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리더스] 거인의 어깨 위에서 투자하라


재테크(財Tech), 이 기묘한 漢英조합은 도대체 뭐냐?

얼마 전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전혀 모르는 번호다.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울리면 소위 재테크의 전문가들의 전화가 대부분이다.

필자가 유망한 지역의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있음을 너무 안타깝게 배려해 주는 부동산 업계의 특별한 투자조언이거나,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 주겠다는 대출 전문가의 전화인 경우도 많다. 아니면 이번 달에 얼마 이상을 사용하면 몇 만원의 캐쉬백을 해주겠다는 신용카드 전문가의 전화도 적지 않다.

모두 필자의 어처구니 없는 재테크 수준을 걱정하며,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잘 해보라는 애정 어린 전문가들의 친절한 배려인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다.

너무도 바쁘신 가운데 필자와 같이 무지몽매한 재테크의 문외한까지 배려해주는 수준 높은 공익정신에 선진국민으로서의 뿌듯함마저 느낄 정도다. 하지만 모처럼 베푸는 전문가의 친절을 받을 만큼 필자의 사정이 마침 절박하지 않은데다가, 쓸데 없이 바쁘기도 해서, 매번 대단하신 분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따르지 못해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모르는 번호다. 혹시나 중요한 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길가에 차를 대고 두 손으로 공손히 전화를 받으니, 얼핏 “재테크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또 그 대단하신 전문가 분들의 가르침인가 보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갈 갈이 바쁘니 자세한 사정은 다음에 나누자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통화를 보류시키는데 성공했다.

오후에 다시 연결된 그 전화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재테크 전문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제안을 해왔다. 언제나처럼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반대로 한 수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재테크의 문외한으로 무시 당하던 필자에게 재테크에 대해 한 수 가르쳐 달라니 필자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 앞에 졸지에 재테크의 전문가로 각색되어 나타난 작자가 바로 필자란 사람이다.  

그런데 재테크 칼럼이라는 전문성과 권위가 있는 이 곳에 등장할 만큼 필자는 재테크라는 용어조차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걱정부터 든다.  도대체 ‘재(財) + 테크(Tech)’라는 이 기묘한 漢英조합은 뭐란 말인가? 문자 그대로 억지로 해석하면 ‘돈을 다루는 기술’ 정도가 될 텐데, 그럼 필자가 기술자란 말인가?

남자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벽에 못 박는 것을 포함, 거의 모든 기술적(?)인 일을 필자의 아내가 도맡아 하는 관계로 아내는 스스로를 자칭 ‘맥가이순’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드라이버 한번 제대로 사용해 본 일이 없는 필자에게 기술자라니, 진짜 맥가이버가 들었다면 그야말로 포복절도할 노릇이다.

재테크의 전문가는 과연 누구?

가장 성의 있게 의역해서 ‘돈을 관리하는 방법’ 정도로 이해한다고 쳐도, 과연 필자가 독자 여러분에게 “돈은 이렇게 관리해야 합니다”라고 알려 드릴만큼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어내고 득도한 초절정 고수란 말인가? 그저 필자가 젊은 시절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증권사를 다녔고, 그 회사에서 주식운용을 다년간 했다고 해서 독자 여러분께 주식투자에 대해 드릴 수 있는 도움이 있을까?

하여간 이런 저런 두려움과 회의 속에서 번민하면서도 재테크 컬럼을 총괄하여 책임지는 분의 능수능란한 언변에 함몰되어, 독자 여러분 앞에 본의 아니게 어줍잖은 재테크의 전문가로 나서게 되었다는 죄송스러운 말씀을 올리며, 필자의 글이 그다지 전문가스럽지 않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길 사전에 당부 드리는 바이다.

독자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필자는 학창시절 국어, 영어, 수학 등 입시 주요과목뿐만 아니라, 물리, 화학, 지리, 역사 등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과목을 공부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학창시절에 그렇게 머리 아프게 공부한 미적분이나 화학 주기율표는 물론 간단한 이차방정식마저도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활용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재테크라는 이상한 이름의 분야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 아는 척하면서 이야기 해나가야 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다고 외쳐대는 재테크란 분야는 도대체 왜 학교에서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학교 선생님들이 돈을 관리하는 방법에 너무나 문외한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교과서를 저술해야 하는 교수님들도 역시 재테크에는 별로 소질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1883~1946), 영국 경제학자, 현대 거시경제학의 아버지]

