2-3초동안 그자리에 얼어버린듯 멍청히 서있었다.

위쪽에서 한남자와 걸어내려오는 아가씨.

한때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친구를 5년만에 딱 마주친 것이다.

 

나와는 다시 보지않겠다고 헤어지며 다짐했던 그녀를

명동 거리 한가운데서 만난 것이다.

나를 발견한 그녀도 그자리에 서버렸다.

 

5미터 거리를 두고 나와 그녀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채

약 2초 동안 동상처럼 얼어버렸다. 그녀와 같이 오던 남자도 무슨영문인지

모른채 나를 처다보고, 나와 같이 가던 두 친구도 멈춰서고.

 

겨우 정신을 수습해서 그녀쪽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너 오랜만이다'.

그녀는 아무런 아주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런 대꾸없이 마치 모르는 사람인양 스쳐지나 갔다.

 

왜 그때 내가 그리 놀랐을까?

5년의 세월이 지나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내가

그녀를 잊은 줄 알았었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그녀를 보고싶었나 보다. 그 2초간의 만남이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그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소식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유학후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된 그녀 소식을 신문에서 볼 수 있었다.

연봉도 1억이 넘고 여러 회사를 옮겨다니면서 외국계 증권사에

다니고 있었고 귀여운 딸자식도 있었다.

 

먼 타향땅에서 그녀 얼굴이 오늘 저녁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끼같은 딸과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들놈을 재워놓고

집사람까지 자는 한밤중에 이글을 쓰게되는 것은 무슨까닭일까?

 

그녀의 밝은 웃음소리와 눈 웃음,

귓볼에서 나던 시슬리 화장품 냄새,

나랑 헤어지며 붉은 볼에 흘러내리던 눈물

가벼운 입술의 떨림까지. 

 

다시 얼굴을 보고싶지만

만날 용기는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E.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