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09월 06일
이용인 기자
(dragon@thinkmoney.co.kr)
대한전선이 ‘2세 경영’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지분이동을 통한 경영권 물려주기 작전은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바닥을 기고 있는 대한전선 주가가 경영권 이양과 함께 새로운 상승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
내부자거래 정보제공업체인 아이스코어 www.iscore.co.kr에 따르면,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은 7월25일과 8월7일, 두차례에 걸쳐 각각 120만주와 126만8천주를 시장에 내놓았다. 모두 246만8천주에 이른다. 액수로 따지면 자그마치 133억3764만원가량(평균단가 5405원)에 해당한다. 설 회장은 지난해 5월에도 70만주의 지분을 시장에 내놓은 적이 있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설 회장의 매도를 제외하고는 최근 몇년 사이에 내부자 거래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 물량은 지난해 5월 내놓은 물량의 거의 4배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정상적인 시장매매 행위로 보기 어려운 구석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설 회장의 거래는 단박에 시장 안테나에 걸렸다.
비밀은 경영권 넘겨주기에 있다. 대한전선 최대 주주인 설원량 회장이 내놓은 지분은 7월25일 3.75%, 8월7일 3.96% 등 모두 7.71%였다. 이 주식의 매입자는 대한전선 2대주주로 기록돼 있는, 삼양금속이라고 하는 기업이었다. 두차례에 걸친 거래로 설 회장의 대한전선 지분은 46.23%에서 38.52%로 떨어졌다. 이에 비해 삼양금속의 대한전선 지분율은 30.91%로 높아졌다.
설 회장의 노림수, 세금 덜내기
그렇다면 삼양금속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삼양금속은 대한전선에 원료를 수입해 공급해주는 비상장 무역업체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삼양금속은 지난해 기준으로 설 회장의 장남인 설윤석씨가 48%의 지분을 갖고 있다. 윤석씨가 최대주주인 셈이다. 차남인 설윤성씨는 33%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설원량 회장도 10.7%를 갖고 있다. 설 회장 일가가 거의 모든 지분을 갖고 있는, 일종의 대한전선 사업지주회사인 셈이다.
결국 이번 거래는 지분이동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2세들에게 대한전선 지배권과 영향력을 옮겨주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도 굳이 이런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분이동 시점이 재밌다. 양 회장이 처음 70만주를 삼양금속에 넘겨준 지난해 5월16일, 대한전선 종가는 4100으로 정확하게 바닥이었다. 이후 주가는 9·11 테러 이후 잠깐 주춤한 것을 빼고는 올해 3월 9500원까지 거침없이 솟아올랐다.
올해 두차례의 지분이동을 한 7월말과 8월초에도 주가는 5100~5500원대를 오가며 바닥다지기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대한전선 주가가 거의 ‘최악’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2002년 예상 주당순이익(EPS) 기준으로 최근 대한전선 주가수익비율(PER)은 1.91배로, LG전선의 3.9배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 애널리스트들에 따라 다소 다르긴 하지만, 지금 단계에선 7500원 정도가 적정가로 보인다.
따라서 설 회장은 이번에도 경영권 넘겨주기를 위한 지분이동을 결정하면서 주가가 가장 싼 시점을 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세금문제 등이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 매도자가 발행주식의 3% 이상을 보유하고 있거나, 보유주식의 시가총액이 100억원을 넘으면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에 속한다. 보유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는 양도차익의 30%, 보유기간이 1년 이상이면 양도차익에 대해 20%를 과세한다. 설 회장은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주가가 가장 낮을 때 매도를 해야 한다. 회사 관계자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저평가주 매력… 상승 모멘텀은 약해
하지만 지금이 바닥이라고 투자자들이 곧바로 뛰어들 필요는 없다. 대한전선 주가가 상승세를 타기에는 체력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실적이 좋지 않다. 올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5.8%와 28%가량 줄어든 6414억9600만원과 471억원이었다. 경상이익은 27.4% 감소한 421억5800만원이었다.
매출과 이익, 특히 영업이익이 이처럼 크게 줄어든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광케이블 사업 전체가 세계적인 불황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한전선 매출에서 광케이블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광케이블의 영업이익률은 30%에 이를 정도로 마진이 좋다. 이에 비해 한전이나 한국통신에 납품하는 전력선의 경우 영업이익률은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알짜사업이 제 역할을 못하다보니 영업이익이 확 줄어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광케이블 업황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내 광케이블 시장은 이미 인터넷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성장성이 거의 멈춰버렸다. 해외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세계 IT경기가 침체되면서 통신업체들의 수요가 뚝 끊겼다. 결국 해외 IT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대한전선 주가가 올라갈 수 있는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세종증권 심기창 애널리스트는 “올해는 물론이고 내년에도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매출의 25%가량을 차지하는, 건축자재인 스테인레스 부문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기는 하다. 올해 들어 세차례의 가격인상이 이루어지고 건설경기 호황으로 2분기부터는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대한전선이 경쟁업체인 LG전선보다 타격이 적었던 것도 스테인레스 부문의 호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스테인레스 사업 부문이 상승 모멘텀을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게다가 대한전선이 무주리조트와 쌍방울을 인수하면서 자금사정이 빡빡해질 수도 있다는 게 걸림돌이다. 실제 한국신용평가는 “대한전선이 무주리조트 지분 75%를 인수하며 1473억원의 자금을 소요한데다, 쌍방울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하며 약 100억원을 출자하는 등 자금부담이 커졌다”고 지적한다. 한신평은 대한전선의 신용등급을 미확정 검토대상에 올렸다.
회사쪽에선 인수대금 1473억원 가운데 전환사채 849억원은 콘도회원권 신규분양을 통해 2003년 안에 회수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콘도회원권 신규분양이 회사의 계획대로 이루어질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분명히 대한전선은 저평가주로서 매력이 있다. 설 회장의 지분이전 시점도 그걸 입증해준다. 하지만 미리 뛰어들어 오랫동안 묻어둘 필요까지는 없어보인다. 해외 IT경기 동향, 그리고 자금사정 등을 봐가며 천천히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대한전선 분기보고서 본 소감:
이 회사가 금융회사냐 제조업체냐 대단한 장사꾼들이야.
그동안 적지않게 보고서를 읽어왔는데 이 회사는 모든 자회사의 재무제표를 낱낱히 파악하고 관리하고 있다.
보고서의 질은 어떻구. 보고서만 보면 이 회사가 뭘 해왔고 뭘 하려고 하는지 진짜 상세하게 잘 나온다. 역시 상속세 많이 낸 양심회사는 다르긴 다르다.
외국환 포지션을 환별로 열 개나 거래하는 업체는 처음인데에다가 주식투자 솜씨도 남다르고, 채권투자솜씨며 다른회사에다 돈놀이하는것까지..
그 옛날 주판들고 치부책 들고 장사하는 보부상이나 개성상인이 떠오른다. 이 회사 영업외 수익 뽑아내는 솜씨는 진짜 아트..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나니..
작고하신 전임 회장이 대단한 장사꾼이었다던 말이 빈말이 아니로군. 전임회장이 좀만 욕심부렸으면 삼성, LG에 못지않은 규모를 일궜을텐데. 정말 알짜배기 회사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