필자의 경험으로는 선생님이나 교수님치고 주식투자에 성공한 분은 별로 보지 못했다. 오히려 가장 장렬하게 실패했던 대표적인 직업군을 들라면 단연 그 분들이었다. 하다 못해 그 분야의 전문가일법한 경제학자 가운데서도 유사이래 주식투자로 성공했던 사례는 거의 찾아 보기 어려우며, 그나마도 말년의 케인즈가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로 손꼽힐 정도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아마도 돈에 관한 한 누가 누굴 가르칠 교육여건조차 마련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많은 분들이 “재테크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경제학 박사조차도 성공하기 힘든 분야를 그렇게 많은 분들이 가르쳐 줄 수 있다니, 도대체 이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잘 아는 분들이라면 그 분들은 참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남에게 그걸 알려 주려고 애를 쓰시는지 매우 궁금하다.

필자에 비해 재테크를 통해 돈을 많이 번 분들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정말 돈을 많이 벌었다면 굳이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고   조용히 은둔생활을 즐기지 않을까 생각된다.

순수한 의미에서 자신의 방법을 공유하려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정말 홍익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지닌 대인배라고 생각된다. 그런 분이 있다면, 정말 존경스럽고,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 필자에게 꼭 소개해 주시길 바란다.

 
[존 보글 (1926~), 미국 뱅가드 그룹 설립자, 인덱스펀드 창시자]

인덱스펀드를 권하는 대표적인 인물인 존 보글에 따르면, “인덱스를 이기는 펀드매니저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수많은 펀드매니저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대단한 마이더스의 손인 양 높은 투자수익을 장담한다.

사실 안전한 예금을 포기하고 주식형 펀드에 돈을 맡기는 가입자 입장에서 예금 금리보다도 적은 투자수익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단순하게 인덱스펀드에 가입하는 대신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인덱스보다 적은 투자수익을 기대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예금금리는 커녕 원금손실이 발생하기 일쑤이며, 투자수익이 발생하더라도 인덱스에 비해 초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용보수는 꼬박꼬박 예외 없이 잘도 떼어 간다. 무엇을 잘 했다고 보수를 받아가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최소한 예금 금리 이상이면서 인덱스를 초과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펀드매니저가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분야의 전문가 분들께 조심스럽게 여쭙고 싶다.

필자가 다른 대단한 전문가들에 비해 더 전문가라는 주장은 감히 아니다. 다만 필자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독자 여러분의 시각에서 생각해 보고, 독자 여러분을 대신해서 이런 풍토에 대해 의문을 가질 뿐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투자하라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20여 년의 주식투자 경험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드릴 수준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고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 방편의 일환으로 투자에 유용한 양서를 선정, 투자를 즐기는 많은 훌륭한 분들과 함께 매월 공부하고 토론하는 ‘밸류리더스’라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그나마 독자 여러분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은 이렇게 필자가 공부하고 배우는 내용을 독자 여러분과 조금이나마 공유하는 정도이다. 그것도 필자가 주제넘게 가르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자가 공부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께 숙제 검사를 받는 과정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앞으로 필자가 연재하는 내용은 독서모임 밸류리더스에서 진행된 투자서와 그 외 필자의 호기심으로 읽은 도서들을 중심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워런 버핏 (1930~),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지금까지 가장 성공한 주식투자자로 ‘오마하의 현인’ 또는 ‘투자의 귀재’라고 불림]

가장 성공한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책을 통해 벤저민 그레이엄을 알게 됐다. 그가 지은 ‘현명한 투자자’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레이엄의 강의를 받기 위해 학교를 옮겨갈 정도였다. 후에 역시 ‘위대한 주식에 투자하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저자인 필립 피셔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가장 성공한 투자자인 워런 버핏도 책을 통해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도 워런 버핏은 새로운 스승을 만나기 위해 책을 읽고 있다.

 
         [양진석 저 (2007), 21세기북스]

이렇듯 필자가 도서를 중심으로 연재를 진행하려는 이유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투자하라”는 말처럼, 독서야말로 진정한 전문가인 투자대가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필자는 독자들과 투자대가들을 연결하는 보잘것없는 다리에 지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8월28일 열린 ‘가치투자자 심포지엄’에서 투자전문 번역가인 이건 선생님의 인사말을 인용하면서 이번 글을 마친다.

“많은 책을 읽는다고 투자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투자자는 모두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기사원문보기 : http://gold.asiae.co.kr/news/tech_view.htm?idxno=2011050311345731539