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녘은 20년도 더 된 친구와 함께 했습니다.

안동초등학교 뒷골목을 돌아, 신시장 골목에 줄을이어 늘어선 막창 골목에서, 중간에

구공탄이 들어가는 둥그런 철판 테이블에 앉아서, 돼지막창을 구워놓고 모처럼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사실 시장길에 들러서 이런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막창골목이나 양념통닭

골목에서 친구를 만나는 재미가 바로 시골사는 큰 재미이기도 합니다.

원래 저는 술을 하지 않습니다,

레지던트 시절,  당시만해도 워낙 혹독한 도제식 교육을 받던 때라  환자 상태가 나빠서 한잔,

선생님께 혼이 나서 한잔, 힘들다고 한잔, 수술 마치고 한잔, 하다보니,, 어느새 지방간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간 세포가 몇 천개 더 망가지더라도,

그것을 감내하고라도 마셔야 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술을 입에대지

않은지가 오랩니다.

그런데 그날은 술잔을 들다 못해서 아예 대취를 했습니다.

그날 친구가 이십년을 넘게 삼키던 속깊은 얘기를 하더군요,,

" 나는 어릴때 집에 친구가 찾아오는 것이 싫었다, 그때 우리집은 지금 저기 보이는 막창가게

보다 조금 더 적었는데. 그나마 방 세개중에 한 개는 항상 세를 주고, 방 한개에서 삼남매가

고등학교 시절까지 같이 자야만 했다,

그 방 한켠에는 앉은뱅이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그방 살림의 전부였다.

나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지만, 그 가난속에서도 나를 통해 희망을 보려는 어머니의

염원을 무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눈물겹게 열심히 공부했다, 학창시절 점심시간이면,

마치 장난인 듯 친구들의 도시락 반찬을 돌아가며 강탈해서 먹었지만, 사실 그것은 매일

콩나물외에 반찬을 담을 수 밖에 없는 집안 형편 때문이었고, 그때 그것은 내게는 생존의 일부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알다시피 학교성적으로보면 나도 의대를 갈

수 있었지만, 한달에 십만원 교재비까지 주는 지방대학 전자과에 들어간 건 순전히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스물 일곱에 취직해서 그때부터 십년간을 번돈의 70%를 어머니가 나를

공부시키느라, 동생들 시집장가 보내느라 진 빚을 갚는데 썼다,

그래도 서른 여덟에 그 빚을 다 갚고 났을 때, 이제부터는 정말 먹고 살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무려 40년 가까이 내 어깨를 짓누르던 가난의 무게를 이제야 벗어버리려나 생각했다,

남들은 나이 사십이 다 되서 집도 절도 한 칸 없는놈이, 이제 살만 하다니.. 정말 실속 없는

놈이라고 비웃었겠지만, 당시 내게는 이제 더 이상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최고의 희망이었다,

사실 그 와중에 가장 미안한 사람은 수입의 거의 전부를 시댁빚을 갚는데 쓰고도, 묵묵히

참아준 아내다, 그래도 남자라는 객기로 아내 어깨 한번 제대로 두드려 주지 못했다. 그런

아내가 재작년 막내동생 결혼식 때  천만원짜리 적금 통장을 주더라,, 한달 20만원씩

몇 년을 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돈을 모으기 위해서 어디서 무엇을 더 아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사실 너무 가슴아픈 돈 이었다.
 
어쨌거나, 그때부터 새로 시작이었다.

인생 남보다 십년 더 살 요량하면, 지난 십년이야 아깝지 않은 것이다, 사십년간의 가난의

그늘을 벗어던지고 이제 시작하면 된다, 내 자식은 절대로 등록금 빌리기위해 방학때 마다.

친척집을 돌아다니는 거렁뱅이가 되지 않게하겠다,

그게 불과 재작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무너졌다. 다니던 회사에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기에 앞 뒤 가리지 않고

신청했다, 내 생애 가장 큰 목돈이었고, 원래 공기업인 회사에서 받던 급여가 제법 많았기

때문에 명퇴금을 받으면 장사 밑천도 만들고 아울러 집 한칸 얻을 자금도 충분한 금액이었다,

사실 나는 장사가 하고 싶었다,

알다시피 나는 잔재주는 없지만 무엇이던지 열심히 하는건 잘한다, 장사를 하면, 하루 20 시간은

일 할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이대로는 " 내 아이가 자라서, 지금 나처럼 친구를 만났을 때, 

내가 학교 다닐때는 좁은방에서 할머니와 같이 잠을 자야했다,, "라고 말 할것 같아서 방 세칸

달린 집이 우선 욕심이났다,,

그래서 일단 명퇴금으로 먼저 방 세개짜리 빌라를 하나 사고, 그것을 담보로 다시 은행 대출을

받은 다음 동네에 마포주먹구이 체인점을 하나 차렸다, 더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수억원의

집안 빚을 다 갚고도, 번듯한 집에.. 내 가게까지 생긴거 아닌가..? 비록 대출금이 조금있고

카드로 산 집기류들이 빚이긴 하지만 , 나머지는 이제 내가 하기 나름 아닌가..

정말 죽고싶을 만큼 행복했다,,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개업하고 석달만에 광우병 파동이 터졌다,

손님이 줄기는 고사하고 아예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아내가 고깃집에서 라면을 끓여

팔기도 하고,  야식장사까지 했지만, 결국 무너졌다,  그후 빌라는 산 가격의 40%에 경매로

넘어가고. 카드빛을 못 갚아서 신용불량자가 됐다,

지금 네게 돈을 빌리러 온게 아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이놈의 사주가 왜 이리 질긴지, 정말 한번 알아보고 싶어서 사주 한번 봐

달라고 왔다. 사람일이 그냥 이렇게 망가질 수는 없다, 알다시피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나쁜짓 한 기억은 없다, 그렇다고 잘하고 산것도 없지만 그냥 내 몫안에서 열심히 살았다,

당시에 집안 빚도 남들은 빚잔치 하면 그만이다고 부추겼지만, 결국 우리가 학교라도 제대로

졸업하느라 생긴 빚이다 싶어 남의 돈을 악착같이 갚았다, 그런데 이젠 다시 일어서려 해도

방법이 없다, 취직도 안된다,

아침 저녘으로 학원차 운전해서 30만원 받고, 새벽에 우유배달하고 밤에 주변 고기집 숯불

피워주는 일을 해서 육십을 번다, 그나마 그런데서도 신용불량자는 마치 전과자처럼  취급한다, 

다시 월세방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하나있는 아이놈 영어공부는 시켜야겠길래, 튼튼영어

과외는 시킨다.

그런데 이젠 못견디겠다, 정말 죽고 싶다,

다른건 다 참겠는데. 신불자는 주민등록을 말소시킨다, 그러면 아이 학교에서 그 사실을 안다,

카드사에서는 새벽까지 찾아오고, 전화하고, 초인종을 눌러댄다,, 지금 내 아이에게 내가 어린시절 

당했던 그 고통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

사실 나하나 죽으면 끝이다,

제 애미가 파출부를 해서라도 두 식구 먹고는 산다, 그런데 죽기전에 내 사주를 한 번 봐주면 좋겠다.

혹시 내 어깨에 귀신이 올라타고 죽어라 죽어라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봐 달라고 찾아왔다..

이젠 악이 받쳐서 , 죽을 때 죽어도 이유는 알고 죽어야 겠다, 무슨 이유로 내가 이렇게 안 풀리는지

무슨 마가 끼었는지. 조상묘라도 잘못 썼는지, 이유라도 알고 죽어야 눈이라도 감겠다.. "

............................

그날 우리는 대취했습니다.

그리고 노래방을 찾아서 그기서 둘이서 다시 맥주를 몇 병 놓고, 울음인지 노랜지 고함인지

구분도 안가는 노래들을 몇곡 같이 불렀습니다,.원래 저는 원래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서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날은 저도 목이 터져라 노래를 같이 불렀습니다. 

한시간 정도 시간이 흘러, 이제 술이 적당히 깰 무렵, 자리에서 일어서는길에  친구가 송대관의

"네박자" 라는 곡을 틀어 놓고 이 노래를 아느냐고 묻더군요,  당연히 알지만 애써 찾아 듣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순간, 이 친구가 이 노래를 부르더군요,,

" 내가 기쁠 때, 네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눈물도 있다..." 대충 이런 가사였는데,  저는 그날이후 지금까지 혼자 있으면 계속 그 노래를

되새김질 하게 됩니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머리속에서 문득 소리가 들리고,

밥 먹다가도 " 돌고도는 인생사,,, 모두가 네박자 ,," 그노래의 가사와 멜로디 라인이 또 떠오릅니다,

노래는 다 같은 노래라도. 사연은 각자가 다를테니.. 혹시 이곡을 들으신 분 중에서 삼복에

왠 뽕작이냐고 이맛살 찌푸릴 분 말고,,  혹시 저처럼 가슴이 아리는 분은 안 계시는지요..?  

정말  저는 제 머리속에서 이 노래가 자꾸 떠나지 않는것이 친구놈 사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노래 자체가 무슨 마약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지는군요,,

어쨌거나 이 노래는 어차피 인생은 모두 다  네박자라고 주장하는군요,,

2004.8.10   시골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